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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혁 I Brown Feb 25. 2017

모든 유치한것은 찬란하다

안나푸르나와 월든호수

안나푸르나를 올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작은 마을이나 숙소등을 거쳐야 한다. 걔중 규모가 꽤 있는 곳도 있지만 허름한 집 2,3개와 조촐한 빨래 그리고 늙은 나귀만이 지키고 있는 곳도 있었다. 그속에서 뛰어다니며 산을 오르는 여행객들을 신기하다는듯이 쳐다보는 아이들.

찌든 티셔츠에 더러워진 맨발을 한채지만

불쌍하다기보단 그 맑음과 순수한 웃음에 오히려 내가 신기하다는듯이 아이들을 지켜보게된다.

우리 기준으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 해발 3천미터의 산속에서 이 아이들은 무슨일로 이렇게 즐거워보이는걸까.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우리는 삶의 무게를 짐작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부모님이나 선생님등 다른 분들이 대신 짊어주시던 것들을 나눠받음에 따라 생각없던 꼬마아이 혹은 학생의 계절은 지나가고 어른의 계절이 마치 가을이 사라져서 한걸음 더 빨리 다가오는 겨울처럼 우리이게 다가온다.


집, 차, 대출, 보험, 저축, 투자, 이율, 세금, 공과금, 결혼, 육아 등등 어린아이들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들이 부지기수로 등장하며 그들을 괴롭히고 그러면서 하나씩 천천히 기존의 단어들을 지워나간다.


나비, 잠자리, 나무타기, 모래성, 얼음땡, 분수 등등 어른이 되면 시켜도 안할 일들을 좋아라하면서 해가지는줄도 모르고 즐거워 하던 시절.


전세계 이나라 저나라를 다녀보면서 공통적으로 봤던 장면중에 하나는 아이들은 분수에서 물만 뿜어져나오면 온 세상을 다 가진 사람차럼 기쁨이 충만하여 뛰어논다는 것이다. 옷이 다 젖고 신발이 다 젖어도 아이들은 남의 시선이나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에 대한 걱정은 하나없이 즐겁게 뛰어다닌다.

미국을 여행하던 중 보스톤 근처에 월든이란 호수를 찾아간적이 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쓴 고전인 월든을 읽고 꼭한번 가조고싶다고 생각했던 곳이라 기차까지 타고 열심히 찾아간 기억이 있다. 속세의 많은 것을 뒤로 한채 자연속에서 삶에 필수적인 부분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2년여간의 삶을 담은 책. 그 배경인 월든은 고즈넉이란 단어를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곳이었다.


 정말 한적하고 3층이상 건물하나 찾아볼 수 없는 시골이었지만 내가 가본 그 어떤 마을보다 행복이 가득했던 곳.

월든 호숫가에서 즐겁게 물놀이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언젠가부터 잃어버리고 있는 무언가를 그들은 아직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적인 어른들의 잣대에서 벗어난
순수한 유치찬란함.


어른이 되고나면 앞서말한 모든 아이같은 행위들을 유치함으로 치부하고 비웃어대거나 무시한다. 유치하게 왜그러냐고.  애들처럼 유치하게 왜 그러냐고.


아아 애들처럼 그렇게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나비 한마리만 날아들어도 세상의 신비를 찾은 눈빛으로 쫓아다니고

고급진 리조트없이도 모래성 하나로 행복하고

화려한 워터파크가 아니라 분수 하나로도 세상을 다 가진 아이들만큼만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을 완충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을 일이 있을까.

월든의 작가 소로우의 단순한 삶에 대한 글귀가 호수 근처에 남겨져있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유치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좌절하고 울어대지는 않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에 기뻐하고 웃기위해 노력한다.

어른의 무게를 내려놓고, 소소한 것 하나에 집중하고, 별거 아닌일을 가볍게 치부하고 무시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일상이 달라짐을 느낄 수 있다.

유치함이 주는 힘.

마음먹는것에 따라 일상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위대한 행복을 알기에.

그 찬란한 유치함의 햇살을 아이처럼 만끽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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