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을 쓰다
내 글은 얕은 개울물 같다. 속히 훤히 들여다 보인다.
완성하지 못한 글을 고치다 포기하고 나간 게 몇 번인지 모른다.
한계에 부딪힌 것인지,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글들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니,
생각의 얕음과 그것을 대변하는 빈약한 어휘들,
엉성한 얼개와 내용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현재와 너무 먼 과거의 일들을 추억으로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과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었다.
뒤늦게 깨달은 것이 아니고, 그냥 모른 체하고 있었다.
이직 완성하지 못한 글들을 미련 없이 지웠다.
예전에 지도교수님이 학과 학술대회 인사말 중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을 언급한 적이 있다.
자료는 넘쳐나지만, 논문을 쓰려면, 자신이 원하는 주제에 맞는 자료를 수합해,
잘 다듬고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나는 지금 수없이 많은 구슬 밭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다.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
예화와 형용사 사용은 최소로 하고, 비유는 가급적 쓰지 않고,
적확한 어휘를 찾아 써 생각을 단문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쫓기듯 글을 쓰는 일은 하지 않기도 다짐했다.
무엇보다 글을 잘 쓰고 싶어졌다.
글쓰기를 잘 못하는 사람은 생각도 잘 못한다.
생각을 잘 못하면 남들이 대신 생각해줘야만 한다.
- 조지 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