문화대간 기행
작은 고을에서 나온 조선만 한 브랜드 동편제
지리산 작은 고을 운봉 하면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의 질문에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답해줄까?
아무래도 동편제가 아닐까 싶다. 운봉과 동편제는 씨줄과 날줄로 튼튼해져 왔으니 그렇다.
지리산 운봉에 가면 너른 들판 가운데에 마을이 보인다.
조선시대 중엽 무렵, 이 마을에 송흥록이라는 소리꾼이 살았다. 그는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옥계동과 구룡폭포에서 수련을 하여 득음을 했다.
송흥록 명창은 조선 팔도에 내어놓을 소리를 탄생시켰다.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춤추게 했으니 동편제였다. 그는 인근 고을은 물론 조선 팔도에 이름을 내놓은 명창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동편제는 탄생되었고, 그 소리는 조선 팔도로 퍼져 나갔으며 종자 소리가 되었다.
동편제 창시자 송흥록 명창의 명성을 들은 조선 팔도의 소리꾼들은 그가 살고 있는 비전 마을로 찾아와 제자가 되었다.
운봉에서 동편제 소리가 싹트는데 필요했던 최적의 환경은 후원자와 자기 관리였다.
후원자의 존재는 운봉 만석꾼이었고 상시적인 자기 관리의 방법은 치아의 보살핌이었다.
운봉 만석꾼의 소리꾼 후원은 동편제 소리가 조선 팔도로 나아가는 길을 내어 주는 것이었고 그것의 실행은 운봉의 소리청을 조선 팔도의 마당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었다.
다음은 소리꾼들의 치아관리다.
소리꾼에게 장수(長壽)와 건강과 명창을 얻게 해주는 비밀코드가 있는데 그것은 치아(이빨) 관리이다.
지리산에 살던 소리꾼들은 잔병치례 없이 오랫동안 명창의 명예를 지키며 살았다.
조선시대의 평균수명이 50세 내외였던 것에 비하여 그들은 평균 60세를 넘게 살았다.
어린 소리꾼이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소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피나는 소리 수련을 해야 했다. 그렇게 자신의 소리를 만들기까지 정진하다 보면 50이 넘고 60이 넘어서야 명창이 된 사람이 많았다.
소리꾼은 나이가 들어야 소리가 익고 득음을 하여 명창이 된다는 말이 소리가 연륜에서 나온다는 의미 이리라. 그런데 득음의 경지에 다다를 무렵이 되면 나이가 들고 이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이빨이었다.
소리는 익어 가고 득음을 얻은 명창의 목적지는 다가오는데 이빨이 빠지는 나이가 되니 명창이 된들 소리를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소리꾼들이 평소에 중요하게 앞서서 관리하던 것이 치아였다.
소리꾼들이 치아 관리를 위해서는 소금과 솔잎 가루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리꾼들의 휴대품에는 솔잎 가루를 섞은 소금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는 대나무 통이 필수였다.
소리꾼의 휴대품 중 부채와 송죽염통 그리고 북채는 삼대 휴대품이었던 것이다.
송죽염통에는 손가락에 두어 번 감을 길이의 짚도 들어 있었다. 짚을 손가락에 감고 송염을 묻혀서 식사 후마다 칫솔질을 하는 방법으로 치아관리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명창은 이빨로 태어난다는 말도 생겨났다.
소리꾼이 평생 동안 관리해야 할 것은 목과 치아였다.
목은 무리하지 않게 쓰며 치아는 한 끼도 거스름 없이 닦는 것이었다.
평소에 단것 멀리하고 단단한 것 살펴서 먹으며 짚을 손에 감아 솔잎가루 소금으로 밥 먹고 나서 칫솔질한 후 따뜻한 물로 헹구어 내는 일로 치아 관리를 생활화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득음을 한 명창 중에 치아가 부실한 소리꾼은 일반인들보다는 적었던 것 같다.
소리꾼을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한 것도 명창의 명예를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평생 동안 치아를 건강하게 관리한 자신에 대한 포상이었던 것이다.
지리산의 소리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이빨 닦는 소금은 운봉 만석꾼의 소리청에서 소리 값으로 받은 것이었다. 지리산의 소금 길인 염두고도의 화개장터에서 가져온 소금이 그것이었다.
소리꾼이 그 소금과 솔잎을 돌확에 찧어서 만든 솔잎가루를 섞어 넣은 송염죽통이나 소금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다녔던 것은 명창의 소리 수명을 늘려주는 품새 나는 불로염이었다.
작은 고을도 조선만 한 브랜드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