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크리스마스 소원은 이렇지 않을까요?
1.
선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별 것 없는 천장을 한 시간 째 쳐다보고 있다. 아침부터 정확히 네 시간 간격으로 커피 5봉지를 한꺼번에 타 마셨더니 천장 줄무늬를 다 셀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말짱하다. 괜히 담요 속으로 낡은 곰인형의 북실 거리는 배를 쓰다듬어 본다. 갓 쓰레기통에서 금방 주운 것 같은 허접한 모양새지만 선에게는 차가운 손을 부빌 수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2020년 12월 25일. 냉랭한 공기 속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둘은 서로를 꼭 안은 채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산타를 기다리고 있다.
2.
선은 곰인형이 잠들어 버릴까 봐 자신이 아는 노래를 계속 불러준다. 꾀꼬리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반복하고 또 반복해본다. 에델 바이스- 에델 바이스- 그때, 밖에서 쌓인 눈을 밟는 소리가 들린다. 퍼서석- 퍼서석- 놀란 선이 손을 입에 가져다 대고 숨죽인다. 그가 온 것 같다. 신발이 나무판자를 그으며 올라와 거칠게 눈을 터는 소리가 들린다. 긴장한 선이 담요 자락을 손으로 꽉 붙잡는다. 연이어 뭔가 불이 칙 붙는 소리가 들린다. 얼기설기 엮어진 나무판자 사이로 진한 담배 냄새로 스며든다. 선은 코를 막고 밖에 서 있는 이의 움직임에 귀 기울인다.
담배를 머금는 호흡 사이로 얇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존나 춥네. 비정규직 서러워하겠냐"
3.
뒷부분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하나는 분명히 들렸다. 지금 산타가 춥다. 선은 어쩐지 울고 싶어 졌다. 어쩌지, 여기도 진짜 추운데. 책에서 보던 것처럼 옷도 엄청 두껍게 입고 수염도 많아서 괜찮을 줄 알았다. 선은 조심스레 일어나 자신이 덮고 있던 담요를 소리 나지 않게 반으로 갠다. 그사이 산타가 담배를 다 폈는지 신발로 바닥을 비비는 소리가 난다. 언제라도 벨이 울리면 밖으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며 문을 주시한다.
딩동-
4.
선이 삐걱거리는 문을 작은 손으로 벌컥 연다. 평범한 키에 조끼를 입은 마른 체구의 남자가 서 있다. 생각했던 것처럼 뚱뚱하지도 않고 백발 머리도 아니다. 큰 코 사이에 작은 안경을 걸쳐 쓰지도 않았다. 얇은 파란색 조끼에 짧은 노란색 머리를 하고 검정 장갑을 끼고 있다. 산타는 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건 위에 붙여진 스티커를 다시 확인해본다. 이 주소지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뒤 선에게 네모난 상자를 툭 내민다.
"쿠팡 택배요"
5.
상자에는 커다랗게 로켓배송이라고 쓰여 있다. 선이 상자를 쳐다보고만 있자 그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받으라는 눈치를 준다. 푹 눌러쓴 그의 모자에는 반쯤 녹은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젖은 모자를 보자 침대에 곱게 개어놓았던 담요가 생각난 선이 뒤돌아서자 상자가 '툭'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담요를 가지고 돌아온 문가에는 로켓배송 상자만 남겨져 있다. 벌써 산타는 가고 없다. 안되는데, 가면 안되는데.
6.
더러운 양말을 신은 선이 차가운 눈을 밟고 나간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산타를 불러 세운다. "잠시만요. 저기요!" 그가 귀찮다는 듯이 힐끗 돌아본다. 그러나 돌아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선이 다시 얼음장 같은 눈 속에 발을 휘적이며 다가간다. 한 손에는 담요를 옆구리에는 상자를 낀 작은 몸이 힘겨워 보인다.
7.
가까이 다가온 선의 얼굴이 추위로 빨갛다. 남자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간절하다.
"제발 가지 마세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산타의 모자에 계속해서 눈이 쌓인다. 밤하늘이 온통 하얀 솜으로 가득하고 세상에 단 둘 뿐인 것만 같다.
선이 옆구리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상자를 그에게 내민다.
"저, 크리스마스 선물은 필요 없어요."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상자를 받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입을 뗀다.
"선물 대신 그냥 한 번만 안아주고 가시면 안 돼요? 오늘만을 기다렸단 말이에요."
8.
"야, 내가 어딜 봐서."
남자의 말을 가로막고 선이 온몸을 던져 남자를 꽉 안는다. 겨우 허리까지 닿는 손으로 놓칠세라 껴안는다.
쿠팡이라고 크게 프린팅 된 조끼를 입은 남자가 눈 쌓인 거리에서 세상이 멈춘 듯 아이를 안고 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눈꽃이 고요하게 흩날린다. 아이의 양말은 젖어가고 그의 신발은 눈 속에서 바스락거린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두 사람이 하나의 화폭처럼 잔잔한 풍경에 녹아든다.
곧 남자가 아이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꿇고 두 팔 벌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을 전한다. 선은 들고 있던 담요를 펼쳐 눈이 쏟아지는 그의 등을 덮어준다.
"감사합니다."
발그레해진 아이의 볼에도 민들레 솜털 같은 눈이 떨어진다. 눈 속에 묻혀버릴 것처럼 조용한 목소리다. 선은 고개 숙여 인사한 뒤 토끼처럼 집을 향해 뛰어간다. 발목이 폭폭 빠져도 추운 줄 모르고 기쁘게 돌아간다. 흰 눈에 아담한 발자국이 남는다. 넓은 눈길에 홀로 남은 택배원은 아이가 멀어지는 방향을 바라본다. 눈물이 날 것도 같다. 그러나 이 로켓배송 상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전까지 산타의 밤도 끝나지 않는다. 그는 쌓인 눈을 툭툭 털고 다시 가던 길을 향한다.
9.
집에 돌아온 선은 낡은 곰인형에게 제일 먼저 다가가 속삭인다.
나, 산타를 안아보길 진짜 잘했어.
상상했던 대로 선물보다 훨씬 따뜻하더라.
10.
시린 바람이 송송 새는 오두막 한편에 아이가 미소를 띤 채 잠들어 있다.
담요도 없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따뜻한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평온해보인다.
11.
바깥은 자꾸 하얗게 하얗게 눈으로 뒤덮여간다. 세상에 얼룩진 죄와 눈물을 씻어내리려는 듯이 끝없이 끝없이. 깊은 밤, 쏟아지는 눈과 함께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크리스마스가 끝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