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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Oct 13. 2018

샤토 티에리, 길 위에서 기억하는 세계대전

1일: 프랑스 샤토 티에리

한국에서 비행기로 날아오신 부모님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만났다. 그리고 시내 반대편으로 홱 돌아 곧바로 벗어났다. 유럽 여행 첫 순위로 꼽히는 파리를 외면하니 좀 미안하기도 했으나 이번 여행에서는 뒷전이었다. 33일 후 여행 종착지가 같은 샤를 드골 공항이어서 32일째 마지막 여정으로 베르사유 궁전을 넣었지만 시내는 제외다. 관광객에게 파리는 언제나 매력적이고 언제나 정답이라 하지만, 이번만큼은 '전에 가본 도시'라는 이유로 에펠탑을 포기했다. 파리 시내는 소매치기, 차량 훼손, 도난 같은 사건 스토리도 너무 화려해서 막 새 리스카를 받은 운전자가 도전하기에는 두렵기까지 했다. 


파리로부터 등을 돌리고 출발하니 외곽의 넓고 여유로운 프랑스 땅이 펼쳐졌다. 도시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농업강국 프랑스의 면모가 잘 정돈된 끝없는 밭으로 나타났다. 이게 바로 서유럽의 구릉 지대라는 듯,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는 땅과 거기 누운 평야와 농장들 덕분에 프랑스의 인상이 멋쟁이 파리에서 풍요로운 선진 농업국으로 바뀌었다. 차를 받고 출발할 때 이미 저녁 7시가 훌쩍 넘었지만 6월의 긴 여름날은 아직 대낮이었다. 오후 서너 시 드라이브 느낌으로 프랑스 북동부 평원을 달렸다. 샤토 티에리에 도착했을 때는 9시가 다 되었지만 푸르스름한 저녁이 길게 이어졌다. 

33일 동안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준 푸조308, 프랑스에서의 첫 저녁은 샤토 티에리에서 피자로.

아담한 이비스 호텔 앞 피자리아에서 선선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프랑스 첫날 저녁을 피자로 먹었다. 한데 식사 내내 멀리 언덕 위에 조명을 비춘 신전 같은 기념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작은 마을 주변에 컨벤션 센터가 있을 리도 없는데, 멀리서 봐도 매우 거창했다. 호기심에 물어보니 1차 대전 참전 미군 전사자 기념비(The Château-Thierry American Monument)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은 독일, 벨기에와의 국경에 가까운 프랑스 북동부다. 1, 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서 유럽을 휩쓴 수많은 전쟁이 깊은 자국을 남긴 자리다. 샤토 티에리는 마른(Marne) 강 유역에 속한다. 유럽 전쟁사에서 참혹하기로 손꼽힐 1차 대전 참호전 사진과 이야기 상당수가 여기 마른 강 유역을 포함해서 북쪽 솜, 동쪽 베르됭으로 이어지는 지역에서 나왔다.


사실 이름도 생소했던 샤토 티에리는 순전히 지도 상으로 위치만 보고 첫날 숙박지로 낙점한 곳이었다. 2일 차 경유지인 랭스를 향해 나아간 방향, 파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어 딱 바로 자면 될 것 같았다. 차가 있으니 저렴한 호텔과 소도시를 선택할 수 있음에 만족스러워하면서 예약해 놓았었다. 미군 기념비가 있음을 보고 나니 얼마 전에 읽은 소설 '스토너'에 이 이름이 등장했던 것이 우연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1917년에야 1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군인들이 독일군을 맞닥뜨린 전쟁터로 유명한 곳이었다.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 스토너가 다른 오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다 샤토 티에리에서 죽은 친구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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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데이브 매스터스를 떠올리며 빙긋 웃었다.

"당신하고 친한 친구였어요?" 이디스가 물었다. 

스토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친구였소."

