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3일
리투아니아는 한여름에도 25도를 넘는 날이 드물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길어야 두 주 정도 25도를 넘나드는 수준이다. 가정집에서는 에어컨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2018년에는 5월 초순 내내 낮 기온이 25도를 넘나들었다. 급기야 최고기온이 28도에 달했다. 아무리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5월에 28도는 놀라운 기온이다. 갑자기 얇은 옷을 입으려니 어색해서 길고 두꺼운 옷들을 계속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옷장을 뒤집어 여름옷을 끌어올렸다.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하고, 어쩌면 5월보다 추운 6월이 찾아올지 몰라서 봄가을 옷들을 함께 두었다. 날씨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닌 듯 거리에는 패딩 점퍼부터 핫팬츠까지 공존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금세 적응했는지 민소매와 반바지가 확 늘어나 지중해 연안 이탈리아나 스페인 거리를 방불하게 했다. 검색해보니 중남부 유럽보다 발트 지역이 더 여름 날씨였다. 이럴 땐 이상기후도 감사하다.
린넨 상품점 '코지 홈(Cozy Home)'의 사장님이자 VMU 아시아연구소의 후원자이기도 한 아스타(Asta)가 가족 봄나들이에 초대해 주었다. 드라이브를 가고 싶어도 자가용이 없고, 있더라도 어딜 가야 할지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현지인 친구의 나들이 초대는 고마운 일이다. 아스타는 가족회사인 린넨 브랜드 이름을 '기모노(Kimono)'라고 붙일 정도로 일본 문화를 좋아한다. 2차 대전 시기 나치로부터 유대인들을 구해낸 스기하라 일본 영사 기념사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유대인 사회와 이스라엘에도 친구를 늘려 가는, 매사에 적극적인 사업가다. 이번 나들이는 일본 교환학생들을 몇 명 초청하여 리투아니아 구경을 시켜주면서 나도 초대한 거였다. 일본을 좋아하는 데에 비해 한국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지만, '같은 동아시아'에서 온 손님이라 그런지 자주 챙겨준다. 리투아니아를 더 알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파티도 열고 행사도 초대한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그런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외국 유명 인사들을 데리고 다니며 한국 곳곳을 구경시켜 주곤 했다던데, 패션업계 사람들의 특징인지 궁금해진다.
아스타의 가족이 날 좋은 5월마다 간다는 이 드라이브의 목적지는 수발키 지역(Suvalkija)이었다. 리투아니아의 거의 가운데 위치한 카우나스에서 남서쪽으로 펼쳐진 지역이다. 종족적, 문화적으로 나뉘는 다섯 지역 중 하나다. 서쪽으로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를 접하고 남쪽으로 폴란드를 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옛 프로이센과 폴란드에 가까웠기에 특유의 문화적, 정치적 경험을 한 지역이다. 사실 폴란드 국경을 넘으면 곧 수발키(Suwałki)라는 도시가 나오고 그 주변도 수발키 지역이라 부른다. 같은 종족 문화적 지역이 1차 대전 이후에 나뉜 것이다. 18세기 말 열강의 영토 분할로 러시아 지배를 받게 된 리투아니아에서 이 지역은 프로이센 영역으로 분리되었다가, 나폴레옹이 점령했다가, 뒤늦게 러시아 영향권에 드는 등 부침이 심했다. 때문에 서유럽의 사회문화적 영향이 크고 러시아의 억압적 통치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농노제가 제일 먼저 폐지되고 문화적으로 자유롭고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이 되었다. 덕분에 리투아니아어 사용과 출판이 지속되었고 민족교육도 살아남아 19세기 반 러시아 독립운동과 리투아니아 부흥운동의 핵심 지역이 되었다고 한다.
