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 in 특수학교

다수자가 소수자가 된다면

by 김잔잔

"예서 엄마! 오늘 발표 2시 맞죠? 나 한숨도 못 잤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샛별 엄마는 나보다 낫지. 증조할아버지가 국가유공자라매?"

"에휴, 그래도 몰라. 거의 뺑뺑이라잖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지. 제발 예서랑 샛별이 나란히 되면 좋겠다, 그지?"


1.

삶이 힘들고 버거워질수록 사람들은 분노한다. 분노로 가득 찬 시민들의 목소리가 다양해지면서 국가도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 전 세계가 초고령사회에 접어들면서 대다수 국가들이 복지국가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억지로 꿈틀대며 허물을 벗은 뱀처럼, 시민들의 요구에 못이겨 구시대적인 시스템을 하나씩 버린다. 인간의 기본권이 박탈당하지 않는 나라.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그리고 출산과 노후를 준비해주는 나라. 이러한 진보 사회의 횃불은 보이지 않는 등잔 밑에까지 천천히 번져 소수자에 대한 존중과 포용력을 가진 사회로의 움직임이 태동한다.


2.

그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흔히 장애학교라고 불렸던 특수학교가 눈부시게 성장한다. 저출산에 따라 학교 수는 반토막으로 줄어든 대신 각종 정부 지원금과 지자체 보조금이 쏟아졌다. 과거 무관심 속 방치됐던 학교 시설은 정부의 복지 정책에 걸맞게 완전히 뒤바뀐다. 학생들의 장애 유형에 따라 최첨단 시설을 도입해 학교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꼼꼼히 신경 썼을 뿐만 아니라, 교육부가 공을 들여 개발한 스마트 교구들이 가장 먼저 활용되는 곳도 특수학교였다.


3.

특수교육이 필요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더 이상 일반학교에서 쩔쩔매지 않았다. 손을 만지작 거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아이를 받아줄 수 있을지 말지, 교장이 판결 내리기만을 기다리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고개를 떳떳하게 들고 여유로운 미소로 특수학교를 보내게 됐다. 어디 모나거나 유별나서 '특수'가 아닌, 말 그대로 특공대나 스페셜한 '특수'로 제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이 곳에서는 일반학교보다 앞서 나가는 교육 환경에서 오감, 정서, 특수 교육까지 골고루 믿고 맡길 수 있었다.


4.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교육부가 위와 같은 이념으로 '특수 교육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까지 도입해 특수학교 교사의 자질까지 높이자 엄마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최고의 시설, 최고의 교구, 최고의 교사가 있는 곳에 내 아이가 사지 멀쩡하다는 이유로 갈 수 없다니! 한 엄마가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며 작정하고 도화선을 긋자 맘 카페에서는 불이 난 듯 글이 번져 나갔다. 역차별이니, 장애가 훈장이니 모두 한 마디씩 떠들어냈다.


5.

정부는 단호했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야 한다. 정부의 특수학교 지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특수교육 대상자의 당연한 교육의 기회를 위한 것이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과 여론의 의견을 수용해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학교장 재량에 따라 통합 교육을 위해 비특수교육대상자를 일부 선발할 수 있음' 즉, 어쩌면 사지 멀쩡한 우리 아이가 특수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

곧바로 엄마들은 성난 깃발을 내리고 희박한 성공률의 도박에 온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경쟁률 100대 1이 훌쩍 넘는 뺑뺑이에 뛰어든 것이다.



6.

"엄마, 나 학교 안 갈래."

이제 3학년이 된 예서가 책가방을 쇼파 뒤에 감추고 울먹이며 말했다.

"왜? 학교 가면 재밌는 친구들도 있고, 놀이도 할 수 있고…"

"나, 거기서 왕따란 말야!"


그랬다. 예서는 겉돌았다. 보통 학교에서 조금만 다르면 별명을 짓고 놀려도 괜찮던 일들이 여기선 아니었다. 국어시간에는 책을 혼자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 바람에 친구들에게 눈치를 받았다.

체육시간에는 경쟁심이 강해 친구를 배려하지 않는다고 지적받았다.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표정까지 중요한 수화 공부에서 부끄럽다고 동작을 크게 하지 않자, 친구들이 네 수화는 알아보기 힘들다며 이야기에 껴주지 않았다. 다수의 특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서 예서 같은 비특수 교육 대상자는 소수였다.

지적 장애 학생을 비롯해 다른 친구들을 배려해 천천히 진행되는 체육 활동 또한 적응하지 못했다. 예서의 생활기록부에는 어느새 '배려심이 부족하고' '부주의하며' '산만하다'는 평가가 쓰여 있었다.


"지우가 너 입모양이 안 보인대!"

"뒤에서 별명 붙이는 거 다 들었대!"

"의족 좀 힐끔힐끔 쳐다보지 말아 달래!"

"짝 줄넘기할 때 속도 좀 맞춰달래!"

"책 읽을 때 혼자만 빨리 끝내지 말아 달래!"


예서는 그렇게 특수학교에서 부적응 학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그 어려운 경쟁률을 뚫고 뺑뺑이에 성공한 기쁨에 취해 딸의 아픔에 공감해주지 못했다. 멀쩡한 자기 딸이라면 특수학교에 더 돋보일 것이라고 자부했다. 평생을 교육 환경에서 다수자로 살아온 이의 오만이었다.


7.

예서는 결국 3학년 2학기에 전학을 가게 됐다. 엄마는 심리상담가와 담임 선생님, 그리고 교장 선생님 앞에서 아이가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과 배려'가 부족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에서의 부적응'이 염려된다는 판단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그저 예서의 손을 잡고 나오는 것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손에는 담임 선생님이 쥐어준 심리센터 명함이 힘없이 쥐어져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령사회의 사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