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라는 고해상도 안경

by 김윤슬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침. ‘실패’의 사전적 정의다. 이 단어는 현실에서 ‘망하다’라는 서늘한 동사와 함께 짝을 이뤄 쓰이며 삶에 어둠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간이 살아가며 하는 모든 일들엔 수없이 많은 실패가 존재한다. 나 또한 실패하고 망한 1인 사업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문장은 자존심이 상해 마음 한구석에 꼭꼭 숨겨놓고 세상에 이야기할 수 없었다. 실패가 사전적 의미와는 다르게 내 삶을 선명하게 보게 해주는 ‘고해상도 안경’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진.


항공사를 박차고 나온 1인 사업가의 삶. 내 앞엔 ‘대표’라는 화려한 이름표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값은 정말 처절했다. 내가 뛰어든 사업은 고객의 타겟층이 명확한 만큼 레드오션 중의 레드오션이었다. 그만큼 이미 수 년을 앞서 시작한 사업체도 즐비했고 고객을 확보하는 일은 정말 어려웠다. 그럼에도 사업 특성상 매 달 신규 모객을 해야 했고, 그렇게 수익을 확신할 수 없는 불안불안한 매일이 이어졌다. 회사에서 매달 같은 날 통장에 꽂히던 ‘급여’라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던 나. 내게 그 하루하루는 마치 깜깜한 동굴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보물을 기다리며 홀로 계속 땅을 파는 것 같았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땅을 파는 행위가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지...)


3년이란 시간을 성실하게 땅을 파는 동안 번아웃증후군은 반복됐고, 다행히 사업은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올랐다. 하지만 안정궤도는 나에게 “이젠 해야 할 때가 됐어.”라며 또 다른 사업 숙제를 손에 쥐여 주었다. ‘위임’이라는 왠지 모르게 엄청난 무게감과 압박감이 느껴지는 단어와 함께. 이 또한 처음 해보는 일이었기에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적절한 후보자를 찾고 업무 위임 제안서를 주면 거절당하고… 이 과정 또한 수도 없이 반복했으니 위임 과정 중에도 나는 실패를 계속 경험한 거다. 그렇게 피 말리는 2주를 나는 사업일기에 이렇게 기록해 뒀다.



202ㅇ년 7월 10일의 사업일기

사업 3년 차면 이제 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실패와 새롭게 배울 점이 끊임없이 나온다. 그냥 사업은 평생 배우는 건가보다.

무한성장...하...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당시 야심 차게 준비한 새로운 사업 아이템마저 모객에 실패했고, 생애 처음으로 일기장에 샤머니즘(?)의 힘을 빌려보았다.



202ㅇ년 7월 13일의 사업일기

나는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시차를 두고 돌아올 것이다.

내가 만든 과정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에게 닿아가고 있다.



이 주문은 결국 효력이 없었다. 7월, 한여름의 온도는 30도를 웃돌았지만 일을 하는 나의 마음엔 시린 눈보라가 매섭게 쳤다.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에서 말이 소년에게 했던 대사 중 도와달라는 말은 가장 용감한 말이라는 문장이 있다. 평생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걸 민폐라 여기며 살아온 나는, 결국 함께 작업실에서 일하는 인생 선배에게 용기를 내어 “도와달라”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실패만 반복하고 있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고 도와달라고. 그리고 정말 인생을 조금 더 살아본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해 줄 수 있는 조언이 돌아왔다.


“40대,50대가 되어도 삶이 막막한 건 똑같아요. 그런데 인생 어떻게든 다 살아지더라고요. 그러니까 기왕이면 좋아하는 거 계속하세요.”


한 여름 온도보다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던 내게 그 위로는 지금도 여전히 내 일기장에서 마음의 눈보라가 칠 때마다 멈추게 만들어주는 다정함으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5개월을 좋아하는 일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반복되어 등장하는 번아웃이란 보스몹을 나는 결국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공식적으로 사업을 접고 갭이어를 선택한 ‘망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실패 한 행위 자체가 내 자신과 인생을 바라보는 해상도를 높여주었기 때문이다. 자유와 안정 중 내가 더 선호하는 것, 생각 외로 나는 도움이 필요할 때 기꺼이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다는 것, 삶은 늘 막막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것 등. 한 일본의 사업체 대표는 공부를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 정의했는데 실패 역시 나에겐 그런 공부였다.



공부란 단순히 머릿속에 지식을 채워 넣는 일이 아닌, ‘세상을 보는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뉴스의 배경음악일 뿐이었던 닛케이 평균 주가 지수가 의미 있는 숫자로 읽히기 시작하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고, 그저 흔한 가로수였던 나무가 '꽃을 피운 배롱나무'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

이러한 ‘해상도 업그레이드'를 즐기는 사람은 강하다.

*출처 : X @toyomane


내 인생의 4년을 바친 첫 사업은 시원하게 망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삶을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고해상도로 볼 수 있는 안경을 얻었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모든 사업체의 고군분투가 보이고, 삶이 막막할 때 헤쳐나갈 방법을 아주 조금은 선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사업 실패 이후 나는 국어사전에 있는 실패의 뜻을 개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실패는 일을 그르친 것이 아니라, ‘인생의 해상도를 업그레이드하는 행위’라고.




「주피의 음악편지」

'김뽐므 - 여인에게'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실패'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실패하다 [失敗--] : (사람이나 어떤 일 따위가 다른 일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고 그르치다.


또한 그르치다는 '행동이나 태도를 잘못하여 어그러지게 하다.'입니다.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은 '잘못'이란 단어입니다.


만약 실패하다를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뜻한 대로 되지 않다'로 정의했다면요? 왜 실패하다가 '잘못'하다로 이어지게 했을까요?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고 하면 안 되는 걸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잘못'이란 단어만 제외해도 운신의 폭이 넓어지죠. 실패한 나를 되돌아보지 않아도 되고, 자책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일 뿐이니까요. 실패는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 결과의 영역입니다.


살면서 우리가 얼마나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살까요? 인간은 아기일 때 울면서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걸 본능적으로 시도하지만 결국 우는 걸로 해결이 안 되는 걸 깨닫죠. 단지 이 과정에서 실패를 통해 내가 원하는 걸 모두 얻을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거죠. 이건 배움의 과정이지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는 게 잘못이 아니며, 얻지 못하는 게 잘못이 아닐 테니까요.


오늘 곡에서 가수는 구토하듯 나를 버리기도 하며 스스로를 미워하며 또 그리워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우리를 못살게 굴면서 스스로를 미워했다 안아줬다 할까요. 얼마나 원하다 얻지 못하고 이를 자책하며 잘못이라 여기며 아등바등 살아왔던 걸까요. 실패에서 잘못만 지우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을 텐데요.


그룹 하비누아주의 보컬이자 싱어송라이터 김뽐므님의 이 노래로 스스로의 고뇌와 고통을 뱉어냅니다. 거울 속의 나를,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죠. 하지만 보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목소리로, 멜로디로, 호흡으로 그런 나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스스로 상처 내 왔던 날 바라봐주고 이제는 안아주고 이해해 주면 좋겠습니다. 매일 실패하는 나는 결국 스스로를 조금씩 더 선명하게 보게 되는 연습일 테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odNCJNLOa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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