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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Apr 06. 2016

집을 찾는 끝없는 여정

COMMON CENTER, 김희천 개인전 <랠리>

(디아티스트매거진 기고문, 2016.01.29)


우리는 흔히 ‘미술관’이라고 하면 하얀 벽과 청결한 공간, 쾌적한 온도와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린다. 전시공간 내에선 창문을 찾기 어렵고, 작품 근처에 앉아있는 직원의 ‘사진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정도가 소음의 대부분이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선 작품(작가)은 관리의 대상, 그리고 관객은 경계의 대상이다.

그러나 영등포에 위치한 커먼센터(COMMON CENTER)는 미술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지만 작품(작가)과 관객을 분리하지 않는다. 오늘날 ‘동시대 예술’에 어울리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커먼센터가 위치한 영등포역 인근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지역이다. 1899년 영업을 시작한 영등포 기차역이 지상에, 1974년 영업을 시작한 전철역이 지하에 있다. 과거 번성했던 사창가의 흔적과 소규모 금속공장으로 쓰이는 저층 건물들, 그리고 백화점, 쇼핑몰, 아파트 등이 함께 있다.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간과 시각이 뒤섞여있다.

내가 김희천 작가의 개인전 <랠리>를 보기 위해 커먼센터를 찾아간 날은 유난히도 추운 날(2016.01.24)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커먼센터 안과 밖의 온도가 다르지 않았다. 커먼센터의 입구에는 문이 없었고, 4층 건물 중 어디에도 창문이 있었던 흔적은 있지만 창문이 없었다. 작가는 건물의 모든 창문을 떼어냈다. 그래서 전시를 보는 내내 ‘이 공간은 내부인가, 외부인가’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이 공간에 쾌적한 온도는 없었다. 또한 어느 곳에도 하얀 벽은 없었다. 천정과 기둥은 거칠게 구조가 노출되어 있었고 벽면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 또한 떼어버린 창밖으로는 금속공장이 만드는 날카로운 소리와 버스의 경적소리, 간헐적으로 기차소리까지 다양한 소리가 여과 없이 전시장 내부로 들어왔다.  

4층 건물에 작품은 단 두 개다. 거칠게 칠한 암실이 위치한 1층에서는 영상작업 <랠리>를 상영하고 있고,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4층 어느 방에 단 한 장의 사진이 있다. 사진은 추운 겨울 숲의 풍경이다. 그리고 렌즈 앞에 또 다른 렌즈가 있었던 것처럼 빛의 왜곡이 있다. 사진이 걸려 있는 방은 석양이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방은 몹시 춥다. 작가는 추운 날씨에 전시를 관람할 관객에게 아주 추운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작가의 농담에 몸을 부르르 떨며 생각했다. ‘한없이 불친절한 전시구나’

김희천 작가의 작업 <랠리>는 스페인어 대사와 한글 자막으로 이루어진 33분의 영상이다. 영상은 아르헨티나에 있는 전 연인, ‘루’에게 이메일을 보내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건물 유리에 비친 풍경을 실제로 착각하고 머리를 부딪쳐 죽는 새와 시각장애인이 바닥을 두드리며 걷는 모습, 그리고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진 지하철 안전 스크린의 존재 유무를 인지하지 못해 발생했던 인명사고를 소개하면서 존재와 인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또한 온라인 영상채팅(Chatroulette)으로 만난 사람과 정신수련 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대화를 통해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든다.  

또한 작가는 길과 버스, 지하철, 그리고 건물의 ‘창문’ 밖으로 사물이 중첩되어 보이는 현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반사와 사물의 중첩은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창문 밖의 풍경은 사람이 걷다가 사라지고, 자동차는 인도를 달린다. 땅과 하늘이 역전되고 사물은 겹겹이 쌓이고 현실은 생경해진다. 이처럼 유리창을 통해 현실의 질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존재와 의식,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대해 의심한다.

그리고 작가는 서울 도심에 공사 중인 비현실적인 규모(scale)의 건물, 롯데월드타워를 영상에 담았다. 백 층이 넘는 건물의 공사현장과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초현실적이다. 석촌호수는 화장실 변기의 물처럼 보이고, 사람은 너무 작아서 존재의 인지조차 어렵다. 그리고 비현실적(가상) 공간에서 작가는 ‘집(casa)’에 가고 싶고 로그아웃하고 싶다고 말한다.  

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난다. 아버지는 그에게 현실과 공간을 초월한 ‘집’이다. 작가에게 집은 현실과 가상, 그 어느 곳에도 해당하지 않는 위로와 위안의 공간인 것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아르헨티나에 있는 여자친구와 온라인으로 이별하는 것을 경험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존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어쩌면 김희천 작가의 작품 <랠리>는 자신만의 ‘집’을 찾는 끝없는 여정을 표현한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춥고 좁은 암실에서 영상을 관람한 후에 커먼센터 밖에서 접하는 영등포의 풍경 모두가 비현실적이다. 낡고 낮은 건물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유리창의 쇼핑몰이 함께 있고 기차와 버스, 금속을 가공하는 소리가 함께 들린다.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니 한파로 바닷물이 얼고 제주는 폭설로 항공운항이 통제되었다. 현실에서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 비현실(인터넷)에서 현실의 소식을 접한다. 이런 세상에선 스스로의 존재마저 의심스럽다.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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