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게으름을 연습하는 시간

by 김윤슬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나는 이토록 쉽고 가벼운 질문 앞에서 늘 말문이 막힌다. 타인을 배려하는 데 익숙해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남편, 지인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기가 막히게 기억해 선물하는 다정함을 지니고 있으면서, 정작 ‘나’와는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다.


사실 10년간 내 삶엔 ‘나’를 끼워 넣을 틈이 없었다. 서른 번 가까이 탈락을 반복하며 겨우 입사한 항공사. 그렇게 어렵게 얻어낸 사원증이 6년간 내 자신인 듯 자부심을 갖고 일했고, 사내에서 동기들보다 빠르게 앞서 나가기 위해 전력 질주하던 속도가 곧 나의 정체성이었다.


퇴사 후 시작한 1인 사업은 더했다. 회사를 정체성으로 삼아 6년간 일하던 일 중독자 사원이 대표가 되어 만든 브랜드는 내 삶의 전부였다. 그래서 매출이 상승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고, 매출이 하락하는 날엔 영원히 삶이 끝난 듯 앓아누웠다. 그렇게 총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내 이름이 아닌 ‘회사의 이름’과 ‘일의 성과’로 살아온 대가는 ‘우울증’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왔다.

결국 10년의 커리어를 뒤로하고 큰 용기를 내어 ‘갭이어’를 선언했다. ‘갭이어’라고 하면 보통 퇴사 후 이직을 위한 혹은 잠시 멈춰 진로 탐색을 하는 과정을 떠올릴 거다. 하지만 나의 목적은 단 하나, ‘쉼’ 그 자체였다.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물리적인 시간이라는 재료가 꼭 필요하니까. 하지만 긴 시간 달리기만 한 경주마에게 가만히 서 있는 건 너무 어려운 숙제였다. 시간이 생기면 늘 일을 찾아 했던 나는, 텅 빈 시간이 어색하고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쉬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니...

첫 번째 연습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 ‘정주행’이었다. 사실 나는 지난 10년간 머릿속이 일로 가득 차 있었고, 타고나길 예민해 늘 생각이 복잡한 나에게 무언가를 진득하게 보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고행이었기에 해본 적이 없었다. 남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정주행’의 연습. 그런데 연습 중 뜻밖에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수확을 거뒀다. 바로 ‘게임방송’이었다. 누군가 공들여 만든 게임 속 세계관과 스토리를 다른 사람의 플레이로 대리 만족하며 보는 시간은 난생처음 느끼는 순수한 즐거움이었고 비로소 잘 쉬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져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10년 동안 몸에 밴 일에 대한 과몰입 습관은 휴식마저 업무로 둔갑시켰다. 일을 할 때 늘 오토바이를 타고 전력 질주하던 습관 그대로 게임방송을 며칠 연속으로 새벽 내내 탐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겨우 발견한 ‘나만의 쉼’은 나를 소진시키는 ‘또 다른 일’로 변질되었다. 종목만 바뀐 전력 질주는 결국 몸을 방전 시켰다. 이후 며칠간 글을 쓰던 작업실 조차 나가지 못했고, 침대에서 꼼짝도 못 하는 내 스스로를 다시 한심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 이 근황을 털어놓았고, 갭이어 중에도 쉬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스스로 채찍질 하는 나의 모습에 친구가 무심코 던진 질문은 머리를 강타했다.


“너 갭이어 중 아니야? 그런데 좋아하는 거 하느라 좀 쉬는 게 뭐 어때서?”

그제야 보였다. 내 갭이어의 유일한 목표였던 ‘쉼’을 위해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 잘 쉬고 있음에도, 생산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있는 내 모습이.


갭이어 2개월 차. 여전히 ‘쉬는 감각’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찾지 못했다. 다만 너무 오래 달려온 사람에겐 ‘쉼’도 근육을 키우듯 연습해야 한다는 점, ‘게으름’은 단순히 시간을 버리는 행위가 아닌 좋아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빈 공간을 허락하는 적극적인 노력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잘 쉬는 게으른 나’를 기꺼이 용서하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굴하듯 천천히 나의 취향을 파헤치다 보면 어느 순간 생산성이란 잣대 없이도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한 게으름을 기꺼이 연습한다.



「주피의 음악편지」

'강아솔 -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무엇으로 구성될까요?

물성은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를 빼고 남는 영혼, 마음, 정신 등은 설명하기 어려울 겁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코어를 만들 거라는 말도 쉽게 할 수 있지만,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타인에 길들여지고 타인을 길들여가며 삽니다. 그렇게 생성된 나를 진짜 '나'라고 믿곤 하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잃기도 쉽습니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질문을 받을 때 타인에 길들여진 나를 인지하지 않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서, 미움받기 싫어서 꾸며진 나를 만들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진짜 나는 잃어버리고 만든 가면을 얼굴로 인식하기도 하죠.


결국 변검처럼 어느 가면이 진짜 내 얼굴인지는 모르게되는 과정을 겪곤 혼란에 빠져 진짜 나를 찾기 위해 방황하기도 합니다. 결국 사회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구분해 내는 것 이 길이 인생의 과정이자 목표가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다

나는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고

모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다

나는 나를 외로이 버려두었고"


발라드 장인의 목소리로 듣고 힘을 내 봅시다.


결국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하는 길이 전체 인생의 과정일테니까요.


그게 우리의 인생이고 누구나 겪는 성장통일테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APoADxHgw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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