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문제를 겪는 쪽이다.
조금이라도 취향이 아닌 것을 곁에 두지 못하는 병.
취향은 그 사람과 내가 얼마나 친해질 수 있는지 예상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혹은 나와는 다른 호기심에 다가가 보고 싶게 만드는 어떤 것. 어느 정도 비슷할 수는 있지만 모두가 같은 취향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한 것. 우리는 그런 걸 개인의 취향이라 부른다. 취향이라는 것은 모든 방면에 적용되는 것이기도 해서-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매력적인 동시에 본인 자신이 괴롭고 만다. 그리고 나는 약간 괴로운 쪽.
매력적 이라고는 얘기 못하겠다.
신기한 것은 ‘취향이 어때요?’ 하고 물어보지 않아도-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만났을 때 풍겨오는 느낌만으로 ‘우리는 통한다’라는 것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미소 짓는 법. 걸음걸이. 목소리의 울림. 시선처리. 나를 대하는 태도. 젓가락질하는 손의 모양 등 꽤나 다양한 방법으로 취향을 캐치해낸다. 이런 것들을 정확히 내 뇌의 어느 부분에서 관할하는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으나, 거의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라 생각할 뿐이다.
다방면에 걸쳐 확고한 취향 중에 가장 큰 확고함을 자랑하는 분야는 음식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나는 먹는 행복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잘 먹는 사람에 속한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확고한 취향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취향을 지켜내고 더욱더 갈고닦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든 새로운 취향을 찾아 떠날 준비가 된 모험가들도 있다.
나는 모험가는 아니기에. 대부분 좋아하던 것들을 계속해서 좋아하고. 좋아하는 메뉴를 계속해서 주문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해서 듣는다.
언젠가 이런 날 두고. “지겨운 걸 즐기는구나.”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불분명한 취향의 너는 평생 경험하지 못할 행복일걸!’ 하고 맞받아치지 못해 아쉬워했었다.
(이 멋진 멘트는 다음날 새벽 침대 위에서 떠올랐기 때문)
아. 단점도 있긴 하다. 멋지다고 생각하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할 생각을 안 한다는 거. 마음의 말뚝 같은 게 있는 건지, 이건 좀 취향을 넘어서는 문제다. 이를테면 ‘트렌드’ ‘유행’ ‘핫플레이스’ ‘박스오피스 1위’ 같은 말들은 나와는 거리가 먼 얘기들.
어째서인지 인기 있는 것들, 유행하는 것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먼 세계처럼 대하게 된다.
어렸을 때 어른들 하는 말 중에 친구를 잘 사귀어야 된다고. 자기 자식이 잘못된 행동을 해서 자식의 친구 탓을 할 때 주로 하는 말.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근묵자흑’ ‘유유상종’ 그런 말들이 나에게만큼은 해당사항 없는 말인 거다. 주로 나의 취향을 내 친구들이 좋아하게 되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주변 사람들이 묻는 쪽.
확실히 고치는 쪽은 아니고 고장 내는 쪽이다. 물드는 쪽 보다는 물들이는 쪽이고.
그래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한참이 걸린다.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우리 친해’ 하고 말할 정도가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면 믿으면 되고, 같이 가자고 하면 따라가면 되는데- 좋아지지도 않고. 좋아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으며. 기발한 이야기에 동요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고민은 진짜로 특이한 취향의 문제를 달고 살아서일까. 개인의 취향과는 전혀 관계없는 성격의 문제일까. 삼십 대가 되도록 답을 찾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