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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Oct 16. 2023

색장 정미소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지난 주말,

전주 인근, 옛날 정미소를 개조한 카페를 방문했다.

주소지에 '색장'이라는 이름이 들어가고, 원래 건물이

정미소로 쓰였으니, '색장 정미소'라는 단순하고 순수한

이름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고 알려주는데, 카페가

쉬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인근에 주차하고, 길 건너편에 허름한 양철지붕 건물이

카페가 아닌가 생각하고 가까이 가보았다.

카페라는 이국적인 어휘와 내가 경험한 현대적인 내외향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눈앞에 있는 카페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뒷 건물 옆에 사람이 다닌 흔적이 있는 소로를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부채에 손 글씨로 쓰인 메뉴를 찬찬히 훑고, 아들과 내가 먹을

만한 것으로 주문을 한 후에야, 내부를 꾸며놓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에게는 그 물건들이 그저 비현실적인

과거의 유물로 보였을 것이다. 추억으로 가득 찬 이 카페의  물건들에 대해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질문도 호기심도 없는 아들 녀석의 무관심에 내심 서운했다.

아들은 초코 아이스크림을 연신 입으로 공수해 가며,

휴대전화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집중력으로 이 과거를 품은 '정미소'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 속에서 가상의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타임머신을 탄 듯, 이 물건 저 물건들을 관찰하고 만지면서

과거로 과거로 찬찬히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특히, 오래된 교과서들의 빛바랜 흑백 세상, 내가 살았던 그 세상,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덧없이 흘러간 세월이 아쉬워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자꾸 미련스럽게 붙잡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방학 때마다 섬에 사는 시골 할머니 집에서 지냈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 선착장에서 배에 올라 뱃고동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시골섬과 할머니. 멀어져 가는 나를 바라보며, 

눈물 훔쳐가며 서럽게 손을 흔들던 할머니가 여전히 내게는 따뜻하고 눈물 나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추억은 과거의 현실이지만, 지금의 고단한 삶을 견기게 해주고 미소 짓게 하는 비타민이자 진통제다.    

조용필과 칼라 TV의 등장으로, 세상은 서서히 형형색색으로 물들어갔고,

가난하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키 작은 구식 대한민국은,

이제 화려하고, 편리한 것들을 쑤서 넣은 차갑고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찬 '이 편한' 세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21세기의 차가움 속에서 따뜻한 양지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 눈물겹도록 반갑다.

다양한 방식으로 추억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과 그들의 삶에 

따뜻한 온기가 함께 하길 기원한다.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숨결이 느껴진 곳에

내마음 머물게 하여 주오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곁에 살리라

아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정녕 기쁨이 되게 하여 주오

그리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주오

한순간 스쳐 가는 그세월을

내곁에 머물도록 하여주오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

사랑은 영원히 남아

언제나 내곁에


  - 조용필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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