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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 Dec 29. 2020

필사 노트를 필사하다

이것도 인생 낭비인가?

2020년 1월.

아내가 몇 장 쓰다가 책장에 꽂아둔 다이어리 한 권을 우연히 발견했다.

크기도 적당하고, 표지도 튼튼하고, 이래저래 어딘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쓰겠다 하고, 며칠 지켜보다가 어디에 쓸까 생각하던 중 필사를 하면 좋겠다 싶었다. 

주제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뒤졌고, 책장을 어슬렁거렸다.

첫 번째 필사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내가 보기에 쓸데없는 짓이었지만, 

취미가 딱히 없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겨 내심 좋았다. 더불어 글씨도 교정하고 말이다.


크리스마스 연휴가 마무리되던 어느 날,

두 아들 녀석은 각자의 방에서 부상당한 축구선수 마냥 바닥에서 뒹굴 거리고,

아내는 오랜만에 침대에 편히 누워 휴대전화로 뭔가를 토닥토닥거리고, 

만 하릴없이 거실을 둥둥 부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책장에 필사 노트 다섯 권이 나란히 사열해 있는 것을 보았다.

첫 번째 필사 노트를 꺼내 펼쳤다. 글씨도 내용도 산만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글자들과 내용들,

아직 변해가고 있는 필체까지 모두 눈에 거슬렸다. 게다가 물이 쏟아져 번진 글씨들까지.

리모델링을 하든지, 다른 데로 옮기든지 해야 했다.


두 권의 필사 노트를 펼쳤다.

길지 않고, 아직도 내 마음에 와닿는 내용들을 찬찬히 옮겨 적었다.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적었던 것들 중에서 지금의 내 마음과 주파수가 맞지 않는 글들도 보였다.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은 길이가 길어 옮겨 적기를 포기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판서 내용과 선생님들의 구두 설명을 연습장에 먼저 갈겨쓰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다시 책과 노트에 분배하여 옮겨 적었던 적이 있다.

대학입시까지 빠듯한 시간의 압박으로 자연스럽게 포기하긴 하였으나,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했던,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쪽으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다시 손보는 것도 그런 강박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이렇게 고쳐 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던가, 남의 시선이 신경 쓰여 그런 것인가? 모르겠다.



살다 뒤돌아 보면,

다시 살아보고 싶은 순간과 시절이 있다.

그럴 수 없음을 알지만, 후회라는 창(窓)을 통해

과거를 자꾸 돌아본다.

90%의 자의적 선택과 10%의 강요된 환경이

지금의 내 삶을 조각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 않지만, 너무도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가

나의 삶을 관통해 가족에게까지 미치는 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필사할 글을 찾아보면,

현자들의 말과 글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너무 진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이유가 뭘까?

삶의 복잡해 보이는 문제에 대한

해답에 가까운 지혜를 닮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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