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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Dec 22. 2020

필사의 이유

아버지가 남긴 한 줌도 안 되는 유산을  나는 그것을 간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 사무실을 비웠다.

트럭에 실려와 대문과 담을 통해 가구들과 집기들이 우리  구석구석으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생각보다 많고, 다들 참 크다 느껴졌다.


그것들 모두가  쓸모는 덩치 큰 쓰레기로 느껴졌다.

아버지를 추억할 만큼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빠졌다.

저 주인 없는 것들을 어떻게 처리하나.  


이사하기 전, 버릴 것과 가져갈 것들을 분류하였다. 아버지의 집기들은 0순위로 버려졌다.

나는 아버지 수첩, 메모장, 손목시계, 명함, 그 안에 적혀 있는 아버지의 메모들을 챙겼다.

아버지는 어릴 적 서예가로부터 붓글씨를 배웠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방학 숙제로 일과표 작성해야 했는데,

아버지가 멋진 손글씨로 아들의 숙제를 도와주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아버지가 글씨를 잘 쓰신다고 칭찬하셨다.

아버지 글씨가 좋았던 건, 그것이 '어른'의 글씨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글씨만 봐도 나를 지켜주는 어른이 내 곁에 있는 것 같아 참 든든했다.

아무튼, 작은 상자에 잘 두었는데,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때 '경황이' 없기도 했고,

몇 번의 이사를 겪으면서 아버지의 유품들이 하나씩 하나씩.. 그러다 어느 순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덩치가 더 커지면서 아버지의 양복도 버려야 했고,

손목시계도 어디에 부딪쳤는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망가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와)의 사진들 빼고 추억할 만한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급한 성격을 다스리고, 어지러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시작한 필사였다.

나에게 퇴근은 장거리 운전기사가 일을 마치고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집을 향하는 것과 같고,

필사는 다음 날의 고된 업무를 위해 차를 정비하여 휴식을 주는 것과 같다.

이제 그 의미가 바뀌었다.

아직은 이른 나이라 생각하지만, 나는 매일 유품과 유언을, 편지를 동시에 남긴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필사는 현실을 사는 내게 묵상이고 명상이며, 신실한 기도이며, 가들에게 남긴 유산이자 유언이다.   

손가락 반 마디 두께의 노트를 다섯 권째 쓰고 있다. 다양한 종이의 재질과 줄 간격, 그리고 이런저런

펜이 사용되었다. 쓰고 버린 펜 보다 덤으로 구입해서 모아 둔 펜의 수가 늘어 걱정이다.

글씨를 기가 막히게 쓰는 친한 형의 글씨를 따라 하면서 나만의 필체가 생겼고, 직장 생활하면서 빠르게

메모해야 해야 할 상황이 많이 지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겪었고, 필사를 시작하면서 업무용 필체와 필사용 필체의 간극이 거의 사라졌긴 했지만, 통화나 회의 중 하는 메모는 중딩 때의 글씨를 보는 듯 판독이 쉽지 않다.  


매일 밤, 노트를 제사상처럼 펴고 필사할 글을 독서대에 위패 마냥 세우고,  

항상 쓰는 펜 몇 자루, 수정테이프, 샤프 한 자루, 지우개, 형광펜, 색연필 한 자루로 상을 차린다.

펜 한 잔에 첫 자음을 정성껏 따른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읽든 말든, 아빠의 유품으로 간직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미래에 나이 들어 있을 가족에게 과거의 아빠가, 그리고 남편이 유언이자 유품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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