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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Jan 12. 2019

슈코치안 동굴에서 자다르 석양까지 아드리아 해안길

13일: 슬로베니아 슈코치안 동굴, 크로아티아 자다르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나라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어제 들른 블레드와 보힌 호수는 슬로베니아 북쪽, 오스트리아에 더 가까운 지방이다. 오늘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 크로아티아로 가는 여정이다. 류블랴나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유명한 동굴군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종유동굴이 여러 곳 있어서 동굴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석회질의 토양이 있다면 어디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며 일단 동굴군으로 향했다. 가장 유명한 동굴은 포스토이나(Postojna) 동굴이다. 종유동굴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규모가 대단하다고 한다. 최근에 그에 못지않다는 추천 글이 눈에 띄는 동굴이 슈코치안(Škocjan) 동굴이다. 잠시 고민하다 슈코치안 동굴로 방향을 잡았다. 서로 그리 멀지 않은 두 동굴이지만 다 볼 시간은 없었다. 둘 다 투어 시간이 정해져 있고, 짧은 코스도 두 시간 정도는 걸려서 꽤 맘 단단히 먹어야 하는 볼거리다.


슈코치안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라있고, 카르스트(Karst) 지형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한다. 좁고 울퉁불퉁한 동굴이 아니었다. 지하에 흐르는 강과 거대한 계곡에 가깝다. 포스토이나 동굴보다 슈코치안 동굴을 선택한 이유가 동굴 속에 흐르는 강을 볼 수 있다는 것, 지상에서 푹 패인 지형이 색다를 것 같아서였다. 포스토이나 동굴을 가보지 않아서 비교는 안되지만, 전혀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나라의 동굴들과 확연히 다른 거대한 지하 지형이다. 정각마다 시작하는 가이드 투어는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긴 통로로 이루어진 익숙한 형태의 동굴 구간은 별로 없었고, 천정이 수십 미터나 되는 거대한 공간이 연이어 나오는 식이었다. 관광객 안전과 동굴 보호를 위해 걷는 통로는 데크와 난간으로 제한해 놓았다.


종유석과 석순의 규모가 엄청나고 계속 변화하고 있는, 살아있는 종유동굴임은 분명했다. 공간의 깊이와 넓이가 너무 크다 보니 종유석보다는 동굴 규모를 감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래를 흐르는 레카(Reka) 강이 만들어내는 지하 계곡 경치와 소리가 대단했다. 사시사철 20도 정도의 온도로 균일하다는 설명, 원시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던 흔적과 수도사들의 흔적이 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개발 초기에 쓰던 탐방길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있었는데 절벽을 넘나드는 길이 위험천만해 보였다. 그때는 관광도 목숨 걸고 했나 보다. 지금은 좁더라도 절벽을 따라 난간을 잘 만들어 두어서 부모님과의 구경에도 무리가 없었다. 동굴이 끝나고 강이 햇빛 아래로 나오는 부분은 동굴 천정이 무너져서 푹 파인 계곡이 된 것이라고 한다. 동굴 구경하며 한참 내려온 계곡 위로 다시 올라가는 구간은 다행히 푸니쿨라처럼 생긴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슈코치안 동굴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출구를 나오면 거대한 동굴이 무너져서 생겼다는 절벽 지형이 나온다.

어둡고 서늘했지만 워낙 넓어서 갑갑하지 않았던 동굴 구경을 마치니 점심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동굴 매표소 옆에 딸린 카페테리아에서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한 후 크로아티아를 향해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6월 중순의 맑은 하늘 아래 본격적으로 여름을 느끼게 되리라는 기대와 함께 발칸반도와 아드리아 해안을 향해 달렸다.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기다랗게 자리한 나라다. 북쪽 해안에서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와 국경이 닿았고, 아드리아 해 동쪽 해안을 모두 차지했다. 바로 안쪽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이 해안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안 했을 리 없는데, 딱 항구 한 개 출구로 주고 크로아티아가 다 가졌다.


이탈리아 반도의 맞은 편인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안에는 당연히 고대 로마 때부터 주요 항구도시들이 있었다. 그 유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로마 유적 위에는 중세 시기 해양제국을 이룬 베네치아 공화국 유적이 겹쳤다. 거기에 아름다운 경관이 어우러져 크로아티아는 발칸 반도의 독보적인 관광 대국이 되었다. 크로아티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그 해안을 따라 가볼 만한 곳들을 취사선택하기가 정말 힘들었다. 북쪽 지역에 튀어나온 삼각형 반도 끝의 풀라(Pula)라는 도시에는 로마 원형경기장 유적이 잘 남아있다고 한다. 해안가 작은 도시나 섬들도 매력적인 곳이 많았다. 그런 많은 지점들을 애써 포기했다. 이틀 숙박을 잡은 자다르는 북쪽 끝 리에카에서 남쪽 끝 두브로브니크까지 이어지는 해안길의 삼 분의 일쯤 되는 지점에 있다. 저녁 전에 자다르에 도착하기 위해 곧바로 리에카를 지나 해안길로 접어들었다.


