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정
코미디언 '유재석'이 이끄는 프로그램에서,
80년대를 추억하는 가요제를 열었다.
여러 유명하고 인지도가 높은 가수들의 노래보다,
댄서 출신의 연기자, '이준영'이 화려한 춤과 함께
가수 박남정의 노래로 공연할 때, 나는 전율했다.
정확히 말하면 무서웠다.
1989년 1월.
가수 박남정 춤을 따라 하다가, 엄지발가락 인대가 늘어나 오른쪽
종아리 아래 전부를 석고로 둘렀다.
학교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혼자 목발을 짚고 등교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일했던 삼촌이, 키가 170이 넘는 운동부 출신의
조카를 매일 업고 등교를 했다. 하교 때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고, 봄 방학 직전까지 택시 타는 호사를 누렸다.
1989년 2월 초, 아마도 봄방학 직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짐가방 하나를 들고,
병을 고치고 돌아오겠다는 한 마디만 남기고
서울의 큰 병원으로 떠났다. 어머니는 간병을 위해 따라가신 터라,
둘째 이모가 한 달간 나와 두 여동생의 생활을 책임졌다.
삼촌은 어수선한 아버지의 사무실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켰을 것이다.
한 달쯤 지났을까, 개학하고 이틀도 지나지 않아,
서울에 병 고치러 가신 아버지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어린 자식 세명은
드라마에서나 일어날만한 일에 대해 전혀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죽음은 아버지를 통해 우리에게 그 존재를 알렸다.
죽음은 우리 삶의 일부이고, 최종 목적지이며, 예측 불가이기에
두렵고 신비한 영역이다. 어느 누구도 거스를 수 없고,
순서도 시기도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어머니는 갑자기 혼자가 되었고, 그 '혼자' 세명의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운명이
예고 없이 찾아온 것이다. 1989년 3월 3일은 그런 날이었다.
첫째 여동생이 중학교 입학하고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36년이 지났다. '박남정'의 노래를 다시 듣고 있는 2025년 가을,
그 때 그 일이 다시 반복되려 한다. 무섭다. 운명인가?
인고유일사(人固有一死),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지만
혹중우태산(或重于泰山),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혹경우홍모(或輕于鴻毛),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
- 사마천의 보임안서(報任安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