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29일
항상 빌뉴스는 카우나스보다 2도 정도 기온이 낮다. 그만큼 겨울도 빨리 온다. 길고 우중충한 겨울을 앞둔 시점에서는 1도 차이도 느낌이 다르다. 10월 마지막 주일을 기해서 서머타임이 해제되었다. 겨울 동안은 한국과 7시간 차이가 난다. 서머타임 해제가 함께 본격적인 겨울 시작의 표시로 다가온다. 서머타임을 해제하면서 일시적으로 아침이 느려져 오전이 밝아지지만, 해가 급속도로 짧아지니 잠시 뿐이다. 오히려 일몰이 확 당겨져서 오후 4시가 넘으면 어둑해진다. 12월 말의 동지 무렵이면 오후 3시경에 일몰이다. 2016년에는 10월부터 이미 눈이 왔었는데 2017년에는 비 오는 초겨울이 오래가고 있었다.
2017년은 독일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이 발생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개신교회가 많은 한국에서는 기념사업도 많고 기념 예배, 행사도 많았다. 90퍼센트에 가까운 인구가 가톨릭교도인 리투아니아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은 거의 흔적이 없다. 종교개혁 기념일이 10월 31일이고 그 직전 주일인 29일이 기념 주일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10월 31일의 핼러윈보다도 더 흔적 없다. 핼러윈도 그저 미국 문화일 뿐이어서 어린이 매장이나 카페에 호박과 거미줄 장식이 간간이 보이는 정도다.
헌데 빌뉴스 구시가 시청사 광장 옆 거리에서 우연찮게 루터교 교회 간판을 발견했다. 담벼락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있어서, 간판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야 십자가와 입구가 보이는 작은 교회였다. 우연찮게 종교개혁 기념주일에 발견했으니 딱 맞아떨어졌다 싶어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영어 예배가 시작할 참이었다. 알고 보니 리투아니아 루터교 교회 건물이고, 내가 도착한 시간의 영어 예배는 장소만 빌려서 외국인을 위한 영어예배를 보는 국제교회로 교파와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개신교식 예배였고 종교개혁 기념예배였다. 리투아니아에도 개신교회가 소수 존재한다. 최근 미국 개신교회들처럼 찬양집회를 겸하는 자유로운 예배형식으로 장소를 빌려 모이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 성당처럼 전용 건물을 가진 경우는 별로 없다.
개신교회 중 건물을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한 경우가 바로 루터교회다. 리투아니아에서 루터교는 세계대전 이전, 16세기부터 소수지만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정치경제적으로 독일의 영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차르의 통치를 받은 18세기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독일의 후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빌뉴스의 이 루터교 교회도 1550년대부터 있었다는 안내를 붙여놓고 있었다. 화재로 전소되어 개축한 적은 있었지만 러시아 차르 통치 시기까지는 없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완전히 쫓겨나 교회가 사라진 시절이 있었으니, 당연히 소련 치하다. 독일과의 연관성 때문에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독일과 소련 사이에서 무사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잠시였지만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 점령군과 리투아니아 사람들 사이에서 애매했을 위상도 짐작해볼 수 있다.
소련의 학살 현장 중 하나인 빌뉴스의 KGB 박물관에 갔을 때 종교지도자나 성직자들이 수감되고 죽어간 이야기도 있었다. 유대인이나 다른 저항세력을 돕다가 잡힌 사례가 많았는데, 루터교 성직자 이야기도 있다. 나치 치하에서는 가톨릭이나 러시아 정교회보다 안전한 위치였다. 그때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돕느냐 나치에 협조하느냐의 기로에 섰던 고민이 있었다. 짧았던 나치 천하가 끝나고 소련에 편입된 후, 루터교회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 교회도 농구장이나 창고로 바뀌었다. 소련이 무너져 가던 1980년대 말에 부지를 돌려받아 재건을 시작해서, 지금도 온전한 외관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내부와 종탑 정도는 제 모습을 갖추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콘서트를 한다는 광고, 교회 앞에 선언문을 들고 다른 팔을 쳐들고 있는 루터의 동상 등이 새삼스러웠다. 절대다수가 가톨릭인 리투아니아에서, 정치적인 암흑기에 완전히 사라졌다가도 기어이 재건해서 모이고 있는 리투아니아 루터교인들이 대단하고 신기하다. 내가 참석한 예배는 외국인용이라 리투아니아인은 없었다. 11시부터 원래의 리투아니아 루터교회 예배가 있어서 그전에 비워준다고 한다. 나오는 길에 마주 들어오는 리투아니아 교인 몇 명과 스쳤다.
소련 치하가 50년에 가까웠고 그 전에도 전쟁과 러시아 지배로 맘 놓고 다닐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 공백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은 어떻게 신앙을 유지하고 재건과 운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물론 독일에서 살다가 온 경우도 있을 테고, 최근에 서유럽에 다녀온 경우도 있을 것이다. 독일의 루터교단이 전폭 지원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대단한 일이다. 북한에 있었던 교회들도 언젠가 재건과 자체 운영이라는 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얼마만큼의 세월까지 건너뛰고도 회복이 가능한 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