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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리 Jan 20. 2019

스플리트, 로마 유적 그대로 생활의 터전을 삼다

18일: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스플리트에서 이틀 밤을 묵을 계획을 할 때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플리트비체, 두브로브니크를 다 본 이후라 더 이상 감동은 없을 줄 알았다. 구경보다는 해안에서 쉬려고 했다. 혹시 시간이 남으면 무엇을 할지, 주변에 다녀올 만한 관광지를 물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도착해서 잠시 들여다본 구시가지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옛 로마 황궁 터가 남아있다는 정보는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잘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로마 유적을 지금 이탈리아 로마처럼 격리 보호하는 게 아니라 생활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보수도 하고 주요 장소는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식당, 카페, 가게, 관공서, 숙소 등 요즘의 필요에 따라 쓰고 있었다.


고대 로마 후반으로 갈수록 이탈리아 본토 태생이 아닌 황제가 많이 등장한다. 이곳 출신이었다는 디오클레티아누스도 그중 하나다. 군인 출신으로 황제에 올랐다가, 노후를 보낼 셈으로 고향에 거처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후용 황제궁이었다가 묘소가 되었고, 그 성채가 고스란히 구시가지가 되었다. 수없이 용도변경이 되었지만 기반과 윤곽은 그대로다. 중세 때에도 헝가리나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은 주요 항구도시였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주요 거점이 되면서 로마 유적 위에 중세 건물이 겹쳐 지어졌다. 로마 황궁 시기의 지하층 공간을 발굴해서 입장료를 받고 들여보내 주는 곳이 있었다. 주로 지하 창고나 상하수 시설, 황궁 하인들의 공간이다. 중간 즈음에 지상으로 뚫린 허물어진 터가 나오는데, 아래부터 위로 시대에 따라 달라진 벽 구조가 뚜렷이 구별된다. 큼직큼직하게 돌을 깎아 맞춘 고대 로마에 비해 작게 돌을 깎아 쌓은 중세 건축 부분이 더 어설퍼 보인다. 중세보다 고대 건축이 더 고차원적으로 보이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구시가에 남아있는 돌바닥이나 큰 구조는 거의 고대 로마 버전이다. 중세의 영향은 그 위에 지은 건물들의 상층부, 구시가 밖으로 확장된 건물들에 남았다.

스플리트 구시가는 디오클레티아누스 로마 황제의 궁전 터 위에 겹겹이 쌓인 유적 도시다.

유적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이렇게 생동감 넘치는 유적 겸 생활공간은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광경이었다. 다른 계획 다 관두고 하루 온전히 구시가지를 돌아다녔다. 관광안내소에서 주요 유적 포인트들을 도보로 돌아볼 수 있는 관광지도를 얻었다. 번호 순서대로 다니면 구시가지 내의 주요 지점과 성 바깥 해변까지 다녀오게 되어 있다. 신시가지 쪽 해변에서 구시가를 바라보는 전망이 마지막 순서다. 대부분은 그냥 가면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다. 네 곳 정도 따로 표를 사야 하는데 별로 비싸지는 않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궁의 지하 발굴 공간은 별도의 표를 사야 한다. 중앙의 성당(첨탑 포함)과 성당 지하(크립트), 옛 제우스 신전(요한의 세례당)은 통합권을 판다. 역사박물관도 입장할 경우에는 별도 입장료가 있었다.


