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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Feb 14. 2019

빛의 화가들이 사랑한 빛나는 노르망디 풍경

29-30일(2):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에트르타, 옹플뢰르

인상파라고 불리는 유럽 미술가들 작품은 세계 어디서나 사랑을 받는다. '빛'을 그린 화가들로 불린다. 빛에 따라 변하는 형상이나 색깔을 보고 느끼는 대로 그렸다는 사람들이다. 미술 시간에 배운 이름 중 기억에 남는 세잔, 마네, 모네, 드가, 고갱, 고흐 등등 많은 사람이 여기 속한다. 유럽에서 만나는 미술관마다 한두 개라도 그들의 작품을 가지고 있으면 그게 제일 인기 있는 작품이다. 파리를 중심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기에 프랑스로서는 대단한 문화적 자산이다. 보고 느끼는 대로 그린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그림이어서 다들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비교적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 이후에 형체를 해체하거나 추상적으로 흘러간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시로서는 이전의 정형화된 틀을 깨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용감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인생 역정도 미술가마다 제각각 다르다. 그게 또 인기의 한 요인이다.


이 사람들이 즐겨 그린 풍경이 노르망디 곳곳에 있다. 많이 그린 장소는 인기 관광지가 되었다. 풍경이 멋져서 그렸겠지만, 그림이 유명해진 덕분에 풍경도 더 유명해졌다. 우리 가족의 이번 여행에서는 세 곳을 들렀다. 대성당으로 유명한 루앙, 기암절벽이 주인공인 에트르타, 동화 속 항구 같은 옹플뢰르다. 이미 현지 여행사들의 투어 상품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다. 단체든 개인이든 한국 사람이 많은 곳들이다. 루앙은 대도시지만 에트르타나 옹플뢰르는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녹록지 않다. 자동차 덕분에 편하게 다녔다. 풍경화 감상을 위해서는 그 풍경을 직접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알았다. 직접 본 풍경이면 '이 풍경을 이렇게 그릴 수도 있구나'라며 그림이 더 흥미롭게 보인다. 직접 본 적 없는 풍경을 그린 풍경화는 그저 '이런 풍경도 있나 보지, 멋지네'라며 넘어가게 된다.  

루앙의 대성당과 내부, 대성당 뒤의 예쁜 성 마클루 성당
루앙 대성당을 마주 보고 있는 2층의 모네 작업실 자리

루앙은 이번 노르망디 여행의 거점이었다. 노르망디 주의 주도다. 파리에서 놀고, 루앙에서 살라는 말이 있다. 중세 유럽의 가장 번영했던 도시 중 하나로 지금도 자부심이 대단하다. 최고 명물은 대성당이다. 오래된 성당이고 여러 유명 인사가 드나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대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공로자는 인상파 화가 모네다. 인상파 리더 격이었던 모네는 루앙 대성당 정면을 연작으로 그렸다. 시간과 날씨에 따라, 빛이 변하는 각도에 따라 다른 색깔과 질감으로 그린 그 시리즈가 이 성당을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두어 점씩 세계 곳곳 유명 미술관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똑같은 장소를 30점 넘게 다른 색감과 질감으로 그렸으니 대단한 집념이다. 장식이 많고 복잡한 피사체인데 특성을 일일이 살려 그렸다. 대성당 맞은편 건물 2층, 성당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곳에 모네의 작업실이 있었다. 그 콘셉트를 살려 여름 내내 밤마다 색색의 조명을 비추며 '빛의 쇼(Light Show)'를 한다. 쇼 시간이 너무 늦어서 우리는 하얗게 빛나는 대낮의 대성당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대성당은 로마 때부터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서있다. 고딕 양식으로는 12세기부터 건축을 시작해 화재와 벼락을 맞아가며 수백 년간 확장되었다. 16세기 종교전쟁 때 곳곳이 파괴되었고, 18세기 말 프랑스혁명 때는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이것저것 뜯어 팔거나 녹여서 무기를 만들었다는 설명도 있었다. 물론 2차 대전 때의 폭격이 가장 심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일을 포함해 연합군 폭격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재건하면서 청소를 잘해서 마치 방금 3D 프린터로 출력한 것처럼 새하얗다. 외부의 성상 장식이 자꾸 삭는 문제 때문에 모조품으로 바꾸고 진품은 성당 안에 보관하고 있다. 모네가 그린 성당은 1800년대 말 모습이니 지금보다 낡은 빛깔이었을 거다. 대성당 뒤편으로 가면 규모는 작지만 모양이 왕관같이 예쁜 성 마클루(St. Maclou) 성당이 있다. 2차 대전 때 폭격을 덜 맞아 주요 부분이 남았다는 성당이다. 출입문 부분 옛 조각들에 오래된 빛깔이 조금 남아있다.

