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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Jun 14. 2021

건축, 그리고 예술의전당 1/2

예술의전당 건립 배경과 건축적 평가

건축과 도시계획으로 학사와 석사를 받고 예술의전당에서 근무한 지 8년째다. 자연스럽게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이유와 예술의전당의 건축적 평가, 도시적 가치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자신 있게 말해야 하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말할 때마다 망설이게 된다. 예술의전당 건축에 대한 세간의 엇갈린 평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나의 입장을 정리해본적이 없거니와 도시적인 맥락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했다. 그래서 정리하기로 했다. 말과 생각은 잊고, 글은 남는다. 글을 써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그래서 새삼스레 회사의 건립 배경과 건축에 대한 책과 기사를 닥치는대로 읽었다. 몇 가지 기억에 남는 레퍼런스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책) 예술의전당, 30년 / 예술의전당 / 2018

(책) 빨간 도시:건축으로 목격한 대한민국 / 서현 / 2017

(책) 만인의 건축 만인의 도시 / 김석철 / 2013

(기사) 지붕에 갓 씌우니 그제야 됐소 / 국민일보 / 손영옥 / 2020

(기사) 예술의전당 20년 뒷담화 / 한겨레신문 / 구본준 / 2008


(여담으로) 상기 레퍼런스 목록 중 첫 번째인 "예술의전당, 30년"은 개관 30주년을 기념하여 회사에서 발간한 책인데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필자들의 글이 짜깁기 된 구성과 책의 디자인을 보고 실망하여 읽지 않고 방치했었다. 이 책의 출판디자인을 워크룸(Workroom)에서 했다. 워크룸은 시각디자인, 특히 출판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개인적 취향과 잘 맞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책은 유독 가독성이 떨어지는 레이아웃과 난해한 색감을 갖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다시 읽어보니 방치하기엔 아까운 책이다. 예술의전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각자의 전문분야 및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의전당에 대하여 쓴 글이 엮여 있는데, 자료로 남아 있지 않아서 몰랐던 사실들이 다수 있었다. 사료의 수집과 보관으로서 가치가 있다. 특히 예술의전당 건립에 어떤 건축적, 도시적 철학과 목표가 있었으며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어떤 외부요인으로 현재의 결과물이 도출되었는지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글을 두 편으로 계획하고 있다. 첫 번째 글에서 예술의전당 건립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건축적 평가를 하고 두 번째 글에서 예술의전당의 도시적 가치와 공공성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첫 번째 글은 앞서 밝힌 레퍼런스를 정리하고 공간을 경험하면서 느낀 주관을 더했다. 두 번째 글은 대학원 수학계획서와 도시를 공부하며 메모했던 글을 정리할 생각이다. 대표성도 객관성도 없지만 예술의전당 재직자로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썼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예술의전당 건립 배경과 추진과정]

예술의전당의 건립은 1982년, 전두환 정권에서 추진되었다. 이 시기에 함께 추진된 시설로 천안의 독립기념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다. 예술의전당 건립 초기에는 4대문 안에 위치한 옛 서울고등학교 자리와 장충공원 인근 남산 기슭에 건설하는 것이 고려되었다. 그러나 토지 매입비가 높고 충분한 면적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서초역 주변의 서울시청 예정부지(현재 대법원 부지)가 대안으로 논의되었다. 하지만 토지수용 과정에서 법적 문제가 발견되어 현재의 위치에 해당하는 서초꽃마을로 낙점되었다.

예술의전당 설계는 국제공모로 진행되었으며 당시 국내를 대표하는 건축가인 김수근, 김중업이 모두 공모에 참여했으나 신인이었던 김석철의 공모안이 당선되었다. 김석철의 공모안이 당선된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김석철의 안이 설계 공모의 가이드를 가장 충실히 준수했기 때문에 당선되었다는 것이다. 설계 공모 가이드는 "도로 쪽으로 건물이 나오도록 배치"하는 것이었는데 김수근과 김중업의 공모안은 도로 쪽에 개방 공간을 배치하고 우면산의 경사를 따라 건물을 배치했다. 김석철만이 가이드를 준수하여 도로 쪽으로 건물이 나오도록 설계했다.

참고로 원래 예술의전당 건설 계획을 보면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지하도로를 연결하고 지하에 쇼핑몰을 조성할 계획이 있었으나 공사비 문제로 취소되었다. 그래서 남부터미널역에서 약 1km의 거리를 보차분리가 되지 않은 도로와 왕복 8차선의 남부순환로를 건너 섬에 가듯이 예술의전당에 도달하는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왕복 8차로의 남부순환로와 우면산에 의해 예술의전당은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사진출처 : 예술의전당)


[예술의전당 건축의 평가]

국내를 대표하는 건축지 <SPACE>에서 건축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현대 건축물을 평가하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최악의 건축’ 부문에서 서울시청사에 이어 두 번째로 평가되었다. 이렇게 평가받는 원인에 대해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한데, 첫 번째는 “전통을 직역한 촌스러운 디자인” 때문이다. 물론 초기 설계안은 현재와 달랐으나 정치인, 관료 등과 디자인 협의 과정에서 현재와 같이 변경되었다고 하니 (시대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건축가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동선과 공간 구성이 미흡하다. 출연자, 직원과 고객의 동선을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예술의전당 설계에서 고려되지 않았으며, 설계안에 따르면 교육동이었던 공간이 외부요인에 의해 서예관으로 변경되었고 교육 프로그램이 분산되어 운영에 어려움이 생긴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세 번째는 입지다. 외국의 경우 문화예술시설은 접근성이 좋은 곳에 광장, 시청, 공원 등과 인접하고 있어서 우연한 방문이 가능하지만 예술의전당은 목적이 있어야 방문한다. 이 경우 문화예술시설이 도시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수근, 김중업의 공모안이 가이드에서 벗어나면서까지 도로 쪽에 개방 공간을 배치하고 유동인구 유입을 목표하려고 했으리라 추측할 따름이다.)


그러나 예술의전당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문화예술시설과 비교할 때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국가를 대표하는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1988)은 전면에 열주와 계단이 근엄하게 들어서서 친숙하게 들어갈 수 없는 형태이며, 국립극장(1973)도 마찬가지로 깊은 산속을 들어가면 열주와 계단이 전면에 있는 극장을 마주하게 되는데 엄숙하여 마치 신탁을 받는 것처럼 어렵게 느껴진다. 이런 건축과 비교할 때 예술의전당 로비는 항상 열려 있으며, 권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당시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을 위한 전문 공연장 건축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음향과 기술적 구현이 가능한 공간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극장에 방문하면 때때로 느껴지는 열패감은 숨길 수 없다. 아르코 예술극장은 시가지에 자리 잡고 있고, 공원을 통해 진입하며 높은 계단이나 열주 없이 벽돌로 지어져 있어서 친숙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건축은 어김없이 대학로를 문화로 충만한 지역으로 바꿔놓았다.

 

그렇다면 예술의전당의 도시적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그리고 확장 가능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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