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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Apr 23. 2018

리투아니아어 도전과 좌절

2018년 1월 30일

두 번째 학기가 시작할 때쯤, 리투아니아어를 배워야 할 일종의 의무감과 필요성을 동시에 느꼈다. 몇 년 거주할 예정인 장기 체류자인데, 거리의 간판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서 기초 수준의 일상적 소통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였다. 주위 사람들의 대화로부터 대략의 주제 파악이라도 해보고픈 마음도 있었다. 봄학기를 앞두고 1년 연장을 확정하면서 '손님'보다는 좀 더 '주민'처럼 되어 적극적으로 소속감을 가져 봐야 할 듯한 느낌도 들었다. 생활에 적응이 되고 여유가 생기면서 슬쩍 외국인을 위한 리투아니아어 강좌 수강을 알아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 학기 겨우 듣고 반년 만에 포기했다. 

새 학기가 되면서 카페 방문도 다시 잦아졌다. 일상적인 소비 생활에 리투아니아어는 사실 꼭 필요치는 않다.

단과대 사무실에 물어보니 교환학생들을 위한 일주일 짜리 생존 리투아니아어 수업이 있고, 한 학기 짜리 초급, 중급, 고급 수업이 체계적으로 개설 중이었다. 강사나 교수는 등록 절차만 거치면 수업료 없이 들을 수 있었다. 절차도 간단했고 처리해주는 모든 사람들이 반가운 표정으로, 지극히 친절하게 적극 격려해 주었다. 수강 문의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진심으로 환영이다, 여태 왜 안 배우고 있었냐, 아무 걱정 말고 즐겁게 듣길 바란다는 환대 일색이다. 리투아니아어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실질적인 리투아니아어 실력 향상과 관계없이, 외국인인 내가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걸 다들 좋아했다. 그런 노력만으로도 쉽게 마음이 열리고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하면서 일단 일주일 짜리 생존 리투아니아어부터 신청을 했다. 바로 이어서 한 학기 짜리 기초 첫 단계도 미리 신청을 했다. 

생존 리투아니아어 수업은 공식 개강보다 일주일 먼저 시작해서 매일 수업을 하고 한 주 만에 기말고사로 마무리하는 속성과정이다. 교환학생들이 인사말이라도 익혀보고자 수강했고 한국인 교환학생도 여럿 보였다. 정식 개강 일주일 전에 수강생으로서 일찍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학생이 되어 새 언어를 배우자니 흥미진진하기도 했다. '라바스(Labas)!'로 인사하며 시작한 수업에서 선생님은 한 학기 기초과정 신청을 했다면 내용이 겹치니 생존 수업은 안 들어도 된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냥 둘 다 듣기로 했다. 수십 년 된 내 두뇌는 이미 흡수하듯 빨아들이는 학생의 두뇌가 아닌지라, 오전에 배운 인사말이 오후에 생각이 안 나는 형편이었으므로 내용이 겹치는 건 오히려 감사한 일이었다.


리투아니아어는 어려운 언어로 유명하다. 비슷한 언어가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발트 3국이라 불리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각각 언어는 딴판이다.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에 더 가깝고,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가 그나마 비슷한 언어이나 다른 점이 많다. 독일이나 러시아 등 강대국의 영향이 많았던 역사와 달리 언어는 매우 독립적이었다. 심지어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역사상 한 나라였던 기간이 상당한데도 언어는 전혀 다르다. 리투아니아어는 고대 언어 연구자들의 연구대상이라고 하는데, 지정학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겹쳐서 그런지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흔적도 발견된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어 수업에서 짝꿍이 된 슬로바키아 교환학생 베로니카와 실습 겸 많은 이야기를 했다.

영어 알파벳을 차용해서 쓰기는 하지만 점이 찍히거나 고리가 달린 모음이 더 있다. 문장도 어순이 달라서 영 낯설다. 모든 단어에 남녀 성별이 있고, 한 가족의 성조차 남자와 여자일 경우 어미가 달라진다. 격, 시제, 성별에 따라 명사, 동사, 형용사 모든 단어의 어미가 달라진다. 그래서 어순은 별 의미가 없고 어미변화가 의사소통의 핵심이다. 어미변화 표가 있지만 외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표가 길고 수많은 불규칙이 있었다. 불규칙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오래된 언어임을 보여주는 거라며 자부심 섞인 설명을 하지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난감할 뿐이었다. 


