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와 별헤는 밤
수년 전의 강력한 지진의 여파로 인해
마추픽추로 가는 기찻길은 끊어져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까미노 잉카를 4일 동안 걸어서 그곳에 도착하고 싶었지만, 어머니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 내 마음대로 어려운 길을 택할 수는 없었다. 결국 비싼 돈을 주고 (남미에서는 관광비는 뭐든지 엄청나게 비싸다) 기차를 타야 했고, 그나마도 중간에 끊어진 바람에 기차역까지는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마추픽추를 올라가기 직전의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안테스에 도착해서 달짝지근한 잉카콜라로 목을 축였다. 가이드분은 마을에 남고 나와 어머니만 마추픽추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서 점점 의심이 들었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이 높은 곳에다 그 무거운 돌들을 가지고 와서 마을을 만든 것일까.
도착해서 본 마추픽추는 역시나 장관이었고 미스터리였다. 괜히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입증하듯이 놀랄 만큼 커다란 암석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관광객들을 반기고 있었다. 오래된 봉우리라는 의미의 마추픽추는 기이한 느낌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형언할 수 없는 유적들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 사람들은 그 당시 자기가 피땀 흘려가며 만든 이 건물들이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달에 왔다 갔다 하는 후세에도 많은 이들이 찾아올 것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겠지.
모든 위대한 일들이 다 처음부터 위대했던 것은 아니다. 때론 누군가의 명령으로, 때론 평범한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시작된 미약한 작업들. 돌 한 무더기와 물 한 바가지로 시작된 일들이 오늘날에도 남아 그 존재를 알리는 유적들을 보면 그 오랜 역사와 세월이 뭔가 거짓말 같으면서 알 수 없는 신비함으로 내게 다가오곤 했다.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생을 살다 가는 인간에 의해서 지구 역사에 깊숙이 새겨진 흔적들은 그 조물주의 생애의 10배 100배를 더 살아내 가면서 많은 것들을 거쳐왔겠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의 인생이 엄청 하찮아 보이다가도 또 굉장히 의미 있고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식의 극단적인 생각이 반복되곤 했다.
그럼 나는? 나의 인생은?
하찮을까, 위대할까.
고대의 신비한 유적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라마들을 바라보며 자문해본다.
우르밤바 협곡 안에 숨어있는 이 기묘한 세상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다시 숙소인 쿠스코로 돌아가는 기차에 탔다. 기차표는 무시무시하게 비싼데, 가이드분께 들어보니 이 기차의 지분은 칠레, 영국 등 다른 나라와 함께 소유하며 그로 인해 마추픽추로 인해 나오는 관광비 중 상당수가 페루가 아닌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보니, 왜인지 모르게 페루 아이들의 큰 눈망울이 무언가 서글프게 보였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싼 관광비를 받으면서도 막상 여기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크지 않아 어릴 적부터 돈벌이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인지 마추픽추의 감흥을 마냥 즐기기는 어려웠다. 분명 그 머나먼 옛날 마추픽추가 지어질 때에도 완전한 평등이나 부의 재분배 따위는 이루어지지 않았겠지. 시간이 흐르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함에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다. 아니 심지어 내 앞에 놓인, 혹은 내 안에 있는 작은 문제들도 고치지 못해 고생인데 뭐,, 라는 생각에 잠긴 채 기차는 다시 자동차로 갈아탈 지역으로 달려갔다.
이미 어두워진 밤길을 달리는 도중에 가이드분에게 물어봤다. 여기는 어디냐고.
가이드 분이 산 이름을 말해주신 건지 마을 이름을 말해주신 건지 모르겠지만, 우르밤바라고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지난 모든 산들이 우르 밤바산 길이 었다고 했다.
작은 마을 하나를 지나 산길로 올라 큰 언덕을 지날 때 쯤이었다. 며칠 전부터 별이 잘 보이는 밤하늘을 보고 싶다고 노래했던 것을 기억하셨는지, 가이드 분이 잠시 여기 멈춰서 하늘을 보고 가자고 하셨다. 으르렁 거리던 엔진음이 꺼지고, 가로등도 없기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빛인 헤드라이트 마저 끄니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빛에 익숙해 있던 동공이 점차 어둠에 익숙해 지려할 때, 아예 잔디밭에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하늘의 별을 묘사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구절들을 다 갖다 붙여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우주의 대서사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어릴 적부터 하늘의 별이 반이라는 표현은 다분히 과장된 시적 표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해발 3천미터 이상의 구름보다 더 높은 곳, 간판도 가로등도 그 어떠한 빛도 존재하지 않는 언덕길 어딘 가에서 보는 하늘에는 정말로 별이 반이었다.
은하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별들이 모인 강. 마치 강물에 햇살이 부서지며 빛나는 하나하나가 별이 되어 박힌 듯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진으로 잘 찍을 수도, 아니 겨우 사진 같은 걸로 담고 싶지 않은 광경.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있는 나를 어머니가 보시더니 놀라시며 말씀하셨다. 왜 울고 있느냐고.
나도 모르게 흘린 눈물에 놀라 후다닥 닦아냈던 기억이 난다.
글쎄. 지금도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다. 잘 울지도 않는 내가 그날 내가 무슨 이유로 눈물을 흘렸는지.
누워 있는 동안 주마등처럼 지나갔던 말 그대로 눈물 나게 힘들었던 캐나다에서의 1년 간이, 아니 모든 어려운 시간들이 떠올라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스무 해를 넘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경이로울 정도의 아름다움을 만나 경탄의 의미로 터져 나온 것일 수 도 있겠다.
아니 아마도 그건 세상에 이렇게나 굉장한 그림이, 1년 365일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이 장관이, 막상 여러 가지 방해꾼들로 인해서 몇십 년간 1번 볼까 말까 하게 만든 이 세상과 상황이 안타깝고 억울해서였던 것이다. 그 생각은 꼬리를 물고 나아가 우리가 늘 가까이 두고 함께 하면서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모든 귀한 것들에 대한, 아니 그 귀한 것을 모르고 사는 나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전이되어 슬픔을 자아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리 힘들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아프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뒤통수 맞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살아남았다. 그 와중에 내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많은 상황들이 돌이켜보면 감사하고 추억할 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강해 진채로, 더 많이 배운 채로. 그리고 모든 것을 지나와 여기 이렇게 누워서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고행길을 보상받을 만한 장면을 머릿속에 새겨놓고 있었다.
기다리는 일행들을 위해 생각도 먼지도 훌훌 털어내고 일어났다.
삶이라는 이름의 이 머나먼 여정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쓰러지고, 이겨내고, 이렇게 누워서 울어내고 , 다시 일어나겠지. 그리고 그 과정들을 틈틈히 기록해봐야겠다.
차는 다시 힘차게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밝힌 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우르밤바 언덕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