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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y 02. 2018

VMU 아시아 주간, 한국의 부상

2018년 3월 9일

2018년에도 3월 첫 주 5일간 VMU 아시아 주간(Asian Week) 행사가 열렸다. 4년째를 맞은 아시아 주간은 동아시아 학부 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문화 행사다. 학교와 교수진이 적극 협력해서 연중 카우나스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관련 행사 중 제일 큰 행사가 되었다. '동아시아'라지만 VMU에 전공과목과 학생 클럽이 존재하는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문화 행사이다. 2017년에 처음 아시아 주간 준비 과정을 보면서 학생들만의 축제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세부적인 준비를 학생들이 담당하고 있었지만, 행사 계획이나 규모를 늘린 데는 다른 손길들이 많이 있었다. 리투아니아에 대사관이 있는 일본과 중국 대사관에서 적극 지원했다. 중국은 빌뉴스의 공자학원에서도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서 존재감을 늘렸다. 아시아센터의 교수진과 교직원들이 학교본부와 각국 대사관, 문화원 등 다양한 기관을 최대한 연결해서 다채로운 동아시아 문화행사가 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었다. 

VMU 아시아 주간 개회식에서는 학생들이 짝을 지어 인삿말을 한다. 리투아니아 학생은 동아시아 언어로, 동아시아 교환학생은 리투아니아어로.

한국은 주 리투아니아 대사관이 없고 주 폴란드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첫 두 해 동안은 대사관 지원이 전혀 없었다. 겸임국의 지방도시 한 대학의 행사가 관심을 끌기는 어려웠다. 대사관 지원을 받는 중국과 일본에 비해 한류클럽 학생들만 애를 쓴 한국 행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시아 주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진행된다. 첫날 개회식과 언어 경시대회에 이어 음식의 날, 스포츠의 날, 문화체험의 날로 행사가 있고 마지막에 퀴즈대회와 마무리 파티를 한다. 한국은 대사관이나 문화원의 지원이 없어서 개회식에 중국과 일본 대사만 와서 축사를 했었다. 음식의 날에도 일본이나 중국은 대사관 셰프나 전문 요리사가 워크숍을 진행했지만 한국은 학생들이 알아서 했다고 한다. 스포츠의 날도 일본의 검도나 중국의 쿵후 시범이 있을 뿐이었다. 문화체험의 날이 가장 대규모 공개 행사인데, 부스를 차려놓고 옷을 입어보거나 붓글씨를 써보는 등의 행사에 한국은 한류클럽의 K-pop 소품 판매만 있었다고 한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객원교수라고 부임해서 와 있는데도 그렇게만 계속되었더라면 정말 속상했을 듯하다. 

올해도 개회식에서 축사해주신 대사님과 함께  /  한중일 대사와 교수진, 학생들 함께 단체

2017년 1월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마침 새로 부임한 주 폴란드 대사님을 만났고, 옆에서 거들면서 생각보다 수월하게 주 폴란드 한국대사관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공공외교에 관심이 많은 신임대사 부임이 기회가 되었고 한국인 객원교수라며 대사관과의 소통을 돕게 되어 한국의 존재감이 갑자기 커졌다. 대사님이 관심을 보이니 바르샤바의 문화원도 적극 지원을 해 주었다. 작년에 처음 개회식에 한국 대사의 축사도 있었고, 한국 대사의 첫 카우나스 방문 기념 특강도 매우 성황이었다. 다행히 처음 방문한 대사님도 학생들의 환영과 적극적인 태도가 인상적이었는지 계속 지원을 약속해 주었다. 문화원에서도 미니버스에 각종 체험행사 용품을 싣고 와서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더 큰 한국 문화체험 부스를 열어주었다. 준비해 온 사진이나 홍보 용품을 다 펼치기에 공간이 협소할 정도였다. 문화체험에는 카우나스 외곽 지역의 중고등학생들까지 단체로 구경하러 오는데, 한국의 탈 그리기나 한글 체험, 한복 체험이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한국어 경연대회 참가 학생들과 한 컷 / 상품으로 대사관에서 준비해준 동계올림픽 기념품들

한 번 해보고 나니 2018년에는 좀 더 세심하게 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다. 대사관의 리투아니아 담당 서기관과도 소통하면서 여러 가지 준비가 매끄럽게 이어졌다. 개회식에 대사님이 참석해서 축사를 한 것은 물론, 올해는 한국어 경연대회도 참석해서 시상식까지 해주었다.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로 품절되었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 각종 기념품이 상품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몇몇 한국 교환학생들이 더 부러워했다. 한국 교환학생들은 학기마다 15~20명 정도 되고 다양한 대학에서 온다. 리투아니아까지 교환학생을 신청해서 오는 학생들의 의지와 정보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런 문화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돕고 경험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서 또한 놀랍다. 작년에도 많은 교환학생들이 개회식부터 음식 행사, 문화체험 행사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올해도 몇몇 학생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언급을 했더니 학생들끼리 알아서 역할 배분을 하고 활약을 했다. 

작년과 올해 아시아 주간 행사를 도와준 한국 교환학생들. 리투아니아까지 오는 것도 신기한데 매사 적극적이라 더 기특하다.

