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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Aug 08. 2018

우리 집 동물가족 이야기

심바와 예삐와 까미, 그리고 주리

왼쪽부터 예삐, 주리, 심바, 그리고 까미

우리 집엔 현재 네 마리의 반려동물이 살고 있다. 고양이 심바와 예삐, 까미(까뮈). 그리고 강아지 주리가 있다. 그 외에도 우리 집에 잠깐 머물렀거나 즐겨 찾은 친구들은 몬드, 다이아, 레이, 반반이 등 수없이 많다.

우리 가족은 원래 동물을 키우지 않았었다. 지인의 부탁으로 잠시 맡아준 경험은 있었지만 동물 생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십 년 전,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따로 살던 형이 뱅갈고양이를 입양했고, 그로부터 약 일 년 후 장기간 해외로 떠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얼떨결에 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게 된 우리 가족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동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이 녀석의 성격이 워낙 거칠었기 때문이다. 뱅갈고양이라는 종의 특성이 삵과 가깝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녀석은 그 정도가 심했다. 그래서 라이온킹에 나오는 밀림의 왕 '심바'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심바는 자신에게 불편한 점이 있으면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을 강하게 물었다. 함께 잠들었다가 내가 뒤척거려서 본인을 건드리면 강하게 물었고, 간식의 양이 부족해도 물었으며 사료의 냄새가 맘에 안 들어도 물었다. 그 덕에 우리 가족은 모두 심바에게 물린 흉터들이 있고, 어머니는 얼굴을 물려서 오랜 기간 피부과를 다녔다. 서울에서 제주로 부모님이 이주하시면서 마당이 생겼고, 심바는 집과 마당을 오가며 생활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사람을 물지 않는다. 다만, 나무 위에 앉아있는 까마귀를 잡고, 족제비와 싸운다. 늦은 밤 피를 흘리며 귀가하는 일이 잦고, 부모님은 심바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일이 익숙해졌다. 동네 고양이들은 심바를 보면 피한다.

밀림의 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늠름한 심바'의 모습

다음으로 입양한 가족은 고양이 예삐다. 첫째 심바의 경우 품종 고양이를 전문 분양인에게 입양했으나 죄책감이 있었다. 거리에는 버려지고, 길에서 나고 자란 수많은 고양이가 있는데 심미적인 이유로 가족을 샀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래서 다음에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생명을 입양하겠다는 가족끼리의 합의가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간택 사건’이 발생했다. 친구들과 야외에서 술자리를 가지시던 아버지의 무릎에 길고양이 새끼가 훌쩍 올라와서 앉아버린 것이다. 우리 집은 첫째 고양이를 키우며 제법 고양이에 대한 공부를 한 상태였고, 아기 고양이를 함부로 입양하는 것이 행복한 고양이 가족을 망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그리고 여러 차례 아기 고양이를 내려놨고 또한 술자리가 끝나고 주변에 숨어서 어미 고양이를 한참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어미 고양이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기 고양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하셨다. 다음날 이 고양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부모님은 동물병원을 찾았고, 탈장이 심해서 수술이 급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또한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죽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예삐(라고 이름 지었다)는 수술을 받고 유아용 사료부터 먹기 시작했으며 지금까지 함께 잘 지내고 있다. 심바와 달리 예삐는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그리고 심바가 집을 잠시 비우면 많은 고양이들이 예삐와 놀기 위해 집을 찾는다.

심바와 예삐는 4년을 함께했다. 원수이자 친구이며 가족이다.

다음은 레이와 반반이다. 레이와 반반이는 우리 집이 제주도로 이사하기 전부터 동네에 살던 터줏대감들이었다. 레이는 머리와 목소리가 아주 큰 사내대장부였고, 털이 회색이라서 그레이라고 불렀다. 심바가 오기 전까진 동네를 주름잡는 녀석이었고, 매일같이 우리 집에 찾아와서 밥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심바가 달려가서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리고 반반이는 그런 레이의 여자 친구였다. 털이 흰색과 검은색 반반이라서 반반이라고 불렀다. 애교가 많고 조용한 녀석이었다. 어느 날, 반반이는 임신을 해서 배와 젖이 불어있는 상태로 집에 찾아왔고, 부모님은 지극하게 보살폈다. 그리고 반반이의 출산을 위해 창고에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산실을 꾸렸다. 그러나 거기에서 출산하진 않았다. 약 이주 후 그 자리엔 까만 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새끼가 많아서 키우기가 어려웠던 반반이가 믿을 수 있는 집에 한 마리를 맡겨둔 듯했다. 이 녀석이 바로 까미다. 그리고 머지않아 반반이는 범백(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이라는 병에 걸려서 눈과 귀에서 피를 쏟으며 집으로 찾아왔고(살려달라고 왔는지 새끼를 만나러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는 새벽에 부랴부랴 동물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죽었다. 반반이의 남자 친구 레이도 교통사고로 죽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울었고 우울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까미가 남았다. 그렇게 까미가 가족이 되었다.

까미는 코가 크고 빨갛다. 날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랐으나 사람에게 곁을 허락하지 않는다.

