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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Dec 14. 2018

바젤과 인터라켄, 일요일의 스위스는 오직 휴식

4일: 스위스 바젤, 인터라켄 뮈렌 마을

스위스 국경을 넘자마자 나오는 바젤에 이르렀을 때는 일요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여름 햇살이 강해지기 시작하고 교회마다 예배가 진행 중일 시간이었다. 스트라스부르를 벗어나자마자 강 건너 독일 측의 라인 강변을 따라 고속도로를 달렸다. 일요일이라 트럭이 거의 (전혀) 다니지 않는 유럽의 고속도로는 한산하고 쾌적했다. 프랑스 고속도로는 톨비를 내야 하지만 독일 고속도로는 무료다. 스위스는 비넷(vignette)을 사면 해당 기간만큼 고속도로를 무제한 다닐 수 있다. 문제는 비넷을 1년 단위 이하로는 안 판다는 것이다. 1주일 남짓 머무는데 1년짜리를 사자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고속도로를 피해서 국도로만 다닐까 잠시 고민했으나, 시간이 금보다 귀하다는 생각에 스위스 진입 직전에 비넷을 사서 붙였다. 혹시 우리 리스카가 반납 후에 렌터카로 변신한다면, 1년 안에 빌리는 어떤 여행자가 혜택을 보게 될 테니 좋은 일하는 셈 치기로 하였다.


바젤에 들렀던 이유는 점심이나 먹고 가자는 거였다. 목적지인 인터라켄까지 가는 길 중간 휴식으로 일정에 넣었다. 간 김에 광장과 성당 정도 보자는 안일한 생각에 별다른 준비도 없이 도착했다. 대도시는 아니지만 스위스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인데, 도심 진입이 너무 수월하고 주차장도 여유가 넘쳤다. 일요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가 아니니 주말, 특히 일요일은 모든 업장이 쉬는 것이다. 명품부터 중저가 브랜드까지 상점이 가득했지만, 백 퍼센트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문을 연 가게는 보이지 않았다. 문득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광장 앞 카페 한두 곳 외에는 하는 곳이 없었다. 주차장 옆에 영업 중이던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를 마지막 보루로 삼고 조금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바젤의 명물 시청사에서는 일요일에 주민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일요일 오전의 조용한 바젤에서 한 군데 붐비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시청사였다. 빨간 중세풍의 겉모습 때문에 관광 목록 1호이기도 한데, 내부는 볼 게 없다고 했다. 중세풍으로 꾸며놓은 현관까지만 들어가 보는데, 일요일에 쉴 게 분명한 관공서에 주민들이 계속 들락거렸다.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중년 신사 한 분이 영어로 '당신들은 오늘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직접 보고 있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어떤 사안에 대한 주민 투표를 하는 날이었다. 직접 민주주의이니 투표는 자주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주중의 휴일로 하기보다는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는 일요일에 투표를 하는 모양이었다.

바젤 뮌스터 교회당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느라 바쁜 시청사 외에는 고요할 정도로 한적한 바젤의 언덕길을 올랐다. 라인 강을 내려다보며 꽤 가파른 언덕을 모르면 우뚝 서있는 바젤 뮌스터(Basler Münster) 교회당과 광장이 나온다. 중세 가톨릭 성당이다가 개혁교회가 되었다는 뮌스터 교회당은 고딕 첨탑이 있는 유서 있는 건물이었지만, 마치 얼마 전에 붉은빛 돌들을 깎아 올린 듯 깔끔했다. 일요일 오후의 음악회를 준비 중이던 내부도 아치가 많은 고딕 성당 양식은 분명한데 막 청소한 것처럼 잘 닦은 느낌이었다. 스트라스부르의 고색창연한 화려함과 매우 대조적이다. 오래되어도 깔끔하고 심플한 느낌이 스위스 느낌인가 보다. 교회와 광장에 사람들이 꽤 있어서 내심 근처에 문 연 식당이 있기를 바랐으나 부질없는 기대였다. 결국 점심은 주차장 옆에 봐 두었던 서브웨이 샌드위치 가게로 해결했다. 미국 브랜드라 그나마 관광객을 배려하여 일요일에도 열어주었나 싶다.