"샤토 티에리." 핀치가 잔을 쭉 비웠다. "전쟁은 진짜 엿같아."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우리 친구 데이브는 아마 지금쯤 어디선가 우리를 보며 웃고 있을걸. 자신이 안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거야. 그 친구가 프랑스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구경하기는 했는지 모르겠네."

"그거야 모르지." 스토너가 말했다. "그쪽에 도착하고 금방 죽었잖아."

"그럼 그거 안타까운 일인데. 난 그 친구가 군대에 들어간 가장 큰 이유가 그거라고 항상 생각했거든. 유럽을 구경하는 것."

- 존 윌리엄스, <스토너(Stoner)>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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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스토너의 친구는 박사과정생이던 1917년에 참전해서 일 년 후 샤토 티에리에서 전사한다. 박사과정생이라 해도 20대 중반 정도 되었을, 패기 넘치고 꿈 많은 청년이었을 것이다. 어떤 동기였든 간에 참전할 때 참호전과 죽음에 대해서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처음으로 유럽도 가고 경험도 쌓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샤토 티에리의 미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의 전투는 1918년 5월~6월에 치열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전무후무한 단시간 최다 사상자 수를 기록하던 참호전에 투입된 젊은 병사들이 다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 같았을 거라 생각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샤토 티에리에서 맞닥뜨린 1차 대전 기념비로 인해 생각지도 않게 여행의 첫날은 전쟁의 기억과 함께하게 되었다. 나폴레옹 전쟁도 있고 2차 대전도 있지만 특히 1차 대전의 기억이 압도적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참호전의 사상자 수와 충격이 그만큼 지독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날 랭스를 지나 낭시로 향하는 길에도 내내 마른과 베르됭 지역의 전투들이 길 가 표지판으로 계속 따라왔다. 고속도로 상에 주변 도시의 주요 명소를 표지판으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마른과 베르덩 지명과 함께 십자가, 탱크, 철모 등 그림이 계속 나왔다. 기념공원이나 묘지가 거의 마을마다 있는 것 같았다. 길 가 풍경은 분명 평화롭고 풍요로운 밭과 숲인데, 왠지 그 구릉마다 죄다 전쟁의 기억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의 샤토 티에리는 정말 작고 깔끔하게 꾸민 소도시(마을)이다. 이튿날 안개가 너무 짙어 언덕 위의 미군 기념비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침 장날이라 작은 마을 광장과 골목에 들어선 장터와 아기자기한 건물 사이를 잠시 산책했다. '샤토(성)'라는 이름에 맞게 당연하게도 오래된 성채가 있었다. 성 내부 건물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언덕 위의 성채 아래 형성된 소도시였고, 지금은 파리에서 은퇴한 사람들이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기에 좋을 듯한 조용한 마을이었다. 장터에서 딱 한 명의 아시아 사람을 마주쳤는데 신기하게도 한국분이었다. 파리에서 이사 와서 사신다며, 한국 사람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면서 우리를 신기해하셨다. 어느 지역, 어느 마을이든 거주하는 분들은 전쟁의 기억보다는 평화로운 오늘에 집중하며 사실 것이다. 여행자이다 보니 역사 교과서 어딘가, 소설 속 어딘가에서 읽은 과거의 기억이 더 또렷하게 보이고 인상에 남는다. 


전쟁터로 유명했던 프랑스 북동부의 마을에서 시작된 여행은 계획에 따라 점점 휴양지로 유명한 곳들로 향했다. 스위스나 크로아티아는 전쟁사와는 거리가 멀 테니 아픈 기억은 당분간 접을 수 있겠다 싶었다. 한데 여정의 끝이 다시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 지역을 통과해 돌아오는 것이다. 즉 여행 막바지는 필시 2차 대전의 기억으로 채우게 될 것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화려한 관광지와 멋진 풍광을 훨씬 더 많이 보았지만, 결국 전쟁이라는 인간사의 맨얼굴로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여행이 되었다. 

마침 장날이었던 샤토 티에리의 아침 광장. 뒤로 벽만 남은 성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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