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리 May 06. 2018

카우나스에는 동물원도 있어요

2018년 3월 24일

인구 20만의 작은 도시 카우나스가 '있을 건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 것 중 하나가 동물원의 존재다. 미루고 미루다 날씨가 화창하게 갠 봄날을 기념할 겸 드디어 작정하고 버스를 탔다. 고작 서너 정거장이고 도심에서 걸어도 30분이면 닿는 공원 건너편에 동물원이 있다. 이름이 '카우나스 동물원'이 아니고 '리투아니아 동물원(Lietuvos zoologijos sodas)'이다. 검색해보니 빌뉴스에는 이런 동물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국내 유일의 동물원이 카우나스에 있는 셈이다.

카우나스의 '리투아니아 동물원' 간략 지도

국내 유일 최대 동물원이라지만 서울대공원이나 에버랜드에 익숙해 있는 한국 사람에게는 근세 유럽이나 개화기 배경 영화에 나옴직한 동네 동물원 느낌이다. 어린이대공원의 동물 구역보다도 규모는 훨씬 작고 동물 우리도 훨씬 아담하다. 창경궁이 창경원일 때 호랑이나 사자 우리가 오밀조밀하게 갖추어져 있었다던데 왠지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입장료를 낼 때만 해도 대체 이 정도 부지에 동물원을 제대로 갖출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성수기는 아니지만 화창한 토요일인데 관람객도 드문드문했다. 항상 붐벼서 사람들 틈을 헤집어야 했던 어린 시절 동물원의 기억에 비하면 나만을 위해 모두가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관객이 귀찮은 코요테와 혼자 외로운 호랑이

입장권과 함께 받은 조그만 안내문에 간략한 지도와 동물들이 표시되어 있는데, 웬걸 호랑이와 사자, 기린, 수족관까지 있는 상당히 체계적인 동물원이었다. 안타깝게도 최근에 사망한 코끼리와 곰은 지워져 있었다. 물론 부지가 작은 만큼 각 동물 우리는 정말 아담하기 그지없었다. 서울대공원은 우리가 크고 종류별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동물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린이대공원도 내 기억에는 적어도 맹수인 사자, 호랑이, 덩치 큰 기린 등은 관객과 멀리 떨어져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한 큰 우리에 있었다. 여기는 그렇지가 않아서, 내 평생 그렇게 가까이서 사자와 기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맹수 우리나 다람쥐 우리나 비슷한 철창이라 사자, 호랑이, 표범, 늑대까지 다리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기린은 덩치가 크다 보니 언덕을 한참 내려간 별도 우리에 있었는데 추워서 실내에 들어가 있었다. 그 실내 공간 창문으로 관객이 들여다볼 수 있는데, 좁은 공간에 어찌나 가까운지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이마를 마주 댄 듯했다.

원숭이나 사슴처럼 맹수가 아닌 동물들은 철창이나 담장 사이로 사람들이 손을 넣어도 별 제지가 없다. 그만큼 동물 우리도 작고 가까이 가서 볼 수 있다. 동물 우리들이 오손도손 모여 있어 동물들도 서로 친해질 것 같다. 수족관과 조류 전시관은 각각 집 한 채에 작은 물고기와 새들을 칸칸이 꾸며놓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바다사자도 있고 얼룩말이나 낙타, 들소 등 초식동물은 꽤 많았다. 한데 딱 한 마리만 있는 동물들이 많다. 호랑이도 한 마리, 바다사자도 한 마리였는데, 짝꿍이 먼저 죽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린도 엄마와 아이만 있는 듯했다. 사자도 잘 보니 두 마리 모두 수놈이었는데 우는 소리가 왠지 처량했다. 사자 울음소리를 그렇게 가까이 듣는 게 처음이어서 신기했지만 사납거나 장중하다기보다는 지루함에 지친 짜증 같았다.

작지만 잘 꾸며놓은 수족관, 새 전시관, 그리고 홀로 외로웠던 바다사자

나오다 보니 동물원 소개글이 눈에 들어왔다. 리투아니아의 저명한 동물학 박사가 자연보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멸종 위기종을 보호할 목적으로 1938년에 설립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멸종 위기종과 희귀 동물을 보존하는 취지에서 시작해 유라시아 전역의 동물을 아우르는 동물원으로 발전했다는 설명이었다. 다른 동물원이나 기관과 협력해서 교환, 임대하기도 하고 서로 보완하면서 유지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아담한 동물원이 발전하기 어려울 듯했다. 최근 EU 차원에서 타당성 조사와 부지 설계를 다시 했다는 내용과 함께 곧 대대적인 리모델링 계획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다 보는 데 1시간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은 동물원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짜임새도 있고 정성껏 유지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공간이었다.

작은 공간 때문에 동물원에 항상 따라붙는 동물 학대 논의가 더 와 닿기도 한다. 처연하게 밖을 보고 있는 작은 표범이 너무 자포자기 느낌이었고 사자도 호랑이도 답답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는 것이니 잘 관리하려는 노력이 보여서 다행이었지만, 작은 동물원이 갖는 한계는 생각을 해야 할 듯했다. 동물원은 큰 공원의 일부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훨씬 큰 동물원 밖의 공원은 거의 자연 상태의 숲을 그대로 두고 길을 내어 사람들이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카우나스 자유로 중간에 있는 동물 박물관

자유로 중간 즈음에는 동물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동물원에서 수명을 다한 동물들을 박제하여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박물관이 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구입하거나 기증받거나 교환하면서 소장품이 상당히 다양하고 많다. 동물원 시작이 1930년대였으니 사망한 동물도 꽤 많을 것이다. 3층짜리 박물관이 포유류, 조류, 물고기, 파충류, 곤충까지 각양각색의 박제로 꽉 차있었다. 엄청난 양의 나비와 조개껍질은 기증받은 게 아닐까 추측되었다. 포유류 박제 중에 간간이 날짜와 함께 '리투아니아 동물원에서 왔음'이라고 적힌 것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온 것들은 제대로 박제도 못 되고 가죽만 남은 경우도 있었다. 이곳 동물원에서 오래 봉사(?)하다 죽은 동물들은 잘 보이는 좋은 위치에 잘 배치되어 있다. 짝꿍을 남기고 먼저 죽은 기린 아빠와 바다사자, 이제 동물원 리스트에서 지워진 곰, 코끼리, 하마, 백곰도 여기에 박제되어 있었다.

동물 박물관에서 죽어서까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동물들

동물 박물관은 한 중학교와 마주 보고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휴일이라 가족 동반 방문객이 많았고, 아마 평소에도 학생들이 많이 찾을 것이다. 동물원에서 생을 마치고 박제가 되어 계속 구경거리와 교육 자료로 헌신하고 있는 동물들에게는 좀 미안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작은 나라, 작은 도시에서 그 많은 동물들을 살아서든 죽어서든 볼 기회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도 있고 각종 자료가 많은데 굳이 동물들을 학대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면 물론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래도 실제로 동물을 보고 느끼는 것과 화면 또는 지면으로만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게 자연보호와 동물 보호에 얼마나 긍정적인 교육 효과가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사람들만 가득한 사회에서 살다가 동물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분명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어쨌든, 카우나스에는 그런 동물원도 있고 무려 동물 박물관까지 있다.


이전 10화 발트 지역 렌터카 여행은 시기상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