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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21. 2018

리투아니아의 작은 한국 사회

2017년 11월 11일

세계 어디를 가도 있다는 한인교회가 리투아니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발트 3국 전체에 하나도 없는데, 한국인 사회가 그만큼 작기 때문이다. 발트에서 리투아니아가 한국 교민이 많은 편이라지만 전국에 20명이 될까 말까 하다. 최근에 학생들이 많이 늘어서, 학기마다 바뀌는 교환학생과 몇몇 유학생을 합치면 100명 정도 될 거라고 예상한다. 학생을 제외한 거주 교민은 극소수이고, 일부러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 한 거의 마주칠 기회가 없다. 한국인이 없으니 다사다난한 한국에서 멀어진 게 확연히 느껴진다. 처음에는 궁극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한국인, 한국말, 한국음식 등이 고파졌다. 음식도 안 가리는 편이고 영어로 수다 떠는 것도 곧잘 한다고 생각해 왔지만, 한국이 너무 없는 환경에 한참 있으니 결핍이 느껴졌다. 심지어 평평한 경치만 오래 봤더니, 등산을 즐긴 적도 없건만 높은 산이 있는 풍경이 그리웠다.

카우나스에서 유일하게 영어 동시통역을 제공하는 개신교회 예배 모습

한인교회는 고사하고 영어가 가능한 개신교회 자체가 희귀하다. 카우나스에는 영어로 간단하게라도 통역을 제공하는 개신교회가 딱 한 곳 있었다. 가톨릭 교인이었다 하더라도 영어로 미사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으니 마찬가지였을 듯하다. 결국 가능한 대로 주일에 기차나 버스로 빌뉴스를 방문하게 되었다. 빌뉴스의 한국인 선교사님 댁에서 모이는 작은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카우나스와 빌뉴스의 거리감이 서울-대전 정도로 멀게 느껴져서 잘 오가지 않았다. 그 거리는 여전했지만, 자주 다니다 보니 익숙해져서 읍내 나가듯 다니게 되었다.

강 선교사님 댁에 처음 가던 날 눈이 쌓였던 골목

첫 학기가 끝날 때쯤 처음 만난 강 스데반 선교사님 부부는 1990년대 초,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후 초창기 체제 전환이 한창일 때부터 25년이 넘게 빌뉴스 거주한 최장수 한국 가정이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이주했고, 이제 리투아니아 국민이다. 장성한 두 아들과 함께 리투아니아의 조그만 한국 교민 사회의 핵심이다. 한국과 관련된 모든 행사와 주 폴란드 한국대사관과의 관계도 대부분 강 선교사님을 통한다. 주일 예배는 작은 모임이지만 한국말도 하고 한식으로 점심식사까지 하면서 두세 시간 정도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기차나 버스로 한 시간 반이 걸리고 시내 교통까지 치면 2시간 반 정도, 왕복 5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정이다. 날씨가 무난하면 간 김에 빌뉴스 산책을 하거나 박물관 구경, 카페 투어도 한두 시간 더 하고 오는 게 습관이 되었다.

예배 전후로 기차 시간이 애매하면 읍내 나간 기분으로 빌뉴스를 구경 다닌다.

처음 강 선교사님을 만났을 때 이주 경험담과 리투아니아의 발전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91년에 이주했을 때는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폐허가 된 소련 공장 건물들, 민영화 과정에서 빚어진 폭력사태와 마피아의 세력다툼, 잔류한 러시아 주민들과의 갈등, 그런 혼란에 비하면 지금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소회다. 카우나스는 인구 대부분이 리투아니아 사람이고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반면, 빌뉴스는 러시아 주민도 많고 다국적이라는 차이도 설명해 주셨다. 지금도 변화가 빠르다는 것은 불과 몇 년 체류하는 유학생들도 느끼는 점이었다. 3~4년 전만 해도 카우나스 거리에서 영어는 통하지 않았고 낯선 동양인에 대한 경계심을 대놓고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어로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거의 없다. 반면 한국 기업 진출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체제 전환 직후 진출했던 대우전자도 몇 년 전에 철수했다. 한국인 관광객은 부쩍 늘어나고 있어서, 강 선교사님 부부는 최근에 이곳 공인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해 한국인들의 관광 가이드로 소일거리를 하신다.

주택 3층의 교회는 작지만 다국적, 다문화의 국경없는 예배를 본다.

강 선교사님 교회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투아니아 교회다. 그렇지만 한국 교환학생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학생이 더 많을 때가 자주 생겼다. 한국 교환학생들이 미국인이나 중국인 친구들을 데려올 때도 많다. 매주 회중 구성에 따라 리투아니아어, 영어, 한국어를 바꾸어 사용하는, 작지만 대단히 국제적인 교회였다. 예배 후에 한식으로 준비해 주시는 점심을 함께 먹는 시간은 나 같은 체류자나 한국 교환학생들에게 상당히 위로가 된다.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아침부터 일어나 기차나 버스로 빌뉴스 외곽까지 가는 길에는 예배보다도 어쩌면 먹거리가 더 직접적인 동력이 되었다.

빌뉴스 시청사 광장에 있는 '맛'은 리투아니아 유일의 한식당이다.

리투아니아의 한국 교민은 선교사님 가정 외에는 대부분 사업을 하는 분들이다. 빌뉴스에 있는 전국 유일의 한국 음식점 '맛(Taste)' 사장님도 그렇고, 회사에 다니는 젊은 부부도 있는데 한국인 남편, 리투아니아인 아내다. 가족 구성원 전부가 종족적으로 한국 사람인 경우는 선교사님 가정뿐인 듯하다. 각자 생업으로 바빠서 소수의 한국인 교민 분들도 평소에 자주 만날 일이 없다. 그래도 서로 소식을 공유하며 존재만으로도 의지하게 되는 유대감이 있다. 리투아니아는 민족의식이 강하고 아직 다문화 성향이 별로 없어서 한국처럼 단일민족국가 느낌이 있다. 동화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교민 사회에서 서로 격려하고 협력하는 관계가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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