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공부한 사람치곤 편식이 심한 영화 취향을 가졌다. 다양한 영화를 보는 편은 아니고, 한번 보고 좋았던 영화. 좋아하는 영화를 수십 번 수백 번 보는 것을 즐긴다.
이것은 비단 영화뿐 아니라 책. 음악 모든 것들에 적용된다. 다시 보고 싶은 장면-페이지-마디를 꺼내 보는 것.
반복이 주는 쾌락이 있다. 다음에 나올 대사와 동작을 미리 알고 있을 때의 뿌듯함과 안도감. 그리고 그런 감정은-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게끔 만든다. 반면 처음 보는 영화는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접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게 된다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에 방해가 된다. 그리고 약간은 기분이 나쁘기까지 하다. 내가 느끼는 것이 처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보가 처음이 된다는 게. 첫 정보만큼은 영화를 보면서 얻고 싶은 이상한 심리.
완전한 관객의 입장이라기보다, 제작하는 쪽과 소비하는 쪽에 한발 씩 담그고 있는 그런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또 아니고.
나 자신도 알 수 없을 만큼의 애증관계에 사로잡힌 영화와 나.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화려한 화면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영화 속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다.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조용히 지켜보는 일이 얼마나 은밀하고 감동적인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영화 좋았어?
-약간 심각했어.
코미디를 더 좋아해?
-그렇진 않지만 너무 슬플 필요는 없다고 봐.
인생이 슬픔과 행복의 혼합이잖아.
영화는 인생과 같아.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거야.
-그럼 영화가 왜 필요해?
그냥 집에 앉아서 인생을 살면 되는데
삼촌이 말씀하시길 ‘우린 영화가 발명된 이후로 삶을 세 번 산다’ 하셨어.
-그게 어떻게 가능해?
영화가 두 번의 삶을 준단 뜻이야. 일상생활을 통해 얻는 삶 외에도
예를 들면 살인이라든지. 우린 사람을 죽이진 않지만 살인 충동은 있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영화를 통해 얻게 되는 거야.
-그러면 뭐가 이득인데?
인생이 그렇게 끔찍하면 왜 살아?
남에게 친절을 베풀면 언제든 돌려받기 마련이야.
사람을 살해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그건 하나의 예일뿐이야. 다른 이유도 많아.
삼촌은 역시 말씀하셨지.
구름이 없고 나무가 없다면 아름답지 않다고.
우리도 마찬가지일 거야. 그 말에 감명받았어. 날 여러 면에서 바꿔놨지.
-비극적으로 들리는데 활기찰 순 없는 거야?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
남학생과 여학생. 이 두 명의 대화를 보고 있노라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미숙한 존재들이 나누는 귀여운 대화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직업을 떠나 세상 모든 사람이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한다. 멋진 스토리텔러가 될 것인지, 그저 그런 스토리텔러로 살아갈 것인지는 다르겠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들려주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는 나를 더욱더 나답게 만드는 일인 동시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운 일이라고. 긴 새벽을 고통스럽지 않게- 버틸 수 있도록 해주는 매우 인간적인 처방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