내륙 쪽으로 고속도로가 있었지만, 이왕 온 김에 바다를 보면서 가자는 게 계획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계속 고속도로 쪽으로 나가라고 추천했지만 무시하고 해안에 가까운 좁은 지방도로를 고집했다. 결과적으로는 살짝 후회했다. 푸른 바다는 계속 보였지만 도시나 마을이 아닌 해안길 풍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긴 섬이 많아서 탁 트이기보다는 섬으로 막혀 보이는 바다 풍경이 이어졌다. 두어 시간 달리고 나니 풍경이 다 비슷해 보였다. 정확히 서쪽을 향하는 해안이라 뉘엿뉘엿 지는 햇살에 계속 눈이 부셨다. 언제 또 이 길을 달리겠냐며 끝까지 해안에 면한 도로로 가기는 했다. 그런데 남쪽으로 갈수록 해안길이 생각보다 훨씬 구불구불해졌다. 다리를 놓았다면 곧게 해안을 달렸겠으나 그런 수준의 개발은 없었다. 다리를 놓기보다는 해안선 그대로 도로를 만들었기에 급커브로 들락날락하느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게 아드리아 해안을 네 시간 가까이 운전해서 겨우 자다르에 도착했다.


길고 구불구불했던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 해안 도로, 그렇게 도착한 자다르의 저녁 시간

그렇게 도착한 자다르는 긴 여름의 저녁 시간을 즐기기 좋은 작은 도시였다. 숙소인 에어비앤비 주인이 친절하게 석양 보기 좋은 곳, 주민들이 좋아하는 해변 바 같은 곳들을 추천해 주었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모든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잡았다. 호텔이 많지 않기도 했고, 프라이빗 해안을 내세우는 리조트들은 비싸기도 하고 자동차 여행 취지에 맞지 않아서였다. 주민들도 관광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에어비앤비가 정말 많다. 미리 예약하면 주차 가능하고 접근성도 좋은 숙소를 잡을 수 있다. 자다르 숙소는 낡은 아파트였지만 내부는 잘 수리했고 자다르 구시가까지 금방 걸어갈 수 있었다.  


해가 긴 6월 자다르의 일몰 시간은 저녁 8시 반 정도였다. 그 유명한 석양을 보기 위해 바로 구시가로 향했다. 자다르 구시가는 섬은 아니고 육지와 평행으로 형성된 반도지만 사이의 만을 건너는 다리로 진입해야 하는 요새 형태다. 구시가 시내는 로마의 흔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세 베네치아 치하의 건물이 주로 남아있었다. 요새 자체도 그렇고 중심의 광장과 시청사, 성당의 모양도 중세 이탈리아나 르네상스 같은 단어를 연상시켰다. 석양 이야기만 많아서 유적은 생각도 안 했었는데, 돌로 깔린 오래된 바닥부터 구시가 전체가 유적이었다. 유적 좋아하는 우리 가족 마음에 딱 드는 풍경이 어스름한 저녁 빛깔로 물들고 있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자다르 석양 포인트는 바다 오르간이 있는 요새 밖 해변 공원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하나 있는 카페는 만석이어서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식사는 석양 이후로 미루고 우리 가족도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 오르간은 불과 몇 년 전에 설치한 작품인데 석양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신기한 소리로 흥미를 더해준다. 파도에 따라 울려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평선까지 천천히 떨어지는 일몰을 구경했다. 구름이 많지 않아서 색깔이 별로일 거라 생각했는데, 명성이 헛것은 아니어서 시시각각 변하는 색깔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이 해변 공원은 요새 안쪽의 구시가와 딴판으로 현대적이어서 바다 오르간도 있고, 투명하게 판을 깔아 설치한 바닥분수도 있다. 그 공간들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추억을 만들면서 연신 사진을 찍는다. 우리 가족도 일몰을 배경으로 수없이 사진을 찍고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야 자리를 떴다. 어두워지면서 불을 밝힌 구시가 분위기는 또 색달랐고 아직 거리는 떠들썩했다. 길거리 피자로 저녁을 때우며 구시가를 구경하고 다녔다. 총 운전 시간이 6시간이 넘은 하루였지만, 멋진 석양과 야경으로 피로마저 잊어버린 크로아티아 여행의 첫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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