선생님들은 대단히 친절했다. 리투아니아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가르치는 기법도 다양하게 시도했다. 생존 리투아니아어는 방문객이 길거리에서 맞닥뜨릴 만한 상황을 설정해서 재미있게 가르친다. 하루는 '리투아니아어로 음식 주문해 보기'를 숙제로 냈다. 마침 그날 저녁에 들어간 피자가게에서 유창한 영어로 주문받으러 온 직원에게 잠깐만, 하고는 리투아니아어로 해보겠다고 했다. 메뉴판을 붙들고 모깃소리만 하게 얘기했는데 찰떡같이 알아듣고 한두 단어만으로 주문이 일사천리로 끝났다. 더 친절하게 빨리 갖다 주는 느낌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외국인이 자기 언어를 하는 상황이 거의 없어서 그만큼 신기해하고 기뻐한다. 단어 하나만 얘기하면 자기가 문장으로 완성을 해주고는 평소 보기 힘든 활짝 웃는 얼굴로 적극 도와주었다. 생각해보면 외국인이 한국말로 음식을 주문해도 직원이 훨씬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 같다.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수줍은 척 리투아니아어 한두 마디로 주문을 해보면 친절도가 급상승한다.

생존 리투아니아어는 시간 대비 효과가 상당히 컸다. 단 5일 코스였고 마지막 기말고사도 오픈북으로 복습하듯 써내는 간단한 과정이었다. 학점이 필요 없는 열외 학생이었기에 시험에 의미가 없었지만 경험 삼아 응시했다. 오픈북이고 문제도 쉬워서 너무 봐주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써서 제출하려는데, 내가 첫 번째 제출이고 진짜 학생들은 열심히 고민하고 있었다. 학점이 상관없다 보니 입장이 달라서 맘이 편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나도 선생이다 보니 가르치는 입장에 공감해서 진짜 집중해서 들었던가 보다. 

2월 초의 카우나스 거리는 아직 얼음 광고도 가능하다.

두 번째로 제출하고 나온 슬로바키아 교환학생 베로니카가 말을 걸어와서 함께 산책을 했다. 이 학생도 정규학기까지 신청을 해놓아서 한 학기 내내 나의 리투아니아어 동지가 되었다. 스무 살 어린 여학생이었지만 영어로 소통하는 관계에 존칭 따위 없으니 편하게 지냈다. 수업 시간에 늦으면 서로 자리도 맡아놓고 짝꿍이 되어서 오래간만에 여고생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슬로바키아도 낯선 나라라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다. 가까운 동유럽 국가지만 사진 속 슬로바키아는 미국 요세미티 같은 산 경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직 그럴듯한 국제공항도 마땅히 없다며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거쳐 라트비아 리가에서 갈아타고 먼 길을 왔다고 한다. 이 학생에게 한국이나 동아시아는 완전 다른 세상 같을 것이다. 리투아니아어를 인연으로 슬로바키아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정규학기가 시작한 이후 아쉽게도 내 수업 일부와 리투아니아 수업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가능한 대로 따라가려고 노력을 했지만 퀴즈도 몇 번 빼먹고 숙제를 건너뛰기도 했다. 수업 짝꿍이 되어 격려해준 베로니카의 응원 덕분에 그래도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기말고사 일정도 다른 일과 겹쳐 미리 치러야 했는데, 우연찮게 베로니카도 일찍 귀국하게 되어 함께 치렀다. 선생님과 일대일로 말하기 시험까지 치르는 종합적인 평가였다. 리투아니아어 보급을 위한 연구를 한다며 시험지와 말하기 시험 녹음을 자료로 쓰게 해 달라는 부탁에 흔쾌히 서명도 했다. 모범생 짝꿍을 만난 덕분에 초급 리투아니아어는 좋은 성적을 받고 상당한 자신감을 얻으며 잘 마무리했다. 

그런데 그다음 학기 초에 시작한 초급 2 단계에서 바로 좌절하고 말았다. 내 수업과 또 상당 부분 겹치는 일정 때문에 걱정을 하며 들어간 첫 수업에서 선생님이 곧바로 리투아니아어로만 수업을 했다. 학생 상당수가 이미 초급이라고 하기 어려운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갑작스럽게 수준이 높아졌다. 다양한 학생들과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기회는 즐거운 것이었지만, 결국 두 번째 단계에서 좌절하고 수강은 취소하고 말았다. 수업을 주기적으로 빠지면서까지 따라갈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위축되었다. 곧 굳이 배워야 하는 언어도 아닌데 이렇게 고생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영어로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리투아니아어는 간판과 메뉴판을 읽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하고 안주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어 강사 카야코도, 루마니아 출신 중국학 강사 알렉스도 초급 첫 단계 이후로 포기했다고 한다. 살짝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니 정착해서 평생 살 작정이 아닌 한 그 정도 수준에서 그만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싶다. 언어에 큰 욕심이 있었다면 계속했겠지만 스트레스에 비해 활용도나 보람은 없었을 터이다. 이후로 그저 발랄하게 'Laba diena(좋은 날입니다)'로 인사하고 말끝에 'Aciu(감사해요)'를 달고 다녔다. 이 정도로 리투아니아어 활용은 충분한 셈 치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꽃을 자주 사들고 다닌다. 나도 좀 지친 날이면 스스로에게 꽃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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