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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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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Feb 13. 2022

타고난 것


이것은 재능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얘기다.


약골 체질을 타고났다. 내 몸이 이토록 약골인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확히는 태어나기도 전 엄마 뱃속에서부터 였을 것이다.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고작 임신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겪은 일을 기억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일.


엄마의 양수가 터졌다. 아이를 낳아본 여자들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알 것이다. 임신 3개월 때의 태아는 굉장히 작아서  날씬한 여성들 같은 경우에는 임신을 한 것인지. 아닌지 표도 나지 않을 만큼 존재감이 작을 때다.


엄마는 그 길로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실려 갔다. 택시를 직접 잡기는 했지만 택시 안에서 혼절했으니. 실려 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엄마의 일기장 속에서는 양수가 다리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모습이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 묘사가 너무 끔찍하고 생생해서 차마 여기에 쓰지는 못하겠다. 엄마 본인도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느껴지는 문장들이었다. 의사는 태아가 이미 숨을 쉬지 않는다고 했다. 가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죽은 태아가 뱃속에 그대로 있으면 엄마가 위험하기 때문에. ‘죽은 나’를 꺼내는 수술을 해야 했다.


놀랍게도. 수술대 위에서 마지막으로 태아의 위치를 확인하는 순간. 심장이 다시 뛴다며- 세상 밖으로 강제 추방당하는 일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 멀쩡히(멀쩡하지는 않았겠지) 살아있던 나를 죽었다고 말한 게 의사의 판단 미스였는지. 아니면 진짜로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다시 쉬기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후에 (엄마 뱃속에서) 7개월을 더 살고. 내가 태어났다는 것은 사실이다. 양수가 다 빠져서 텅텅 비어 버린 자궁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여자의 몸이 신비하다는 것을 엄마의 일기장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가지기 전에 이미 한 번의 유산 경험이 있었고. 양수가 다시 차오를 때까지 꼼짝없이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다. 임신 중반을 넘어서면 멈춘다는 입덧도 열 달 내내 했다. 여름에는 복숭아. 겨울에는 호박죽으로만 연명했다. 다른 음식은 전부 토해내고 먹지도 못했으면서. 신기하게 복숭아와 호박죽은 먹을 수 있었 단다. 후에 내가 복숭아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우연이 아닌 것을 알고 소름 끼쳤다. (더 소름 끼치는 것. 호박죽도 좋아함) 영양실조 상태의 엄마 덕분에 뱃속의 나도 덩달아 영양실조였다. 엄마에게는 끔찍한 열 달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일기장에 적혀 있는 여러 날의 기록은 소설책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다음 내용이 궁금했다. 내 얘기지만 나는 모르는 이야기.

아침에 진통이 와서 병원에 간 엄마는- 24시간의 진통 끝에. 다음날 아침 나를 낳았다. 자연분만을 고집하며 24시간의 진통을 견뎌낸 엄마. 평소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다.


뱃속에서부터 순탄치 않았던 아이는 세상 밖에 나와서도 순탄치 않았다. 엄마는 모유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서. 나는 신생아 때부터 생우유를 먹었다.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첫인상은 새까만 눈동자 + ‘갓 태어난 아기가 이렇게 마를 수 있다니!’ 였다고 한다. 손가락이 다른 아이의 절반 굵기라는 문장이 충격적이고 기억에 남는다. 나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가냘픈 나의 딸’ ‘애처로운 나의 딸’ ‘특별한 나의 딸’이었다. 4살 때까지. 일 년 중 열 달 씩을 병원에서 살았다. 큰 병이나 장애는 없었고 감기나 천식, 폐렴 같은 것들로 입원하는 날이 많았다.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안 찌는 것을 두고. 어릴 때 맞은 항생제가 아직까지 혈액 속에 남아있어서 그런 거라는 : 주변의 이상한 추측도 있다)


외할머니는 내가 어른이 되어 사람 구실(돈 벌기)을 하게 된 것을 놀랍게 생각하신다. 어른이 된 지 꽤 되었는데도. 나의 직업 혹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같은 일상적인 일들을 묻는다. 외할머니는 나를 제일로 미워했다. 자기 딸 고생시키는 손녀가 얼마나 미울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엄마는- 평범하게 태어나지 않은 내가 분명 큰 일을 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도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대하며 산다. 보통의 엄마는 아니다.


내가 가진  중에 가장 짜증 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나약한 신체였다. 때문에 일부러 괄괄하게. 와일드하게. 뭐든지 해낼  있을 것처럼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살아보니,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어느 정도 극복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때는- 여기까지 인가보다. 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 그렇지만 욕심이 많은 나는 언제나 내 체력을 미워했고 그건 곧 나 자신을 미워하는 일이었다. 똑같이 먹어도 혼자만 탈이 나는 예민한 몸뚱아리를 한없이 미워하기만 하면서 살았다. 타고난 것을 미워하는 일이 스스로를 더욱 갉아먹는 짓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감사해야  . 지금은 꼬맹이 시절과 비교하면, 너무나 건강해졌다고 말할  있게  . 이런 찌질의 역사도 기록할  있게  . 타고난 것에 비해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 나의 주변에 많이 있는 .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을 나는 이미 겪었어. 태어나기도 전에 겪어 냈는 걸. 물에 둥둥 떠있어야 할 태아가 메마른 자궁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은 찾기 쉽지 않을 거야.


긍정적인 새벽 or 이렇게 라도 긍정적이어야 하는 새벽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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