루앙 대성당 내 잔다르크 채플

루앙은 모네보다 앞서 15세기 잔다르크 이야기가 얽힌 곳이다. 1431년에 화형을 당해 죽은 곳이다. 17세에 오를레앙의 성녀로 떠올랐다가 불과 19세 때 화형 당했다. 처녀 군사 영웅이라는 매력 만점 잔다르크는 프랑스 국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세계적인 캐릭터다. 루앙 대성당 안에도 잔다르크 상과 채플이 있다. 거리에도 잔다르크 관련 장소나 상품이 많다. 재판을 받았다는 주교관은 아예 잔다르크 박물관이 되었다.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입구부터 최첨단 멀티미디어로 꾸려놓았다. 이단으로 몰아 사형 언도를 한 곳이 그녀의 박물관이 되었다. 25년 후 그 재판을 무효화시킨 결정도 거기서 내려졌다. 20세기에 성녀로 추앙되어 지금은 프랑스의 수호성인이니, 거리마다 그녀를 소재로 관심을 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잔다르크가 화형을 당했던 마켓 광장에는 광장을 절반쯤 덮을 만큼 큰 잔다르크 교회가 있다. 디자인과 재질이 매우 모던한 이 교회는 1979년에 완공했다. 교회 옆 작은 공원에 화형 당한 자리를 작은 푯말로 표시해놓았다. 교회는 문이 닫혀있어 들어갈 수 없었지만 특이한 디자인이 많은 것을 시사했다. 큰 파도나 돛처럼 보이는데 화형 때의 불길을 상징한다고도 하고, 뒤집힌 배 모양이라고도 한다. 옛 광장 돌바닥과 건물이 있던 자리를 노출시켜 놓았다. 광장 전체가 여러 층의 완만한 계단식으로 이어져 잔잔한 파도 같다. 광장 한쪽의 오래되어 보이는 레스토랑을 골라 저녁을 먹으며 천천히 구경했다. 처형은 큰 구경거리고 전시 효과를 위해 장터에서 한다. 그때도 구경하면서, 또는 구경 후에 여기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잠시 궁금해졌다.

루앙의 잔다르크 교회는 그녀가 화형당한 시장 광장에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에트르타로 향했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에트르타는 과연 추천할 만한 절경이었다. 양쪽으로 하얀 절벽 언덕이 있고 그 사이 자갈 해변에 마을이 자리 잡았다. 남서쪽은 절벽 끝에서 한쪽 다리를 내민 듯한 바위 아치(Porte d’Aval)와 뾰족 기둥이 있다. 북동쪽에는 더 높은 벼랑 아래로 조그만 굴이 뚫린 층층 바위 벽(Porte d'Amont)이 바다를 향한 작은 날개처럼 펼쳐 있다. 푸른 바다, 하얀 절벽과 자갈 해변, 절벽 위 초록색 초원이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이다. 마을은 정말 작고 관광으로 먹고사는 동네인데 그 덕분에 세트장처럼 보존도 잘 되었다. 여기서 모네가 한 철 머물며 20개가 넘는 그림으로 주로 절벽을 그렸다. 쿠르베, 마티스 같은 화가도 그렸지만 모네의 그림들이 유명세를 확정 지었다. 대부분 남서쪽 바위 아치 절벽을 햇빛과 날씨에 따라 다채롭게 그려냈다.


