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호 Oct 06. 2016

김광석, 우리들의 초상

슬픈 영혼의 목소리를 지닌 가객

#1. 김광석, 우리들의 초상


우리 어찌 가난 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 하리오

- <광야에서> 중에서


친구 한 명이 이런 얘기를 해준 적이 있다. 노래방에서 밤새도록 ‘김광석 노래 부르기’ 시합을 펼쳤다는 것이다. 같은 김광석 노래를 부를 순 없고, 얼마나 많이 그의 노래를 알고 공감하느냐가 이기는 비결이었다. 그토록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했던 것일까. 친구는 김광석 노래와 함께 청춘을 달래며 밤을 샜다고 한다. 이렇듯 김광석 노래는 우리들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는 소중한, 영혼의 양식이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다. 가을 혹은 겨울이 되면 김광석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계절이 쉼과 침묵을 향하는 이때, 김광석의 노래는 빛을 발한다. 이제 해마다 흐린 가을이 오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계절이 오면 김광석은 소환된다. 거리를 걷다보면 광화문과 종로, 대학로에서 김광석 노래 제목을 딴 공연 포스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김광석은 없지만 그의 노래들이 부활해 공허한 마음을 채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거리에서> 맞이하게 되는 애수부터, 군대에 가야 하는 청춘이 다시 시작하고픈 마음으로 부르는 <이등병의 편지>, 그리고 청춘의 끝자락인 <서른 즈음>에 머문 이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까지. 한마디로 김광석은 우리다. 우리들의 이야기고, 우리들의 마음이고, 우리들의 고향이고 안식처이다. 노래는 친구가 되고, 안주가 되며,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된다. 김광석의 노래들은 인생의 고비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우뚝 서 있다. 김광석 노래들은 우리 인생의 지향점으로 수렴된다.


인생의 고비를 넘겨야하는 우리들처럼


우리 모두는 김광석 노래에 얽혀있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김광석 노래에 얽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희노애락이 김광석 노래에 있고 특히 떠나가야 하는 슬픔이 목소리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언젠가 대지의 먼지로 사라질 운명이어서 슬프다. 그래서 우리는 김광석 노래에 공감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김광석은 너무 고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김광석을 그리는 뜻깊은 공연이 끊이질 않는다. 해마다 기일이 되면 그를 기리는 음악제가 열린다. 방송에선 그를 추모하는 경연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물론 그 행사의 의미를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김광석의 노래들이 오히려 우리들의 마음과 멀어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직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김광석이 너무 상품화 하고, 많이 팔리고 소비되는 것에만 집중되는 건 아닌가. 이건 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김광석 본인은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때론 동네 형과 같이 혹은 아저씨처럼 김광석은 늘 우리 곁에서 “행복하세요”를 외치던 보통의 존재였다. 창작자이자 가수로서 입지를 굳히고 음악적으로 성공하고자 했던 그의 바람을 외면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화석화(化石化)된 김광석. 영원한 청년 김광석. 늘 웃는 모습의 김광석. 주위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김광석 콘서트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언제나 따뜻했다고 한다. 어떤 경우엔 무심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기타 줄이 끊어져 아무 말 없이 나간 적도 있다. 그도 한 인간인지라 순간순간 감정에 충실했을 것이다. 완벽한 공연을 펼치고자 끊임없이 연습했던 김광석.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고 감당하려 했던 슈퍼맨 김광석. 단순 노래꾼을 넘어 창작자로서 도약하고 싶어했던 뮤지션이 바로 김광석이다.


김광석은 우리들의 삶의 노래이다


누구와 어떤 노래를 언제 어디서 부르냐가 결국 가수의 모든 것이고 역사가 된다. 그래서 오늘도 무수히 많은 가수들이 삶의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은 김광석과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삶의 노래이다. 그의 음악적 성공은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제 김광석의 노래는 그만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들과 함께 공존하는 노래들이다. 그래서 “김광석은 우리다”라고 외치고 싶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려내 보고 싶다.


1996년, 김광석이 떠나고 시간은 흘렀다. 1990년대 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고 세기말을 거쳐 2000년이 시작됐다. 2000년 초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남북간 사상 첫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고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사람으로선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편, 지금도 믿을 수 없지만 만인의 연인 장국영이 호텔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 한국 문학에선 박민규라는 걸출한 신인 작가가 당당히 닻을 내렸다. 민중가요 진영 내에선 록을 적극 도입하기 시작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우리나라 축구팀은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 모든 자리에 김광석은 없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