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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Mar 15. 2018

발트 지역 렌터카 여행은 시기상조

2017년 10월 14일

리투아니아에서 고속도로라고 불릴 만한 장거리 도로는 하나다. 수도 빌뉴스에서 카우나스를 거쳐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유일한 항구도시인 발트해 연안의 클라이페다(Klaipeda)까지 뻗은 고속도로다. 혼자 다닐 때는 자동차 운전까지는 비용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가능하면 대중교통으로 다녔다. 그러다 첫 해 가을 부모님의 방문 때부터 짐이 많거나 자유로운 이동이 필요할 때 며칠씩 자동차를 렌트하기 시작했다.

발트해 연안 항구도시 클라이페다의 독일의 영향이 많이 남아있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만들어 왔고, 아니더라도 여기서 한국의 운전면허증과 교체발급이 가능하니 운전은 그냥 하면 된다. 숙소와 학교, 편의시설이 시내에 모여 있어서 평소에는 자동차가 필요 없었다. 처음 렌트했을 때는 낯선 도로에서 간만의 운전이라 긴장도 되었다. 유럽에서 운전은 처음이었는데, 도로가 단순하고 비교적 차가 적은 편이라 사실 긴장할 필요는 없었다. 가격경쟁이 심해진 탓도 있겠지만 중소업체들의 렌터카는 정말 저렴하고, 가격에 비하면 상태도 무난하다.

 

몇 번 중장거리 운전을 해본 결과, 리투아니아 포함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이르는 발트 지역, 폴란드 동북부까지는 아직은 렌터카로 자동차 여행을 즐기기는 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게 결론이다. 도로는 많이 정비되었고 확장과 보수도 계속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연합에서 건설을 지원한 고속도로는 포장 상태가 상당히 좋아서 독일에서 기술이전을 받은 게 아닐까 추측되었다. 제한속도 표시는 없는데, 보통 시속 110킬로이고 고속도로 대부분 구간은 시속 130킬로라고 한다. 전 국토가 평지이고 장애물도 적은 직진 도로여서 운전하기 쉽다. 그렇지만 쉬운 운전이 곧 즐거운 자동차 여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행이 목적이라면 차창 밖의 풍경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한적한 도로를 달릴 때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흐리고 트럭이 많을 때가 문제다.

경관이 너무나 단조로워 구경거리를 바라는 여행자는 금방 지루해진다. 맑은 날이라면 파란 하늘과 지평선 끝까지 간간이 겹쳐있는 구름, 푸른 초원, 연달아 나오는 호수와 숲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탄성이 나온다. 그런데 아름답지만 비슷한 풍경이 두세 시간씩 계속되면 탄성도 잦아들게 마련이다. 게다가 화창한 날씨보다는 흐릿하고 비가 뿌리는 날이 훨씬 많다. 탄성보다는 원래 이런 날씨이니 이해하자는 말을 더 반복하며 다녀야 한다.

2017년 4월 말 에스토니아 탈린을 향해 갈 때는 폭설을 만났다.

단조로운 경치는 위험물 없이 쭉 뻗은 직선의 고속도로를 더 지루하게 만든다. 지루하면 쉽게 피곤해지는데, 아직 휴게소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주유소에 딸린 매점과 화장실이 끝이다. 작은 나라이니 목적지까지 소요시간도 짧아서 휴게소 수요가 적기도 하다. 그래도 카우나스-클라이페다 간 고속도로는 2시간이 넘게 걸리고 국도로는 도시 간 이동에 3시간이 넘는 곳도 많다. 복합 문화공간에 가깝게 발전하고 있는 한국의 휴게소가 그리워진다.

자유롭게 세울 수 있는 것은 렌터카의 장점. 라트비아 유르말라 해안 어디 즈음.

여행이 빌뉴스-카우나스-클라이페다를 잇는 고속도로를 벗어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 고속도로만 왕복 4차선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왕복 2차선이기 때문이다. 왕복 4차선 도로는 운전하기 매우 수월하다. 바깥쪽은 주행 차선, 안쪽은 추월차선이라는 독일식 교통규칙은 여기서도 철저하다. 왕복 4차선이면 트럭과 버스들이 모두 바깥 차선으로만 달린다. 자가용들은 트럭이 많을 때는 1분에도 몇 번씩 안쪽 차선으로 추월을 하게 된다. 소련 붕괴 이후 철도망이 와해되면서 주요 유통체계가 모두 도로를 통한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들이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지방 국도 구석구석까지 밤낮없이 다닌다.

