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하는 다정함에 대하여

by 김윤슬

“전화를 걸 땐 반드시 상대에게 먼저 시간이 괜찮은지 를 확인해야 해. 그게 예의야.”


내가 일본에서 배운 전화 매너다. 하지만 한국의 일상에서 이 매너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오히려 통화 언제 괜찮냐며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기 위한 나의 조심스러움은 ‘답답함’이란 시선으로 돌아오곤 하니까.


하루는 평생 일본에서 살다가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한국에 정착한 지 1년 된 나의 절친한 일본인 친구가 내게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너 만나면 정말 묻고 싶었는데… 혹시 시부모님이랑 자주 통화해?”


이 질문 한마디에 나는 친구가 처한 곤란함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친구의 남편은 직업 특성상 한 번 출근하

면 짧으면 3박 4일 길면 4박 5일 정도를 집을 비운다. 그럴 때마다 집에 혼자 있을 일본인 며느리가 걱정되는 한국인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예고 없이 안부 전화를 거셨던 것이다. '통화할 용건이 있어도 상대의 허락을 먼저 구하는 것’을 30년 넘게 지켜온 일본인 친구에게,정(情) 많은 한국인 시부모님의 안부 전화는 분명 사랑이지만 동시에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당혹감이었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 일본에 살며 휴대전화의 통화 기능을 사용해 본 기억이 손에 꼽는다. 여전히 우편물은 한국과

다르게 현역이고, 주된 연락은 메일이나 메신저를 이용한다. 절친의 라인 메신저는 알아도 전화번호는 모르는일이 허다한 그곳엔 상대의 일상을 휘젓지 않으려는 묵직한 존중이 흐른다. 그렇기에 메일이나 메신저에도 한국처럼 칼같이 답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선 흔히 일본을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상대의 일상을 존중하기 위한 물리적, 심리적인 쾌적함이 ‘개인주의’로 느껴지는 게 아닐까.


반면 한국은 사람 사이에 김이 모락모락 날 정도의 따뜻한 ‘정(情)’이 어디서든 눈에 보인다. 무엇이든 나누

는 넉넉한 인심, 시시콜콜한 안부를 자주 확인하는 끈끈함은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다정함이자 축복이다.다만 그 다정함은 가끔 너무 뜨거워 나를 데이게 만든다. 첫 만남부터 나이와 직업 등을 묻는 쏟아지는 사적인 질문들, 예고 없이 아무 때나 걸려 오는 전화. 또 서울이란 도시에 흐르는 전력 질주의 속도감도 나에겐 꽤나 높은 채도의 자극이다. 사람이 내리기도 전에 타기 시작하는 전철역 풍경, 읽자마자 답을 보내야 할 것 같은 노란색 메신저 창의 압박은 자극을 깊게 처리하고 타인에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HSP인 나를 늘 긴장하게 만든다.

*HSP : Highly Sensitive Person, 신경 시스템이 예민하여 자극을 깊게 처리하고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며 물리적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을 뜻함.


오랜 일본 생활에 여유로움이 조금 더 익숙했던 나는 귀국 후 한동안 이런 낯선 밀도 높은 거리감과 속도감이 무서워 집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 거리감 뒤에 있는 온도를 읽어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도망칠 일은 사라졌다. 하루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아파서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1시간 뒤 집 앞에 죽과 귤 한 봉지가 배달돼 있었다. 일본에선 상대방의 컨디션만 확인 후 없었을 다정함의 배달. 그 다정함을 한 입 삼키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를 숨게 만들었던 그 ‘낯선 밀도’의 정체는 누구 하나 외롭게 두지 않으려는 한국 특유의 지독하고도 뜨거운 온도의 ‘정(情)’이었다는 것을. 타인의 삶에 기꺼이 발을 담그려 하는 다정함의 무게였다는 것을 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엔 이면이 있다. 일본의 여유로움과 거리감이 누군가에겐 예의이지만 다른 이에겐 차가움

이듯, 반대로 한국의 정(情) 또한 누군가에겐 다정함이지만 다른 이에겐 부담스러운 침범이 되기도 한다. 그

리고 그 이면에 모두 발을 담가본 나는 이젠 안다. 상대의 일상을 존중하려는 묵직한 거리감도,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침범하는 다정함도 모두 사랑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묵직한 예의와 뜨거운 다정함 사이를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주피의 음악편지」

'다정 - I'm still alive'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만화 <헌터헌터>의 독특한 캐릭터죠, 히소카가 한 말이 있습니다.

"人は心がわりするからね、愛と憎悪は表裏一体さ"

- 사람은 마음이 바뀌는 법이니까, 사랑과 증오는 표리일체(동전의 앞뒷면처럼 하나)지


이렇듯 사람들은 양면성에 대한 많이들 이야기합니다. 특히 동전에 많이 비유하죠. 앞면과 뒷면이 있는 하나의 물체. 앞뒤를 가지지만 하나임을 가장 쉽게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하지만 전 실제는 평면의 동전이 아니라 구슬 같은 원형의 '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경계를 한눈에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농도가 진해지는 색으로의 변화처럼, 그 기울기가 달라지는 그래서 이분법처럼 구분되는 게 아니라, 비율의 변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우리는 동전의 경계처럼 날카롭고 좁은 길을 살금살금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별 같은 동그란, 의미 위에서 좌우로 어느 정도 왔다 갔다 하며 위치를 잡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일 중요한 건 그 위를 걷고 있는 '나'겠죠. 여러 층위를 가진 다정함이란 별 위에서 묵직한 예의와 뜨거운 정(情) 사이를 잘 조합하여 양쪽의 무게를 그때마다의 비율로 섞어가면서 나를 위한 그때마다의 기울기를 찾는 나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 타인과의 거리를 저울질하며 다시 앞을 향하는 나, 때마다 다정함의 비율을 조절하여 걸어가는 너.


그 길을 걷고 있는 당신을 힘껏 응원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UaicHjD3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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