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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14. 2018

가장 큰 야외박물관, 가장 큰 수도원

2017년 10월 6일

2017년 추석 연휴에는 사촌동생이 다녀갔다. 개천절-추석-한글날로 이어지는 황금연휴에 헬싱키를 거쳐 리투아니아까지 방문을 해주었다. 헬싱키에서 며칠 보내고 빌뉴스로 와서 카우나스에서 이틀 정도 지내고, 다시 빌뉴스를 거쳐 헬싱키로 돌아가는 여정이었다. 2016년 추석에 친동생이 왔을 때는 눈부신 인디언 서머를 맞은 화사한 리투아니아를 볼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촌동생이 방문한 2017년 추석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비가 계속 오는, 가끔 변덕스러운 햇살이 비치다가 곧 다시 비가 오는 리투아니아를 보고 갔다. 초겨울 복장을 했지만 사진마다 추운 표정이다. 얇은 카디건조차 더운 느낌이었던 한해 전의 추석과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다.

공항에서 렌트하고 바로 들른 트라카이. 날씨가 아쉬웠지만 흐린 물빛도 운치 있다. 

동생과 부모님의 방문 때 손님맞이 나들이에는 가격 대비로 렌터카를 빌리는 게 좋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었기에 빌뉴스 공항에서부터 렌터카를 몰았다. 비 오고 추운 날씨의 방해를 덜 받고 나름대로 즐기며 다닐 수는 있었다. 타지에서 외로운 사촌언니 준다고 커다란 트렁크에서 끝도 없이 라면, 반찬, 간식거리가 쏟아졌다. 먹거리 가져오느라 제일 큰 트렁크를 끌고 왔다니, 렌터카 예약해놓기 정말 잘했다. 미리 예약하고 잘 고르면, 새 차는 아니지만 중소업체에서 꽤나 저렴하게 렌트를 할 수 있다. 헤르츠(Hertz)나 식스트(Sixt) 같은 유명 렌터카 업체와 가격 차이가 커서 불안하기도 했으나 며칠 쓰는 근거리 여행에 큰 무리는 없다.

야외박물관은 카우나스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룸시스케스(Rumsiskes)에 있다.

추석 보름달은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지만, 추석과 무관한 리투아니아의 완벽한 평일 주중에 우리만 빗속에서 돌아다니며 추석을 즐겼다. 오래 사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동네에서 안 가본 곳이 많은 법이다. 장기체류자인 나도 카우나스에서 유명한 몇몇 장소들을 안 가고 미루고 있었다. 차도 빌린 김에 시 외곽에 있는 야외박물관을 가보기로 했다. 정식 명칭은 리투아니아 민속박물관(Lithuanian Folk Museum)이다. 교환학생들이 오면 학교에서 단체로 구경시켜주는 곳인데, 그만큼 개별적으로는 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전에 카우나스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으며 혹시 비가 좀 잦아들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발트에서, 어쩌면 유럽 전체에서 가장 넓은 야외박물관이라는 정보를 들었기에 가능하면 비가 안 올 때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짧기도 하고 비가 오는 것도 이곳의 특성이니 그대로 즐기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몇몇 가옥들은 들어가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야외' 박물관은 정말 야외였다. 야외 이곳저곳에 전통가옥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몇몇 집들은 실내를 개방해서 예전에 살던 모습을 구경시켜주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민속촌과 유사하다. 설령 맑았더라도 차 없이는 절대 구경할 수 없는 엄청난 넓이의 부지에 대단히 띄엄띄엄하게 마을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 우리 민속촌과 다른 점이다. 날씨 좋은 여름에는 아마도 소풍 삼아 차를 세워놓고 중간중간 피크닉도 하는 곳인 듯했다. 피크닉을 하더라도 먹을 건 전부 싸와야 할 테니 차는 여전히 필수다. 중앙에 옛 중세 지방 소도시의 광장을 재연하면서 몇몇 상점이 있긴 했지만 판매보다는 전시가 목적이다. 그나마 우리가 간 평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중앙에는 작은 도시의 광장을 재현해 놓았다. 가운데 귀여운 조형물은 소방관이다.

그 작은 중세도시 모형을 가운데 놓고 리투아니아 다섯 지역의 전통 가옥과 생활방식을 재연한 마을들이 사방으로 멀리 흩어져 있다. 간혹 비가 그쳐서 차에서 내려서 걸어 보기도 하고, 열려있는 집들에 들어가 아무 설명도 없는 전통가옥 실내를 보면서 우리끼리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는 식으로 자체 관광을 했다. 개방된 가옥들에는 안내원인 듯한 사람이 있었으나 영어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가 봐도 외국인인 우리에게 그들도 말을 걸지 않았고, 그저 이 빗속에 온 수고에 답하듯 웃어 주기는 하였다. 드넓은 야외박물관을 차로 이 길 저 길 맘대로 다니는 동안 다른 방문객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고, 길 중간에 유유히 거닐고 있는 양이나 염소가 반가웠다. 