네모진 구시가는 십자형의 주요 골목을 걷다 보면 금방 관통한다. 하지만 작은 골목과 볼거리들이 얽혀있어서 계속 들락날락하게 된다. 사대문처럼 북문(금), 동문(은), 남문(동), 서문(철)이 있어서 방향 찾기는 쉽다. 로마 시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아서 황제가 배로 궁에 바로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바다가 물러나면서 공간이 넓어진 남쪽 문과 성벽은 중세 때 계속 증축이 되었는지, 거의 돌로 만든 쇼핑몰 수준이다. 위층은 레스토랑과 호텔이 있고 지하 공간은 기념품 상가가 되었다. 용케 로마 황궁 시절의 둥근 현관(vestibule) 공간이 살아남아 관광 기점 역할을 한다. 둥근 천정 덕에 소리 울림이 좋아서 달마티안 포크송을 부르는 아카펠라 팀이 공연을 하면서 음반을 판다. 현관을 들어서면 직사각형의 광장이 등장한다. 고대부터 회랑으로 둘러싸여 상류층의 소통 공간이었을 광장은 지금 열린 카페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커피값이 싸진 않지만 계단참에 방석을 깔고 앉아 커피나 맥주 한 잔 할 가치는 충분하다. 1700년 전부터 별별 사람들이 별별 일을 다 했을 바닥과 계단을 공유하는 느낌이 든다. 광장 한쪽에는 뜬금없이 검은 돌로 된 이집트 스핑크스도 앉아있다. 그때 그 시절 황제의 사치품으로 실려와서 이곳저곳에 얹혀 수많은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구시가지 중앙의 로마 황궁 현관, 광장의 카페, 성당이 된 황제묘와 첨탑의 전망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묘였다는 팔각형의 무솔레움은 중세 때 성 돔니우스(St. Domnius) 성당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첨탑이 추가되었다. 중세 이탈리아 풍 첨탑은 독보적인 전망대 겸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성당은 7세기에 생겼다는데 점점 장식이 덧붙여져서 문짝부터 제단, 내부 곳곳이 대단히 화려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다. 사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 박해에 열심이었던 황제다. 그 무덤 자리에 성당이 들어섰으니 흥미로운 이야기다. 성당의 주인공인 성 돔니우스도 디오클레티아누스 박해 때 순교한 성직자였다. 황제 무덤 흔적은 오로지 팔각형의 건물 모양뿐, 내부는 그의 박해로 순교한 사람들을 기념하는 가톨릭 성당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지하 공간도 성녀 루시에게 헌정된 방이었다. 그녀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순교했다는데, 눈이 뽑히는 방식으로 처형당해서 맹인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는 설명이 있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로마의 옛 제우스 신전도 성 요한의 이름을 딴 세례당이 되었다.


스플리트에 로마 황궁 유적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 스플리트에서 황궁터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북문 밖으로 나가면 커다란 '닌의 그레고리우스' 동상이 있는 꽤 큰 시민공원이 나오고 사방으로 도시가 펼쳐진다. 이 사람은 중세 시절 주교였는데 라틴어 대신 크로아티아 지역 언어를 사용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서 20세기 민족정신의 상징으로 이렇게 큰 동상을 만든 모양이다. 정작 유명한 건 엄지발가락 부분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설이었다. 그 발가락만 반들반들하다. 남문 밖 해변으로 나오면 중세풍 낮은 건물들이 이어지는 휴양지 스플리트의 해안이 펼쳐진다. 사실 로마 유적보다는 요트나 유람선을 타고 가까운 섬으로 바다 구경을 가는 게 더 일반적인 스플리트 관광법이다. 우리 가족은 초대형 페리가 아닌 한 배 타는 데는 취미가 없고 유적에 대한 선호가 확실해서 구시가에 집중했을 뿐이다. 요트가 깔린 해안가를 따라 카페와 식당이 길게 이어져 먹을 곳도 많다. 산책길 조성도 잘 되어 있어 한 바퀴 걸으며 경치를 즐기기도 그만이었다.

북문 밖 닌의 그레고리우스 동상, 남문 밖 해안가 먼 경치

낮에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고대의 석조 유적은 밤에는 또 다른 분위기가 난다. 스플리트도 야간 조명을 잘 설치해서 고대나 중세 유적이 밤에도 빛을 발한다. 체계적인 스포트라이트도 멋진 효과가 나지만, 스플리트의 강점은 그 유적 위에서 호텔이나 레스토랑, 카페들이 늦게까지 운영한다는 거였다. 영업용, 생활용 소소한 불빛들이 야경을 훨씬 다양하게 만든다. 식당이나 바 종류에 따라 들리는 소리나 냄새도 다 달라서 유적이 죽어 보이지 않고 같이 살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유적을 잘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계속 밟고 만지고 테이블과 의자를 깔면 그게 소홀할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보존의 한 방법이다. 좀 더 닳는다 해도, 사람이 남긴 장소는 계속 사람이 써야 생명력이 이어지는 게 아닐까? 고대 황제의 무솔레움 옆에 접이식 테이블을 깐 레스토랑 야외석에서 피자를 시켜놓고, 무너진 회랑 기둥을 팔걸이 삼아 만지작거리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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