도착하자마자 가파른 도로를 과감히 올라가 바위 아치와 뾰족 기둥을 멀리 내다보는 북동쪽 절벽 위에 차를 댔다. 이쪽이 자동차 접근도 되고 경치도 좋다는 정보를 검색한 덕분이다. 과연 멋진 절벽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평선은 뿌옇게 번졌지만 푸른 바다와 절벽 바위가 선명한 맑은 날씨였다. 그런데 불과 사진 몇 장 찍는 사이에 바다에서 운무가 뻗어왔다. 순식간에 짙은 안개가 절벽을 기어올라 하늘까지 가렸다. 구름에 갇혀 절벽은커녕 조금 떨어진 부모님도 안보였다. 노르망디 해안의 변덕쟁이 날씨는 워낙 유명해서 놀랍지는 않았다. 빨리 걷히길 희망하며 기다렸지만 좀체 운무가 옅어지지 않았다. 차를 돌려 마을에 세우고 아치와 뾰족 바위가 있는 서쪽 절벽을 완만하게 걸어 올라갔다. 정상에서 바다와 마을을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자니 서서히 운무가 걷히고 조금씩 해안이 드러났다. 바닥에 2차 대전 때 독일군이 구축한 대서양 방벽 일부와 옛 굴 양식장 흔적이 유적처럼 남아 묘한 대비를 이룬다. 운무가 옅어지면서 순간순간 색깔과 농도가 달라지는 절벽 때문에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화가들도 이렇게 변화무쌍한 빛깔 때문에 같은 절벽에서 그토록 다양한 소재를 찾은 모양이다.

처음 절벽 위에 주차하자마자 감탄하며 찍은 에트르타 양쪽의 해안 절벽. 조금만 늦었으면 못볼 뻔했다.
에트르타 절경은 운무로 순식간에 하얀색이 되었다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시시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이 되었다.

에트르타에서 30분 남짓 걸리는 옹플뢰르는 센 강 하구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다. 노르망디의 대표적 항구도시인 르아브르와 마주 보고 있다. 18세기까지 주요 무역항으로 번영을 누렸으나 지금은 요트만 가득 정박해 있는 관광지다. 모네는 여기에도 한동안 머물면서 곳곳의 경치를 그렸다. 모네 외에도 옹플뢰르를 그리러 왔던 화가는 정말 많다. 여기가 고향이라는 보댕이 모네를 데려왔다고 한다. 직사각형의 항구를 둘러싸고 촘촘히 서 있는 색색의 좁은 건물들은 사진도 그림처럼 보이게 한다. 건물이 물에 비치고 정박된 보트들이 어울려서 예쁜 풍경을 만들었다. 화가들이 그린 옹플뢰르 그림을 검색하면 도시 안쪽이나 외곽의 한적한 풍경이 많이 나온다. 관광객의 한정된 시간에 마을 안쪽과 외곽까지 살펴볼 여유는 갖지 못했다. 대신 부두 한가운데 레스토랑 야외 자리를 차지하고 예쁜 항구를 실컷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경치 값으로 비싸고 맛없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음식도 생각보다 저렴하고 맛있어서 기분 좋은 식사가 되었다.


어디다 대고 사진을 찍어도 예쁘고 지금도 많은 예술가들이 그림을 그린다. '꽃의 항구'라는 이름에 걸맞게 꽃 장식이 많아서 색감을 더한다. 19세기 말 인상파 화가들이 본 옹플뢰르는 이미 한참 쇠락한 작은 항구였다. 그래서인지 차분하고 흐릿한 색깔이다. 지금 그렸다면 훨씬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그림이었을 듯하다. 과거에는 부둣가 건물 대부분이 선술집이나 소박한 숙소였을 거다. 부두 근처 골목 안쪽에 있는 교회는 프랑스에 남은 흔치 않은 목조 교회 중 제일 크다고 한다. 크지만 어쨌든 목조 특성상 소박하고 장식성이 적다. 크고 여유로운 집들은 항구에 면하기보다는 좀 떨어진 조용한 구역에 있었다. 여기 출신인 작곡가 에릭 사티의 기념 박물관이나 화가 보댕 박물관도 항구에서 떨어져 조금 나가야 한다. 이제 옹플뢰르는 항구 주변이 가장 비싸고 복작복작한 관광지다. 화랑과 갤러리가 골목마다 줄지어 있다. 뒷골목의 조그만 가게도 전부 고급 부띠끄나 명품숍, 비싼 기념품 가게다. 항구 기능을 잃고 쇠락했다가 화가들 덕분에 관광지로 거듭나 활기를 띠게 되었으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화가들의 그림에 있던 모습을 찾기에는 너무 화려해진 느낌이었다. 분명 그 시절의 건물 외양과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드나드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달라지면 빛깔도 달라지는 모양이다.  

꽃의 항구라는 옹플뢰르는 그림 같은 경관을 그대로 살리는 게 사명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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