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채도

by 김윤슬

문득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알던 나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목소리를 내는 나. 우리는 이것을 ‘페르소나’ 혹은 ‘가면’이라 부른다. 사회라는 무대에서 여러 타인과 접촉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페르소나는 어쩌면 생존을 위한 필수품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도 가족, 친구, 지인, 직장동료 등 다양한 접점 속 무지개처럼 여러 채도의 페르소나를 쓴 자아들이 살아가고 있다.


먼저 가족과 친구 앞에서 내 자아의 채도는 눈이 부시게 선명하고 밝은 노란색이다. K-장녀로서 책임감이란 무거운 왕관을 쓰고 있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님 앞에선 여린 속살을 감춘다. 뭐든 ‘괜찮아’라고 이야기하며 세상에서 제일 강한 척을 하고, 친구들 앞에선 늘 가벼운 장난과 함께 웃음소리 하나로 에너지를 주는 채도 높은 에너지의 소유자다.


하지만 차가운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나의 자아는 채도 낮은 붉은빛으로 변한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에 온갖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입사했던 항공사에서 발견한 낯선 나의 자아. 직업 특성상 늘 시간적인 제한이 있었기에, 함께 일하는 선배들은 항상 신경이 곤두서서 신입인 나를 느리다는 이유로 몰아세웠다. 그때마다 '나는 절대 저런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수십 번 다짐했었는데, 몇 년 뒤 시간에 쫓겨 후배에게 날 선 말을 뱉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미워하고 원망했던 선배의 얼굴이 내 안에서 불쑥 튀어나올 때마다, 나는 나의 붉은 페르소나를 한참 자책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6년밖에 근속하질 못했던 걸까?)


그리고 요즘 내 눈에 띄게 가장 아픈 채도인 푸른빛 혹은 보랏빛을 띠는 어둠의 자아. 우울증이란 친구는 나의 활동 반경을 침대라는 네모난 감옥으로 자주 좁혀놓곤 한다. 이 친구를 만나기 전 나는 그 감옥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단 하루도 현관문을 열고 나가지 않고는 견디질 못했으니까. 그랬던 내가 그 친구를 만나 온몸이 젖은 듯 무거워 네모난 감옥에 갇혔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스마트폰 속 타인의 인생 하이라이트를 훔쳐보는 것뿐이다. 감옥에서 보는 그 하이라이트는 비교와 함께 끝내 나를 깜깜하고 거대한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결국 나의 채도 낮은 어두운 자아는 그 날카로운 자극들이 싫다고 소리치며 눈물을 흘린다.


얼마 전 우울증의 절친인 불면이 나의 체력을 떨구어 나를 또 네모난 감옥에 가둬두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날카로운 타인의 인생 하이라이트가 내 마음속에 꽂혔고, 거대한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간 나는 결국 남편에게 눈물을 흘리며 한계치에 다다른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괜찮아. 예민해서 생각이 많은 너도 너고 우울해서 잠시 멈춘 너도 너니까. 그것도 네가 가진 매력이야."


내가 스스로를 가장 미워할 때, 그 불완전하고 그늘진 조각마저 ‘매력’이라고 이야기해 주던 위로. 가장 가까운 타인이 건네준 무조건적인 수용 덕분에 내 속에 존재하는 모든 자아를 나 또한 수용하고 사랑해 보자고 생각했다.


무지개는 일곱 가지 색이 모여야 비로소 무지개라 불린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채도가 밝고 예쁜 색만 골라 ‘진짜 나’로 인정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이제 채도가 완벽한 나만 골라내 사랑하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쓰는 지금, 채도가 밝고 높은 나에게만 심장이 뛰지만, 적어도 모든 색을 사랑하기로 결정한 이 순간부턴 채도가 낮은 나도 조금은 덜 미워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내일 또다시 우울증이란 친구가 나를 네모난 감옥에 가둔다면 어떨지 확신하진 못하겠다. 그래도 조금은 덜 미워하려는 노력은 하고 있는 내가 있겠지.



「주피의 음악편지」

'정밀아 - 언니'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사람의 마음은 참 다양한 색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여러 감정을 느끼며 또한 다른 감정을 생산해 내기도 합니다. 우리는 감정이란 걸 느끼기도 하지만 느낀 감정이 어떤 마음의 색깔에 닿는지에 따라 감정의 진폭이나 형질이 변하기도 하죠.


각기 슬퍼하는 게 다르고 무서워하는 게 다르고 또한 계속 변화하죠. 마음속 색깔의 조합에 따라 우리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 사회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의 조합은 큰 역할을 합니다. 여러 가지 마음의 색을 조합하여 가면을 만들어 쓰고 있죠. 사회생활용 가면은 결국 사회생활용 마음의 표상인 거고요. 그렇게 우리는 여러 가면, 여러 마음을 바꿔가며 살아갑니다.


결국 자아의 채도는 정말 스펙터클 할 거 같습니다. 그중에 진짜 나는 무엇일까요? 그라데이션 속에 한 지점을 나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뇨, 없을 것입니다. 스펙터클한 채도 전부가 결국 나겠죠.


그래서 채도의 변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채도를 갖고 있는 '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나.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나. 나도 모르게 쌓아온 정체불명의 색깔의 나. 그런 가지가지 나를 믿고 보듬어야 하는 것도 나.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를 안아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채색인 내 일부 지점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 이 길이 어른이 되는 과정 중 하나 아닐까요. 그 길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언니, 형, 오빠, 친구, 연인, 선배 등이 있겠죠.


오늘 선곡한 정밀아님의 노래에서처럼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맛있는 거같이 먹고 햇볕에 마음을 좀 말려보아요. 아니면 이 노래에 의지해 가봐도 좋고요.


https://www.youtube.com/watch?v=91p50rUxW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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