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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Jan 05. 2024

무서운 이야기

How Safe Do You Feel?

중학교 3학년,  등굣길 시내버스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앞 쪽에 무슨 일이 있나 싶었지만, 그보다 지각할까 걱정되어 시계에만 눈이 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교회에서 1년 선배 누가가 섬뜩한 얘기를 해줬다.

혹시 며칠 전에 등굣길에 차 막히지 않았냐고 물어보며, 사실 그날 누나 학교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학교 학생이 대형 트럭에 치어 사망했다는 것이다.


누나 학교에 무서운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고 했다.

죽은 학생의 일기에, 사고 전 며칠 동안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꾸 따라왔다고 적혀있다고.

그래서, 그 검은 옷 입은 사람이 저승사자였을 거라고. 그래서 그 학생을 데려가기 위해 따라

다녔을 거라고. 교통사고와 근거 없는 풍문이 버무려진 공포분위기 때문에 며칠 동안 야간 자율 학습 후 하굣길이 무서웠다.


시간이 흘러 학부 3학년 여름,

당시, 영어동아리에서 방학 때면 집중적인 공부를 위해 자취방을 잡아 합숙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해 여름 방학은 기숙사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동아리방과 도서관에서 보냈고,

밤 10시 정도에 함께 기숙사로 돌아왔다.

가끔 합숙팀장인 나의 묵인 하에, 술모임을 허락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빠질 테니 후배님들만 모여 편하게 드시라 하고

나는 홀로 도서관에 남았다. 그날도 10시에 기숙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두 건물 사이 좁은 길을 지나야 했다.

좁은 길로 들어서던 찰나, 나도 모르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는데,

사람 형체를 한 검은 무언가가 서있었다.

순간 10년 전 들은 그 일이 뇌를 빠르게 스쳤다.

그때 학생이 죽기 전에 자기를 따라다녔다던 '검은 옷을 입은 존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순간 죽을힘을 다해 기숙사를 향해 미친 듯이 내달렸다.

기숙사 입구를 과속으로 통과하고, 복도를 순식간에 지나, 방문 잠그고, 불을 켜고, 스탠드도 켰다.


모임이 끝나고 온 룸메이트 후배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었고,

그 후배도 소름 돋는 듯 이불속으로 움츠려 들어갔고,

나는 밤새 공포에 부들부들 떨며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 '경험'은 오랫동안 지인들에게 해주는 여름 공포 레퍼토리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 후로 악몽이나 가위눌림, 그리고 늦은 밤에 홀로, 혹은 숲 같은 정리되지 않은 곳에서 잘못 본 것들에 대한 설명을 현실에서 찾지 않고,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대충 얼버무려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밤이 지나고, 아침 다시 그 길을 지나게 되었는데, 내가 검은 형상을 봤다고 믿었던 곳에 미대 조소과 건물과 적지 않은 사람 형상의 작품들이 널려있었다.

내가 본 것은 그것이었다.  


공포의 실체는 대상 자체보다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 큰 경우가 적지 않다.

어두움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래서 공포영화는 '어 속에 홀로' 있는 자가 타깃이 된다.

나는 '밝은 조명 아래서, 혹은 대낮에 군중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공포를 무서워한다.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밤에 발생한 사건 사고 소식 보다, 백주 대낮에 사람 많은 길거리에서

발생한 흉흉한 뉴스를 접할 때 걱정을 넘어 두려움을 느낀다.


공포가 현실이 될 확률보다, 현실이 공포가 될 확률이 높다.

영화 007 Skyfall 청문회 장면에서 MI6 국장 M(Judi Dench)의 대사가 자꾸 생각난다.


Ask yourselves. How safe do you feel?

(자신에 물어보십시오. 지금 안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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