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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06. 2018

랭스 성당, 낭시 광장 찍고 스트라스부르까지 속도전

2일: 프랑스 랭스, 낭시, 스트라스부르

자동차 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 '하루에 4시간 이상 운전은 피하자'는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지도를 펴놓고 이 도시에서 저 도시를 찍어 소요시간을 확인하면서 장거리 이동하는 날의 동선을 그려 갔다. 실전 경험 없이 책상에 앉아 시간을 계산해서 계획을 했던 것. 혼자 여행 다닐 때 구글맵으로 대중교통 소요시간을 검색하면 신기할 만큼 잘 들어맞았던 경험을 믿고, 구글 지도에 나오는 운전 소요시간을 그대로 믿었다. 지도상의 소요시간보다 더 걸리게 만드는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건 겪어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일단 한 번 긴 이동을 하면 가능한 한 이틀을 한 도시에 머물자는 나름의 원칙도 있었다. 그 이틀 사이에 쉴 수 있으니 가끔은 장거리 이동 때 5시간이 좀 넘어도 괜찮을 거라 여기며 계획표에 넣었다. 3일째, 샤토 티에리에서 스트라스부르까지 가겠다고 짜 놓은 둘째 날이 그 '괜찮을 거'라고 계산한 날 중 하나였다. 중간에 쉴 겸 랭스(Reims)와 낭시(Nancy)를 구경하고 가자는 야심 찬 계획까지 끼워 넣었다. 40대와 70대의 체력, 도시 진출입과 주차의 변수,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라도 한 잔 마시는데 걸릴 시간 등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날 차 속에서 이동한 시간만 7시간이 넘었다. 일단 샤토 티에리 중심가를 잠깐 들어갔다가 출발하는 것부터 이미 당초의 시간 계산보다 늦어졌다. 구글 지도에 나왔던 자동차 소요시간은 성수기의 낮시간대 기준이 아니었다. 다행히 유럽의 고속도로가 서울 근교처럼 엄청나게 막히지는 않았지만, 규모 있는 도시 근처나 관광지 부근은 몇 달 전 밤 시간에 계산한 것보다 오래 걸렸다. 사실 랭스와 낭시는 스트라스부르를 향해 가는 방향에 있다는 이유로 일정에 넣은 것이었다. 각각 유서 있는 도시인지라 구시가 진출입과 주차에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왕 들른 김에 좀 더 자세히 보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에 쫓기는 메뚜기처럼 가장 대표적인 장소 한 곳씩만 보고 나오기에도 급급하게 되어버렸다. 

랭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랭스의 명물은 대성당이었다. 노트르담이라는 성당 이름이 파리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눈으로 확인하였다. 랭스의 노트르담 성당(Cathédrale Notre-Dame de Reims)은 파리의 노트르담보다는 물론 작아 보였지만 '고딕 양식의 백미'라고 불린다고 한다. 수백 년간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이 치러졌다는 곳이고 잔다르크의 이름도 있었다. 복잡한 유럽 역사 속에서 번번이 전쟁터가 된 곳이니만큼 세계대전 때 많이도 무너졌던 모양이다. 그걸 완벽하게 복원했다는 것이 또 다른 자랑거리였다. 


유명한 성당이지만 건축학적 시각이 없는 관광객 입장에게는 또 하나의 큰 유럽 성당으로 보일 뿐이다. 그래도 모던한 도시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나 한낮의 햇빛을 하나 가득 받고 서 있는 거대하고 화려한 노트르담은 도시의 인상을 결정짓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도시의 인상을 결정할 만한 다른 곳을 볼 시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랭스 하면 대성당이다 하고 성당만 쳐다보며 잠시 쉬었다. 성당 안은 시원해서 천천히 돌아보고, 아예 성당 바로 앞의 브라세리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먹는 것으로 랭스 방문을 마무리했다. 


랭스에서 낭시에 이르는 길에는 1차 대전 격전지로 유명한 베르됭(Verdun)과 산업도시로 낭시보다 큰 메츠(Metz) 근처를 고속도로로 정신없이 지났다. 낭시 역시 딱 한 군데 돌아볼 여유밖에 없어서, 유명한 곳 관광지 리스트 제일 처음에 나오는 광장을 네비에 찍고 최대한 가까이 주차를 했다. 잘 정리된 도시였지만 역시 구시가 진입은 만만치 않았다. 낭시는 조금만 검색해 보면 '아르 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디자인의 도시이니 건물들을 천천히 구경하라는 팁이 나온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아름다운 광장이 세 개나 있는, 예술적인 감각이 살아있는 도시라는 자랑이 많다. 그렇지만 시간 없었던 우리의 선택은 단 한 곳, 그 세 개 광장 중 제일 유명하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수식이 붙는 스타니슬라스 광장(the Place Stanislas)이었다. 

낭시 스타니슬라스 광장 주변

오후의 햇살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그늘이 거의 없는 광장을 구경하자니 휴식이 아니라 고행에 가까웠다. 하지만 스타니슬라스 광장은 명성에 걸맞게 후회 없는 구경이 되어 주었다. 밝은 색 바닥이 눈부시고 엄청나게 뜨거웠지만, 정사각형에 가까운 보행자 전용 광장은 과연 아름다웠다. 드론으로 위에서 보면 정말 예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면으로 보니 바닥보다는 대칭으로 배치된 황금빛의 대문과 분수들이 더 눈에 뜨였다. 정 가운데 동상이 스타니슬라스라는 사람인데, 설명을 보니 뜬금없이 18세기 말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의 이름이었다. 광장을 선물한 것인가 했더니 근세 유럽의 복잡한 왕위 계승 전쟁 과정에서 이곳의 대공이 되어 통치를 한 거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 대공이자 프랑스 왕의 장인이었다는 등 복잡한 중세 유럽의 정략결혼 관계가 실감이 났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나로서는 낭시에서 그 시절 대공 이름을 접하니 새롭기도 했다.


아르누보 양식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낭시 광장 구경을 마치고 스트라스부르까지 열심히 달렸다. 낭시를 벗어나면서 세계사 교과서에 나왔던 알자스 지방으로 들어가는 셈이었고, 스트라스부르는 독일과 맞닿은 그 끝에 있는 알자스 지방의 주도다. 하루 만에 파리 근교에서 독일과의 접경지역까지 이동하면서 구경에도 욕심을 부린 날이었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해서 결국 엄마가 몸살 기운을 보이셨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앞으로도 만만치가 않다는 게 더 큰일이었다. 이미 숙소 예약을 전부 끝내서 일정 변경도 어려운데, 그저 장거리 이동이 없는 사이사이 날에 쉬면서 잘 회복하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빠와 딸은 약간 남은 늦은 여름밤의 시간을 못 참고 나가서 밤거리 구경을 하다 왔으니, 참 못 말리는 가족이다. 

해가 긴 여름밤의 스트라스부르그 구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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