역사적인 기억을 간직한 장소도 있겠지만, 이 날의 나들이는 5월의 여름 날씨를 만끽하는 야외의 명소들을 향했다. 수발키 지역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네무나스 강을 따라 강변의 숲과 밭들을 지나서, 아스타의 가족이 좋아하는 옛 저택 공원과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카우나스 시가지를 벗어나자마자 연두색과 초록색으로 빛나는 숲과 평원이 펼쳐졌다. 제철을 맞은 유채꽃이 만발한 밭을 지날 때면 햇빛이 그대로 땅에 내려앉은 듯 눈이 부셨다. 소와 말이 한가롭게 쉬고 있는 맑은 5월의 주말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정치 사회 구조는 전혀 달라졌지만 아마 풍경 자체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평평하고 강과 호수가 많은 리투아니아는 당연히 농업이 발달했다. 중세를 지나 19세기 초까지 장원과 농노제가 남아 있던 귀족 중심 사회였다. 넓은 부지에 본채와 별채 여럿을 갖추고 정원을 꾸민 장원 영주의 저택(manor)들이 곳곳에 있었다. 세계대전과 소련 치하에서 모두 사라졌지만, 주인이 바뀌고 용도 변경을 거쳐 몇몇 저택이 살아남았다. 유적처럼 재건해서 공원과 박물관, 레스토랑으로 꾸며 일반에 공개하는데, 카우나스 근교에도 몇 군데 있다. 그중 지플레이 저택(Zypliai Manor) 공원과 식당을 들렀다. 영주 저택들은 대부분 장원 중앙의 단층집으로 시작해서 증축을 거듭한다. 세력이 클수록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서 화려함을 더해 간다. 이 Zypliai Manor는 비교적 최근인 19세기 중반에 자리를 잡고 20세기 초에 증축한 경우였다. 소련 치하에서는 병원, 협동농장 등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본채와 몇몇 별채를 재건하고 전시장과 문화행사장으로 쓰는 것 같았다. 건물보다도 자연적으로 둘러싼 숲과 호수에 적절히 인공을 가미한 넓은 후원이 정말 아름다웠다.
주말이면 예약을 해야 제때 먹을 수 있다는 레스토랑도 기대 이상이었다. 'Kuchmistrai'라는 이름의 레스토랑은 본채 바로 옆 별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영주의 저택에서 개발했던 요리법을 사용한다는 소개가 있었다. 영주의 저택 요리법이든 아니든 이 지역 고기와 생선, 채소 등 현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리투아니아 전통 요리가 대체로 감자 일색에 짠맛이 강인데, 감자 비중이 미미하고 맛도 담백해서 놀라웠다. 일반 전통음식점에서 파는 톡 쏘는 냄새가 강한 전통 발효음료 크바스(Kvass)조차 여기서는 주스에 가까운 부드러운 맛이었다. 아스타의 추천에 따라 생선요리를 주문했는데 리투아니아에 와서 2년 동안 먹어본 생선요리 중 가장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어느새 주차된 차가 부쩍 늘어나 있었다. 도심에서 꽤 멀고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데 어떻게들 알고 오는지 신기했다. 외국인들이 검색해서 오기는 거의 불가능한 숨은 명소다. 몇 번 와 본 아스타 가족들조차 진입로를 헷갈릴 정도였다. 이제 알았으니 홍보 좀 해달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별로 기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도 관광객에게 권하기에는 자신 없다. 시골 마을 사이에 숨은 보석 같은 장소였다. 물론 날씨가 매우 중요한 곳이다.
식사 후 주변 시골 마을을 둘러보고 네무나스 강변 국립공원(Panemunių regioninis parkas)을 따라 조성된 작은 마을을 몇 군데 들렀다. 아스타의 아버지 고향이기도 하다는 이 지역은 강변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마을이 자리 잡았고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보존 중이었다. 조그만 지류를 따라 전통 가옥과 마당을 보존(또는 재연)한 'Vaiguvos upė-gatvė'같은 샛길 산책로는 매우 짧았지만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발견 못하고 지나갈 위치였다. 보존 지역이어서 그런지 강을 건너는 다리도 거의 없어서 남쪽 기슭을 따라 카우나스로 향했다. 도중에 늑대(vilkas)를 의미하는 Vilkija라는 마을 앞에서 난데없이 카페리 선착장을 만나 강을 건넜다. 딱 네 대 정도 들어갈 듯한 작은 카페리는 유치원 때 남이섬 드나드는 배에서 봤던 듯한, 줄로 양쪽을 연결해서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지금은 건너편 마을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늑대는 안 나온다. 깊은 숲 속에는 아직 있다고도 한다.
여행 책자에 간혹 '현지인들이 선호하는 곳',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천편일률적인 관광지를 벗어나 그 지역의 일상적인 특색이 살아있는 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한 정보다. 하지만 여행책자에 나올 정도면 이미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많게 마련이다. 현지인 친구가 아니면 존재조차 몰랐을 수발키 지역 나들이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현지인들의 핫플레이스 탐색이었다. Zypliai Manor는 영주 저택 중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고 큰 공원을 끼고 있는 게 특색이라고 한다. 좀 더 큰 규모의 다른 manor들도 카우나스 근처에 더 있다고 하는데 가볼 기회는 닿지 않았다. 단기 체류하는 관광객들이 가는 곳들은 웬만큼 섭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숨어있는 곳들이 있다니 놀라웠다. 리투아니아 동료들과 친구들이 추천하는 곳들을 조금씩 메모해 놓았지만, 대중교통으로는 어려운 곳들이 대부분이다. 리투아니아를 떠나기 전까지 렌터카를 빌려서라도 눈도장 발도장을 찍어보고 싶었지만, 과욕이었는지 달성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