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해본다.
편한 복장으로 아들 책상에 노트북 펴고, 핸드폰과 메모지를 좌우에 배치했다.
방학을 하여 오전에 빈둥거리는 막내아들 녀석이 내 무릎에 앉았다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가,
고객사와 통화 중인데 심심하다고 떼를 쓴다. 원격으로 회사 컴퓨터를 조작하고 있으니 혹시라도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볼 수도 있는 직원들이 신경 쓰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농땡이를 잘 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회사에서와 동일한 스케줄로 일하고 있다. 점심시간도 준수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회사에 있는 것이 더 낫다 말하기 싫다.
점심을 먹으니 침대에 눕고 싶다(고 생각할 찰나..)
꼬맹이가 "아빠, 심심해"를 자동 재생하며 몸서리를 동반한 '깨춤'을 춘다.
회사에 출근한 들 쉴 수 있었겠냐만은. 그래, 이 놈이 더 커서 더 이상 "아빠랑 안 놀아, 안나가" 할 때까지
잘 버티자. 아들이 태권도장까지 걸어서 데려다 달란다. 중무장을 하고, 아들의 손을 잡고 빨간 띠를 휘날리며 허연 눈으로 다져진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누르듯 걷는다.
아들놈이 편의점 안쪽으로 눈 빛 발사. 뚜뚜뚜~
나 曰, "그래, 가자. 뭐 먹을래?"
아들 曰, "가서 보고 고를래."
애벌레 모양의 젤리를 고른다. 계산을 하고, 5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까지 가면서 지렁이 모양의 젤리를
하나를 그 조그마하고 이쁜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질겅질겅 꿀꺽. 문득 어렸을 때, "브이 V"라는 '외화'에서
쥐를 한번에 삼켰던 그 외계인 여성분이 떠오른다. 무써운 사람.
"맛나냐?" 아들 曰 "응". 아들을 체육관에 넣고, 서둘러 집을 향해 돌아-서 려던 찰나,
"아빠, 4시 반에 집 앞에 나와 있어!".
돌아버리겠네.
3시가 넘어간다. 아.. 지친다. 아들 돌아올 시간 보면서 자꾸 시계를 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인터넷 서점과 쇼핑몰을 기웃거린다. 일하기 싫다.
업체에서 오는 전화와 베트남 지사에서 오는 메일과 카톡만 대응하고,
잠시 뻘짓타임을 갖는다. 문구 쇼핑이나 해볼까나~^^
시간이 4시를 넘어간다.
아들이 올 시간이 되어 주섬주섬 다시 옷을 끼어 걸치고, 집을 나선다.
아들이 언제 올까 두리번두리번.. 아들을 받고, 관장님께 배꼽인사 같이 하고,
차가 떠나는 것을 본 아들이 내 손을 잡고 다시 편의점으로 끌어당긴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줄다리기에는 과학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 항상 끌려간다.
동시에 주머니는 가벼워진다. 야~ 가벼워졌다.
내 지갑은 몇 년째 다이어트 성공이다. 넌 실패를 모르는구나.
재택근무에 대한 환상이 깨졌지만, 집에서 몇 시간이라도 아들과 좀 더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다만,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과 내 표현 사이가 멀다.
좀 더 따뜻하게 말할 수 없을까?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아빠는 아니다.
노트북을 정리하자마자, 아들놈이 등 위로 올라탄다.
"이리 오너라 ~ 엎[어 매치하]고 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