까미는 젖을 떼기도 전부터 키웠다. 자기가 놓인 창고를 벗어나지 않았고 움직임이 자유로워진 후에는 한 번도 사람에게 곁을 허락한 적이 없다. 처음부터 사람 손에 자랐으나 사람 손을 피한다. 까미를 만져본 건 중성화 수술을 위해 포획했을 때가 유일하다. 어릴 적부터 자신과 가깝게 지내던 예삐를 엄마로 생각하고 있고, 둘 사이는 아주 애틋하다. 주로 집 안에서 자는 예삐와 달리 까미는 밖에서 자는데, 예삐가 집 안에 들어오면 까미는 눈과 비를 맞으면서도 예삐가 나오기만을 창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에 머물렀던 개는 몬드와 호두가 있는데, 몬드는 제주오일장에서 팔던 새끼 강아지였다. 유독 못생겨서 늦게까지도 팔리지 않았고, 결국 어머니가 데려왔다. 그리고 아버지가 어릴 적 잠깐 키웠던 강아지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서 '몬드'라고 불렀다. 그리고 무럭무럭 자란 몬드에게 유기견 여자 친구가 생겼다. 몬드와 함께하라고 다이아라고 지어줬다. 다이아와 몬드는 대체로 함께 있었다. 워낙 덩치가 큰 몬드는 집 마당에 묶여 있었는데 다이아는 그런 몬드의 옆을 자주 지켰다. 그러나 몬드는 고양이들과 다툼이 잦았다. 그래서 고민하던 찰나에, 다이아를 입양하고 싶다는 이웃이 나타났고, 그분에게 몬드를 함께 보냈다.     

어머니는 길거리를 떠도는 유기견과 유기묘를 먹이고 이웃의 반려동물들을 돌봐주는 소문난 동물 사랑꾼으로 유명해졌다(아버지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대형 유기견에게 먹이를 주다가 물려서 몸 여기저기에 큰 상처가 있다). 그래서 이웃들은 동물과 관련된 문제가 있으면 어머니께 연락했다.

그중 근처의 어느 집에서 개들을 학대에 가깝게 방치해뒀다는 제보가 어머니께 들어왔다. 그 집은 강아지 세 마리를 키웠는데, 주인이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아서 산책은커녕 밥을 거르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그 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동의를 구하고 강아지들에게 종종 밥과 물을 가져다주셨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사료를 들고 그 집을 찾아간 어머니는 목이 매달린 채 죽어있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그 집의 강아지 중 한 마리가 발을 헛디뎌 목줄이 묶인 채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남은 두 마리를 입양하여 한 마리는 마을의 친구에게 분양하고 한 마리를 가족으로 들였다. 이 강아지가 주리다. 주리는 예전에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여러 차례 반복했었다. 목줄에 묶여 있는 작은 암컷 강아지는 수컷 유기견들에게 속절없이 당했을 터였다. 처음 입양할 때 주리는 말랐고,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으며 항상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어머니는 이 강아지를 거두며 정을 많이 주겠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정주리'로 지으셨다. 그리고 지금의 주리는 고된 심장사상충 치료를 이겨냈고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몸을 떨지 않는다.

주리는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강아지다. 머리가 크고 다리가 짧지만 제자리 점프가 특기다.

통조림 캔에 머리가 껴서 죽어가는 고양이를 발견한 어머니가 달려가서 고양이를 안고 수차례 할퀴는 상처를 참아가며 고양이를 구하는 모습이 쓰레기장 cctv에 촬영되어 제주시청에서 상을 주고 싶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었다(어머니는 거절했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걱정했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마을의 동물들에게 쏟았으며 인연을 맺는 동물의 수가 많아질수록 어머니 가슴의 상처도 많아졌다. 애완동물을 가축 정도로만 생각하는 이웃들과의 마찰도 생겼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제주로 내려가신 오 년의 시간 동안 길거리를 떠돌던 강아지들은 제자리를 찾았고, 길고양이들은 더 이상 사람을 보고 후다닥 도망가지 않는다. 쓰레기통을 뒤지지도 않고 영역싸움에 열을 올리지도 않는다. 그저 어머니 발소리를 듣고 몰려와선 사이좋게 밥을 먹고 돌아간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길고양이들은 시청의 협조로 중성화를 끝냈으며 더 이상 개체수가 늘어나서 마을 주민들이 싫어할 일은 없다.

나는 상당한 기간을 내가 직접 키웠던 심바를 제외하면 나머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동물의 추가 입양을 반대하기도 했다. ‘동물 털 알레르기’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와 동물의 치료를 위한 포획, 보금자리 설치 등의 육체노동으로 힘들어하시는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그러나 오 년이 지나니 마을에 있는 동물들의 변화가 보인다. 집을 드나드는 동물들의 건강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심바와 예삐가 사고를 쳤다며 불평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요즘은 제주에 내려가면 부모님과 인연이 있는 동물들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간략한 메모를 남긴다. 제주에 있는 가족들을 기록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다.

우리 집 동물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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