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상 앞에는 시에서 받은 상생 카드 안내장이 놓여 있다. 사용처부터 이용제한 업소까지 상세히 적혀 있다. 핸드폰을 여니 '한국판 뉴딜 정책 개시' '대통령, 국가 위기 대비하라 지시'등의 헤드라인이 눈에 보인다. 새로 산 잠옷 바지를 기분 좋게 입고 고당도 귤을 까먹던 나는 멈칫한다. 현재의 나와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서다. 맞다. 누군가는 세계 경제위기와 감염병의 위협을 어깨에 짊어지고 끝나지 않는 일과 사투 중이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잠에서 깨고 잠이 드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평온한 오후 4시의 기분은 상상도 못 할지도 모른다.
그와 나 사이의 기나긴 간극을 떠올리니 '그래서 도대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2.
대통령의 하루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내가 생각해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1> 시민 참여 프로그램
(부제 : 대통령 스케줄 일일 체험)
지원자 중 추첨과 심사를 통해 약 10명 내외의 체험단을 선정, 지정된 날짜에 대통령의 스케줄 일부를 함께 동행한다. 이는 정치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독려하고 시민에게 더 다가가기 위한 청와대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체험단에게는 전용 리무진 및 식사가 제공된다. 이들은 수행비서처럼 일정한 거리에서 대통령의 하루를 지켜보고 국정 업무의 단편을 직접 참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1-2> 국회의원 버전
(부제 : 일좀해라 일)
위 프로그램을 반 강제적인 연수처럼 개편해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매일 입으로(만) 열심히 국민을 위해 애써주는 그들에게 대통령의 하루를 쭉 참관하며 '욕하더라도 직접 눈으로 본 다음에 하자'라는 교훈을 제공한다. 하루가 끝난 뒤 저녁을 함께하며 오늘 본 국정업무에 대한 조언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는 건설적인 프로그램으로 거듭나면 더욱 좋다.
<2> 대통령 유튜브 채널 개설
(부제 : 채널 이름은 재니TV)
아재들의 유튜브처럼 화려한 편집 기술은 없어도 달달달 떠는 카메라 구도를 따라가는 맛이 있는 '재니TV'를 개설한다. 중간중간 타이레놀도 먹고 명상하는 척 눈을 감으며 쉬기도 하는 그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는다. 인간적인 면모가 아니라 원래 하등 평범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가끔은 재인 씨가 셀프 비디오로 오늘의 스케줄을 설명한다. (보너스로 좋아하는 코디 착장은 무엇인지, 대통령이 돼서 좋은 점 베스트와 싫은 점 베스트는 무엇인지까지 이야기하면 재미는 덤)
3.
상상의 출발점은 호기심이었지만 글을 쓰다 보니 '어째서 아직까지 없는 거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의견과 니즈를 대표하는 자와 나와의 거리가 어째서 이렇게 멀어야만 할까? 좀 더 가까워질 수는 없나?
나는 그가 회담 자리에서 이웃 국가 원수와 웃으며 악수하는 성공적인 장면을 알고 싶지 않다. 대신 그 비하인드를 알고 싶다. 그 회담을 위해 몇 차례의 사전 회의와 통화를 거쳐 고심하는 그 준비 과정에 더 눈길이 간다.
무작정 하루를 쫓아가고 싶은 게 아니다.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공개 가능한 국정 업무들의 일부를 시민으로서 참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정치 참여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 또한 이런 프로그램으로 더 번거롭고 신경 쓰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직업을 가진 한 시민'으로서 공감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최상의 모습으로 하루 스케줄을 소화해내는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직업 중 하나가 대통령 같다. 측근들만 볼 수 있는 그의 하루는 외로울 것이다. 대부분은 그의 24시간 중 단 1시간도 알지 못하면서 돌을 던질 것이다. '노력이 중요하냐, 나라가 망하는데'라고 너무 쉽게 외치면서.
4.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을 대표하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이 완벽하고자 하루를 온전히 쏟아붓는 과정. 그딴 게 상관없는 게 아니라 사실 중요하다. 중요하지 않을 리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족한 우리를 대표하는 부족한 그를 보고 '힘내라' 응원하고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며 쓴소리를 한다.
5.
AI에게 돌을 던지며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은 쉽다. 가끔은 대통령이 뉴스에 자주 출연하는 AI처럼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역시 업무를 앞두고 긴장해 화장실을 왔다 갔다하고, 돋보기안경으로 시간을 쪼개 보고서를 읽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만약 그 모습을 보게 된다면 대통령과 정치가 너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을 것 같다.
2020.4.28. 오늘의 상상 끝.
*본 글은 어떠한 정치색을 강요하거나 주장하는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혹시 이미 청와대에서 진행중인 관련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