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 각인가요?
1.
어떤 작가가 자꾸 내 글에 라이킷을 누른다.
이 플랫폼에서 글을 쓴 지 아직 일주일도 안된 브런치 초보에게는 얼떨떨한 일이다. 심지어 나는 아직도 '저장'한다는 걸 맨날 '발행'해버리는 실수를 하고 유익한 정보성 글을 쓰지도 않는다. 구독자 수도 열 명 될까 말까 한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나를 구독하지도 않는 이 사람 정체가 뭘까?
2.
밀당, 고도의 프로필 유도 전략, 그 무엇이 됐건 일단 감사하다. 수많은 글의 홍수 속에서 내 글을 읽으러 들어와 줬고 맨 아래에 있는 라이킷 버튼까지 눌러 나에게 '누군가 네 글을 알아'라는 신호를 전달해준 이름 모를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3.
브런치 선배인 대학 동기 오빠에게 들은 바로는 '모두 쓰러 온 사람이기에' 니가 원하는 활발한 독자의 피드백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자꾸 라이킷을 누르고 도망가는 이 사람이 소중하고 신경 쓰인다. 오늘 올린 글에도 나타날지 점점 궁금해진다. 그러다 결국 나도 중력에 끌려가듯 그의 프로필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4.
나처럼 하루에 한 편을 쓰는 작가, '글로'.
구독자수가 백 명을 넘다니 상당히 부럽군. 주로 에세이를 쓰는 그녀의 글을 하나 둘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너 같으면 사랑을 하겠냐' 그래 이게 내 스타일일 것 같아. 사랑에 크게 다친 이의 이야기일까 했는데 작가의 몸이 주제다. 뭐야, 글을 읽는데 이걸 쓰는 덤덤하고 슬픈 작가의 표정과 모습이 왜 이렇게 떠오를까. 솔직한 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매거진 하나를 게걸스럽게 탐독하고 나니 '나 이 작가 글 가끔 읽고 싶어'라는 생각이 든다.
4-1.
(p.s 그땐 슬픔의 무게에 눌려 아무 댓글도 달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이렇게 달고 싶다. 제 생각에는요. 작가님은 그냥 그대로 있으면 돼요. 왜냐면 미의 기준은 그냥 다수결, 그저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왔다리 갔다리 무력하게 움직이는 파도인 것 같거든요. 내가 무슨 오뚝이도 아니고 매번 파도 따라 움직이려 하면 멀미나잖아요. 그냥 나한테 올 때도 있고 멀어질 때도 있게 놔두면 돼요. 저는 연예인이 매력 있고 없고 가 다수결에 의해 정해지고 또 바뀌는걸 수십 번 보다 보니 저렇게 다수결인 기준에 내 인생이 휩쓸리는 건 좀 웃기겠구나 싶었거든요)
5.
아무튼 나는 그 이후에도 글로 작가님의 다른 글들을 찾아 읽는다. 그녀의 글에 대해 꼭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주저 없이 댓글을 남기며 '알짱거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담으로 나는 댓글 다는 게 글 쓰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작가에게 댓글이란 '이제 그만 써야지' 싶은 순간에도 눈을 번쩍 뜨이게 할 만큼 산삼 열 뿌리에 버금가는 힘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열심히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해주는 사이가 되어 있다.
6.
브런치에서 알고 지낸 지 반년만에 우리는 함께 '글여행'을 떠나보기로 한다. 나는 이제 그녀를 글로 작가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돈언니'라고 부른다. 언니가 돈 좀 많이 벌었으면 하는 (그래서 미래가 불투명한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염원을 가득가득 담은 사랑스러운 애칭이다. 그녀와 나는 카카오톡 사다리 타기를 통해 강원도로 행선지를 결정하고 각자의 노트북을 챙겨 기차에 오른다.
7.
글 여행은 함께 만나 서로의 글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하고 쓰기 위해 계획했다. 돈 언니와 나는 기차에서부터 달걀 하나씩을 까먹으며 편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글은 이런 점이 진짜 좋아. 이거 살려야 돼' 기죽어 있는 무명작가 기살리기부터 '그 주제는 장편으로 구상해봐. 독자로서 궁금해 진짜' 읽는 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디어 제공까지. 글로 인연이 된 우리의 수다는 기차와 함께 쭉쭉 나아간다.
8.
"돈동생! 밖에 눈 쏟아져, 빨랑 와!"
언니는 언제부터인가 나를 돈(crazy) 동생으로 부르는데 기분이 묘하다.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강원도 숲 속 통나무집이 내리는 함박눈에 포옥 파 묻힌다. 우리는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유리창 너머로 설경을 구경한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널찍한 원목 탁자에는 두 사람의 노트북이 나란히 올려져 있다.
9.
언니와 나는 사뿐사뿐 눈이 내리는 소리와 땔감이 타들어가는 난로 소리를 들으며 글에 몰두해 있다. 돈 동생이 즉흥적으로 정한 주제는 '폭설에 함께 갇혀있고 싶은 사람'이다.
10.
타다닥. 돈 동생과 돈 언니가 키보드를 치는 소리가 통나무집에 맑게 울려 퍼진다.
"우리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일단 마감이나 하자"
브런치에서 만나 함께 떠난 글여행은 순조롭다. 그녀와 나는 넘실거리는 글의 바다에 더 나아가기 위해 노를 젓는다. 라이킷도 댓글도 보기 힘든 망망대해를 함께할 수 있는 동행을 얻었다. 생각지도 못한 이곳 브런치에서.
2020.4.27. 오늘의 상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