클라이페다는 사실상 유일한 무역항이다. 무수한 트럭이 밤낮으로 오간다.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이니 트럭들을 비교적 안전하게 추월할 수 있지만, 고속도로 외 모든 국도와 지방도로는 왕복 2차선, 즉 편도 한 차선이다. 추월할 때마다 중앙선을 넘어야 하는데, 문제는 트럭을 너무 자주 만난다는 것이다. 매번 추월하기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국도는 고속도로보다 좁고 숲 사이로 구불거리는 구간도 있어서 곡선 차로나 장애물이 시야가 가릴 때도 많다. 교통량이 적다 보니 신호등보다 로터리를 선호하는지라, 로터리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운전자는 그것도 성가시다.


십자가 언덕으로 유명한 샤울레이(Siauliai)를 거쳐 라트비아 리가, 그 위로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운전해서 왕복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 구간이 왕복 2차선이어서 트럭 추월을 위한 눈치싸움이 내내 계속되었다. 발트 3국을 종단한다는 여행의 의미가 있었지만, 단조로운 경치와 앞을 가로막은 트럭들의 행진으로 즐기기가 쉽지는 않았다. 비나 눈이 뿌리는 날씨까지 지속되면 운전자는 그야말로 피곤이 중첩된다.

차를 렌트하면 일부러라도 멀리있는 마트나 몰을 간다. 맥드라이브 매장도 굳이 가본다.

물론 렌터카의 장점은 있다. 짐을 맘대로 실을 수 있고 큰 쇼핑센터에서 잔뜩 장을 보아 돌아다닐 수 있다. 부모님을 마중하러 처음 렌트했을 때, 미리 차를 받아서 빌뉴스 공항 근처의 아시아 마트와 이케아(IKEA)를 모두 들렀다. 아시아 마트는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하게 한국음식 식재료를 파는 곳인데, 주중 오전만 영업하는 작은 곳이고 도매 위주로 해서 차 없이 방문하기는 불편하다. 차 빌린 김에 쌀도 한 봉지, 무게감 있는 소스류와 유자차까지 샀다. 이케아에서도 부피와 무게가 나가는 담요 등을 사면서 저렴한 렌터카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렌터카 덕분에 많이 걷지 않고 곧바로 방문한 한적한 트라카이

부모님을 태우자마자 빌뉴스 근교의 트라카이를 먼저 들렀었다. 사람 없는 주중이라 렌터카로 트라카이 성 진입로 코앞까지 바짝 들어갈 수 있었다. 대중교통으로 오면 버스터미널에서 2킬로 이상 걸어 들어와야 한다. 트라카이 주변 시골길도 운치가 있어서 자동차 여행이 아니면 불가능한 드라이브를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비나 눈이 왔으면 구불구불한 시골길이 좋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수월하게 짐도 옮기고 한 달치 쇼핑까지 완료한 알찬 렌트였다.

폴란드 바르샤바는 많이들 버스로 오간다. 7시간 버스여행은 차라리 야간 버스가 낫다.

흔히 영국이나 서유럽은 자동차 여행하기 좋다고 한다. 그건 짧은 거리마다 구경할 만한 도시나 마을이 이어지고 차선도 여유로운 도로이기 때문이다. 발트 지역은 그런 자동차 여행을 하기에는 아직 빈 공간이 너무 많고 도로가 좁다. 폴란드 동부도 비슷한데, 바르샤바에서 독일로 향하는 서쪽 방면을 먼저 개선하고 있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에서 바르샤바 가는 길은 줄곧 수많은 트럭이 함께 가는 편도 1차선이다. 버스로 7시간, 자가용으로 6시간이 걸린다.


리투아니아에서 렌트를 한다면 장거리 여행보다는 근교 여행 정도, 짐을 옮기거나 쇼핑을 하거나, 가까운 스폿 방문 또는 잠깐의 시골길 드라이브 정도가 좋다. 그렇게 한다면 날씨가 협조적일 경우 매우 쾌적한 렌터카 여행기가 나올 것이다. 도시 간, 국가 간 장거리 이동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버스로 자면서 가거나 아예 비행기를 타는 편이 낫다. 땅에 발을 붙이고 직접 육로 이동을 해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발트 지역 여행은 아직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좋겠다.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해변 휴양도시 팔란가는 석양이 유명하다. 차가 있으면 보다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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