인구 3백만에서 계속 줄어들어서 걱정인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도 지역별로 방언이 있고 민속문화가 다른 종족을 크게 다섯으로 나눈다고 한다. 넓은 부지에 원래부터 있었음직한 숲과 시내 사이로 그 다섯 종족의 전통마을들을 조성했다. 마을마다 비교적 부유했던 집, 가난한 서민의 집, 특색 있는 작업장이나 도구를 전시해놓았다. 발트해에 인접한 클라이페다 항구 주변 지역은 무역과 상업을 위해 진출한 독일의 영향이 매우 강해서 지금도 독일식 건물이나 흔적이 많다는 점, 남서쪽으로 폴란드에 인접한 지역은 폴란드계 인구와 문화가 섞여 있다는 점 정도가 내 지식이었다. 아마도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가까운 동쪽은 그쪽의 영향이 더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지형이 모두 비슷하게 평평한 대지에 숲이 많은 곳이라, 집 양식이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경사진 지붕은 풀이나 잔가지, 간혹 널판을 이었고, 추위 때문에 화덕을 중심으로 방을 배치하면서 조그만 창문에는 여닫이 덧창을 꼭 달아두었다. 긴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과 '눈이 더욱 많이 오는 지역'의 차이가 있는 정도다. 부잣집이라고 해 봐야 소박하고, 서민의 집은 오래 살면 과연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화덕과 헛간 포함 원룸에 가깝다. 대체로 가난한 삶이었기에 담장은 그저 구획 표시를 하고 짐승을 막는 의미였다. 풍차를 이용한 물레방앗간이 공통적으로 있다. 도시 중앙의 교회를 제외하면 모두 나무로 지은 건물들이었기에 화재 대비가 매우 중요했다는 점도 눈에 띄었다.

인적 드문 날 야외박물관 주인은 양과 염소인 듯.

매점이 없었다. 만약에 대비해 들고 간 초콜릿이 없었다면 허기질 뻔했다. 넓은 야외박물관을 차로 구석구석 돌아보고 나오니 그래도 두 시간 가까이 지났다. 성수기에는 가이드 투어를 하는 듯한데, 이렇게 여유롭게 와서 맘대로 이리저리 뻗은 비포장 도로를 돌아다니는 자가용 관람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카우나스로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 근처의 수도원에 들러서 호반 구경까지 하는 것으로 카우나스 자동차 관광은 보람차게 끝났다. 소련 시기에 댐을 건축하면서 커다란 저수지가 된 호수 주변은 지역 공원이다. 잠깐 나와준 햇살이 호수를 눈부시게 빛내 주어서 뜻하지 않게 멋진 늦은 오후 풍경을 감상하였다. 여름이면 호숫가 모래사장이 해변처럼 되어 일광욕을 즐기러 온다는 곳인데, 10월의 오후 나절은 조용하기만 했다. 

댐 건설로 큰 호수가 된 카우나스 호반 지역공원 (Kaunas Lagoon Regional Park)

호반은 수도원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화려하고 큰 바로크 스타일의 교회 건물 복원이 아직도 진행 중인데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라고 한다. 17세기에 가톨릭 수도원으로 건축한 이래 역사의 부침 속에서 군 병원, 러시아 정교회, 도서관, 정신병원, 전시장 등으로 수업이 용도변경을 당했다. 1990년대 리투아니아 독립 후에야 가톨릭 수녀들에게 반환되었다. 반환 후 꾸준히 수리를 해서 거의 복구가 된 단계다. 주변이 널찍하고 건물이 아름답다 보니 콘서트나 큰 행사도 종종 열린다. 교회당 주변 건물들은 이제 거의 박물관으로 쓰이지만, 교회 뒤쪽은 수도원 구역이라 일반에 개방되지 않는다. 그래도 영리 사업을 하고 있어서, 큰 교회 건물로 진입하는 입구를 위시한 앞쪽 건물은 호텔이 되어 있다. 

수도원과 성당 (Pazaislis Monastry and Church) 내부의 전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놓았다.

부모님과 들렀을 때는 박물관에 들어가서 수녀님들의 생활상이나 건물의 역사에 대한 전시를 구경했었다. 워낙 부침이 심했기에 오래된 물건이나 값진 물건은 남아있는 것이 없다. 내부는 아직도 공사 중인 성당과 지하 묘실까지 돌아볼 수 있었다. 전시에 공을 많이 들여놓긴 했지만, 방문의 보람은 내부보다는 바깥의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경관에 있다. 추석 연휴 오후에 가니 겨울 시즌에 더 짧아지는 내부 공개 시간은 이미 지났고, 마침 행사가 있는지 차려입은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어서 사촌동생 하고는 겉만 보고 돌아 나왔다. 사촌동생 덕분에 혼자서는 가볼 의지가 잘 안 생기는 시 외곽의 야외를 돌아보는 호사를 누렸다. 빌뉴스와 카우나스 안팎, 지방도시들까지 체류 이 년에 접어들도록 가보지 않은 곳곳의 볼거리가 꽤 많았다. 살고 있으면 계속 미루게 된다. 시간만 많으면 열심히 다닐 것 같았지만, 시간 외에도 구경에는 상당한 의지가 필요한 거였다.

수도원도 멋지지만 호수와 숲으로 둘러싸인 주변 경치가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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