올해는 음식의 날에도 더 신경을 썼다. 지난해 음식의 날 한국 세션에서는 한류클럽 학생들이 교환학생들 도움을 받아 김치찌개를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셰프들이 준비한 초밥 만들기나 샤부샤부 요리에는 맛이나 운영 면에서 너무 비교가 되었다. 심지어 준비한 가스버너가 불량이어서 불이 가스통에 옮겨 붙어 큰 사고가 날 뻔했던 아찔한 일도 있었다. 한식당도 없고 대사관 요리사가 직접 올 수도 없었으므로 빌뉴스의 강 선교사님 부부에게 대사관에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사모님이 다양한 음식행사 경험을 살려 김치전과 잡채를 준비해 오셨고, 기본인 밥과 김치까지 설명과 함께 푸짐하게 차려주셨다. 대사관에서 추가로 보내준 한과까지 곁들여서 한식 세션이 대단히 풍성해졌다. 한식 특성상 양이 너무 많아져서 본의 아니게 남는 음식을 싸주는 미덕까지 보여주었다. 한류클럽과 한국 교환학생들도 관객으로 워크숍을 신청해서 한식을 즐겼다. 작년에 김치찌개 하느라 고생하던 모습이 기억나서 우습기도 하고, 여전히 전문 요리사가 코스로 준비하는 일본과 중국 음식 세션보다는 미비한 점이 많아서 과제로 남았다.

아시아 주간 음식의 날에 수고해주신 강 선교사님과 사모님, 카우나스의 한국인 유학생 부부도 와서 애를 써 주었다.

가장 인상적인 행사는 역시 문화체험의 날이었다. 신임 바르샤바 문화원장님은 부임한 지 두 주도 안된 상황에서 미니버스 원정을 오셨다. 2017년의 경험상 체험행사 부스만으로도 인기 만점이었다. 이번에는 그에 더해서 전통 가야금 연주자와 무용가를 베를린에서부터 섭외해서 전통공연도 보여주었다. 한복이나 한글 체험, 탈 그리기, 부채 그리기도 더 잘 진행되었고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상대적으로 일본과 중국 부스가 매우 한산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따로 차린 한류클럽의 K-pop 부스도 덩달아 힘을 받아 학생들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카우나스까지는 아무리 운전을 빨리 해도 7시간 가까이 걸린다. 문화체험 용품을 가득 싣고 와야 하는 문화원 일행은 비행기로 대체할 수도 없으니 대단한 고생이다. 베를린에서 오는 공연자들을 픽업하러 빌뉴스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오는 데만 10시간 넘게 걸린 여정이었다. 겸임국이니 도움받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막상 일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고맙고 미안한 일이 아니다. 학생들과 지역사회의 반응이 워낙 좋고 덕분에 한국학도 적잖이 도움을 받는지라, 놓칠 수는 없고 계속 고맙다며 또 와달라고 부탁할 따름이다. 

아시아 주간의 핵심 행사인 문화체험의 날에 바르샤바 한국문화원에서 마련해준 전통공연과 각종 체험 부스

우연인지 필연인지 객원교수로 부임한 이후부터 대사관과 문화원의 지원을 얻게 되면서 눈에 잘 보이는 행사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크게 부각되었다. 덕분에 한국학의 입지도 같이 강화되어서 감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원래 K-pop을 중심으로 하는 한류가 강력하기는 했지만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신경 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대단한 상승효과가 있다. 전통공연이나 문화체험이 자칫 우리에게는 진부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K-pop 이외의 한국에 대해 막연한 이미지만 있고 구체적인 경험이 없는 학생들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행사다. 한국 역사나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늘어서 한국을 더 공부해 보겠다는 학생도 늘어나는 게 보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국에서는 대통령 탄핵선고와 정권 교체가 있었고,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급변하는 등 흥미로운 소식들이 끊이지 않아서 학생들의 관심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여전히 일본이나 중국보다 규모나 짜임새 면에서 힘이 달린다. 그래도 흥미진진한 한류 대중문화와 그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한국의 정치 사회 뉴스가 기반이 되어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큰 효과가 난다. 

폐회식은 퀴즈대회 후에 감사장 전달과 피자파티로 이어진다.

마지막 날 퀴즈대회는 동아시아 각국의 이모저모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팀별로 맞추고 우승팀을 가리는 형식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런 'brain battle' 형식의 퀴즈대회를 정말 좋아한다. 카페나 바에서도 스크린에 질문을 띄워놓고 팀 별로 앉아서 머리를 모아 답을 고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긴 강은?"이라는 상식 퀴즈에서 '한강'이라고 했다가 보기 좋게 틀린 적이 있다. (답은 낙동강이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묻는 질문까지 나왔다. 퀴즈대회가 끝나면 폐회식을 겸한 파티에서 수고한 사람들, 도움 준 사람과 기관에게 일일이 감사장을 전달한다. 각국 대사관과 문화원, 교수진, 학생들까지 백 명이 넘는데 그 자리에 없어도 이름을 부르고 박수를 친다. 한국대사관을 비롯해 교환학생들까지 한국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 명단이 길어져서 내심 뿌듯했다. 물론 일본과 중국도 길었지만, 대사관도 없는 한국이 리투아니아의 지방도시 카우나스의 대학에서 지경을 넓혀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았다. 큰 힘은 없지만 잠시 체류하는 객원교수 입장에서 가능하나마 한국과 유대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을 더 궁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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