유럽이 대체로 그렇지만 스위스는 이른 퇴근시간과 주말 휴식이 정말 철저했다. 호텔이 유독 비싸서 에어비앤비에 머물렀고, 그래서 장을 꼭 봐야 했다. 슈퍼마켓들이 5시면 모두 문을 닫는다.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5시 전에 미리 슈퍼마켓에 들르도록 신경 쓰면서 다녔다. 여름이라 해가 길어 10시까지도 훤했지만 슈퍼는 5시에 닫으니, 관광 다니다 중간에 장을 봐서 트렁크에 넣어두는 식이었다. 그나마 스위스 관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터라켄의 융프라우요흐 매표소 바로 앞 슈퍼(편의점?) 정도가 6~7시까지 했던 듯하다.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바젤을 떠나 스위스 산 경치의 대표 관광지인 인터라켄 마을로 달렸다.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숙소에 여장을 풀고 나니 3시가 넘은 오후였다. 인터라켄은 외국 관광객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일요일이 산악열차 영업과는 큰 상관이 없었다. 이미 한국에서부터 준비해온 할인권을 챙겨 들고 곧바로 매표소로 갔다. 일회권도 있지만, 하루 반 머무는 동안 경치라도 실컷 보고자 2일 이용권을 사기로 했다. 융프라우 등정 1회가 포함된 인터라켄 산악열차 자유이용권은 1일권과 2일권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이왕이면 2일권을 사서 다른 곳도 올라가 보자는 게 계획이었다.

라우터브루넨에서 뮈렌 마을로 가는 케이블카도 절경이다.

아무리 해가 길어 밤까지 밝다고 해도 높은 산을 오르는 산악열차들은 막차 시간이 매우 빠르다. 융프라우요흐는 다음날 아침 일찍 오를 예정이었다. 오후 3시 이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열차까지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곳은 뮈렌 마을 정도가 가능했다. 예쁘다는 후기가 많은 뮈렌 마을은 라우터브루넨까지 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가서 다시 케이블카로 갈아타고 20여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자유이용권은 그 코스들이 다 무제한 이용이다. 스위스 답게 비싼 이용권이라 본전을 생각해서 기차를 많이 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관광객들은 보통 융프라우요흐만 한나절 올라가고 서둘러 다음 여정으로 떠난다. 대부분의 한국 관광객보다 이미 더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필수 코스도 아니고 오후 시간이었기에 산악열차도, 케이블카도 여유롭게 타고 올라갔다.


6월의 스위스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일 줄 알았다. 하지만 유난히도 기상이변이 많았던 올해, 인터라켄 하늘은 구름이 많고 변화무쌍했다. 뮈렌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다행히 햇빛이 반짝여서 마을은 그야말로 빛이 났다. 동화 속 집 같은 아기자기한 장식을 많이 하고, 특히 꽃을 다양하게 심어 놓았다.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진 마을은 병풍처럼 보이는 눈 덮인 산봉우리들과 함께 멋진 경치를 만들었다. 뮈렌 마을에서도 융프라우요흐와 주요 산봉우리들의 다 보였다. 혹시나 내일 날씨가 어떨지 몰랐기에, 산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것은 일단 고마운 일이었다. 구름이 오락가락하면서 가볍게 비를 뿌리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해가 나고, 그에 따라 기온도 급변하는 특이한 경험이었다.

일요일 오후 조용한 뮈렌 마을 즐기기

산봉우리들이 보이는 카페에서 맥주 한잔 하며 마을을 즐기고 기분 좋게 내려오는 것으로 인터라켄 첫날을 마감했다. 주요 카페 두어 개 말고는 모든 집이 닫혀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것도 일요일이어서 그랬던 것이다. 작은 가게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마치 아무 영업 안 하는 거주지 전용 산골 마을에 몰래 방문한 느낌이었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심지어 교회마저 꼭꼭 닫혀 있었다. 관광안내소도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있었다. 너무나 조용해서 오히려 좋았다. 어찌 보면 주말은 이렇게 조용하게 휴식하는 게 맞는데, 한국 사람으로서는 낯설기가 그지없다. 한국도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 같은 키워드를 계속 강조하다 보면 이렇게 모두가 쉬는 주말이 올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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