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17.35MHz

열일곱의 내가 서른다섯의 나에게

by 김윤슬

“10대 때를 한번 돌이켜보세요. 진짜 내 취향은 이미 그때 다 결정되었을 겁니다.”


얼마 전 한 철학 수업에서 들은 이 한마디는 서른다섯의 나를 열일곱의 나에게로 보내주었다. 서른다섯의 내가 잊고 지냈던, 하지만 열일곱의 내가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던 주파수. 나의 ‘진짜 취향’이 시작된 지점.


한국에서의 열일곱의 삶이란 윤기 없이 그저 수능과 대학을 위해서만 인생이 흐른다. 그렇기에 그때 만나는시, 소설, 수필 등 모든 문학은 아름답지 않다. 그저 모의고사를, 그리고 수능 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서 문장에 밑줄을 쳐가며 함축된 의미를 머릿속에 주구장창 외우는 법만 가르쳐주기 때문이다.(어쩌면 이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독서와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닐까?)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국어 시간. 그저 좋은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문장의 함축적 의미나 시구를 달달 외우게 하던 다른 수업들과는 달리, 그는 나에게 ‘문장의온도’를 가르쳐주었다. 작품의 작가가 글을 썼을 때 처한 상황과 마음이 어땠을지 세세하게 하나하나. 또 수업이 끝나기 전 그가 매번 들려주었던 노래들의 가사는 사랑과 이별의 무게를 알 리 없던 열일곱 사춘기 고등학생의 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그 중 한 곡은 그 날의 교실의 분위기와 선생님의 말투, 곡의 온도까지 선명하게 기억한다. 바로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 그 곡은 듣는 이가 슬픔의 질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구슬픈 음색과 함께 곡의 제목 그대로의 가사를담고있었다. 그래서 곡에 내포된 온도들이 내 마음에 아주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열일곱살이 뭘 안다고. 아

무튼 그날 이후 그 노래는 당시 내가 가장 아끼던 빨간색 전자사전 기능이 있는 MP3플레이어에 담겼고 몇번을 듣고 또 들었는지 셀 수 없을 만큼 들었다. (참고로 20년이 지나 사랑과 이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 곡을 더더욱 사랑한다!)


그렇게 1년을 문학과 음악을 통해 문장의 온도를 알려준 감성적인 국어 선생님이었던 그 덕분에 나에게도 소박한 꿈이 생겼다. 누군가의 가슴을 치는 섬세한 문장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그런 나를 작가의 꿈과 더더욱사랑에 빠지게 해준 매체. 야간자율학습시간의 유일한 탈출구. mp3플레이어의 라디오 주파수였다. 특히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 사이의 감성적인 밤의 전파는 그 당시 나의 우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방송중인 ‘볼륨을 높여요’, ‘키스 더 라디오’, 이제는 추억이 된 심야 라디오 ‘기쁜 우리 젊은 날’ 등.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조용한 밤의 부엉이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어주는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그 뒤를 받쳐주는 작가의문장들을 소리로 들으며 나의 꿈은 작가에서 라디오 작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어른이었던 우리 엄마 아빠에게 국문과는 곧 ‘굶는 과’였고 작가는 곧 ‘굶는 일’이었다. (물론 국문과를 안가더라도 라디오 작가가 될 순 있었겠지만, 그 당시 나는 꼭 국문과를 졸업한 라디오 작가가 되고싶었다.) 그 경고는 열일곱살의 나의 꿈을 일시 정지시켰고, 결국 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살려 10년이라는 우회로를 돌아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었다. 그런데 몇년 뒤 우회로를 돌아 결국 도착한 최종목적지는 열일곱살의 나였다. 우울증으로 선택한 갭이어로 모든 생산성을 내려놓고 ‘내가 온전히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았을때, 내 손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결국 펜이었기 때문이다.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일, 우울 불안과 함께여도 충분히 감당할만한 삶의 무게를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일. 결국 철학 수업에서 들었던 취향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맞는 말이었다. 돌고 돌아 10대 때 발견한 나의 취향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돌고 돌아 이렇게 될 걸 왜 말렸나 몰라. 타고나길 예민하고 섬세한 너에겐 이 길이 가장 잘 어울리는데...”


과거 국문과 진학을 반대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나의 취향을 인정해 준다. 이렇게 쓰면 무언가 철학적 사고가 아닌 근거 없는 미신의 하나같지만 사람은 어떻게든 결국 돌고 돌아 10대때 결정된 고유한 나만의 취향에 닿게 되는 것 같다. 열일곱의 내가 보낸 나의 취향 주파수가 18년을 돌고 돌아 서른 다섯의 나에게 도착했듯.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나보단 조금 더 빨리 취향의 주파수가 시차를 뚫고 가서 닿기를. 본인의 취향의 길을 걷는 것만큼 빛나는 일은 없으니까.



「주피의 음악편지」

'전진희 - 취했네 (feat. 곽진언)'

에세이의 여운과 함께 들어보세요

(TBS 주용진 라디오PD와 매주 함께 연재중)


라디오란 매체를 사랑하는 저로서는 윤슬님이 라디오와 친구였단 사실이 참 반갑습니다. 저 또한 라디오를 들으며 라디오 PD를 꿈꿨고 우여곡절 끝에, 늦은 나이로 꿈을 이루었습니다.


꿈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직장인이란 현실에 부딪혀 퇴사를 고민하기도 했는데요.


"나는 왜 라디오PD를 꿈꾸었을까?, "나는 라디오를 좋아하나?"라는 질문은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에는 직장인으로 사는 삶이 숨을 턱 막히게 대신했습니다.


결국 내 몸을 부숴가며 일을 했고 현재 수년째 불안,우울 장애로 불면을 겪고 있습니다. 또한 다른 질병도 겪으면서 결국 몸의 말을 듣기 위해 잠시 회사를 휴직했는데요. 그때는 좋아한다는 음악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들여 몸을 챙기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돌이키고 감각을 예민하게 하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나라는 질문에 다가갔습니다.


내 취향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참고 살았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전 라디오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소개하는 걸 좋아한다고

글을 좋아하고 글을 나누는 걸 좋아한다고

영화, 드라마를 다시 보기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고,

빵을 좋아하고

멍때리기를 좋아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기타 치기보다는 기타 자세로, 기타를 품고 있는 걸 좋아하고

....


이렇듯 취향은 발견하기도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취향이 꼭 직업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취향이 직업이 됐다가, 꿈이 직업이 됐다가 몸이 망가지게 된 저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취향이 직업이냐, 아니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나의 취향을 얼마나 뾰족하게 알고 있느냐, 그리고 계속 이를 날카롭게 유지하느냐가 본질이라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는 취향 덕에 삶의 여러 문제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윤슬님, 취향의 재발견을 축하합니다. 앞으로는 소중히, 옆에 잘 챙기며 걸어가시면 좋겠습니다.


선곡한 노래는 전진희 1집에서 골랐습니다. 취한 상태에서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지 독백하는 내용입니다. 전진희님은 밴드 하비누아주 리더로 오래 활동하다가 첫 솔로로 발매한 앨범에 이 자작곡을 수록했습니다. 아티스트도 긴 밴드 활동 속에서, 음악 활동 속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만난 '첫 음악'을 , 자신의 '진짜 취향'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하림 읇조림에 마음을 뺏긴 윤슬님에게 곽진언의 목소리가 다가가기를 희망합니다. 다시 꿈꾸시기를, 꿈을 이어가시기를, 그리고 취향을 잃지 말기를 바랍니다.


https://youtu.be/bhaK9JQsn-o?si=-4PK7V-vvCEutN_H


작가의 이전글자아의 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