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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잔잔 Oct 28. 2020

마침내 미스터트롯 티켓을 구했다

엄마를 위한 고군분투 여정

P.S 판매자님 사랑해요. 복 받으실 거예요.

오늘 가장 보람 넘치는 일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때는 온라인 독서모임이 마무리되어가던  21시 즈음, 핸드폰에 소리 없는 알람이 하나 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고나라에 등록해놨던 <미스터트롯 광주> 키워드 알림이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반사적으로 클릭해봤다. 이럴 수가. 이렇게 좋은 명당을 이렇게 저렴하게?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지 게시글의 꼭대기부터 끝까지 5번 정도 읽어본 것 같다.


사기꾼 아니야? 아니, 잠시만 직거래잖아? (미스터트롯 콘서트 티켓은 직거래도 흔치 않고 사기도 엄청 많다.)

물론 나는 광주에 살고, 이건 서울 직거래라고 쓰여 있지만 어떠하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야 하는 티켓임이 분명했다. 행여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연락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판매자에게 문자를 넣었다.

그리고 뒷 일은 속전속결. 서울의 친한 친구에게도 재빠르게 연락을 넣어 직거래를 부탁했고 바로 내일로 거래 시간을 잡았다. 속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아드레날린이 다리 끝부터 쭉 올라오는 기분!


그것도 그럴 것이 오늘 미스터트롯 콘서트 티켓을 구하느라고 적어도 세 시간은 당근 마켓, 중고나라, 티켓베이를 오가며 뒤지는 데 쏟아부었던것이다. 부모님은 광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사시기 때문에 콘서트 날짜와 시간도 잘 맞아야 했다. 부모님께는 생애 첫 콘서트인지라 좌석도 이왕이면 2층이 아닌 1층 앞쪽으로. 이 와중에 사기당하지 않으려면 무조건 직거래로 해야 했으니 클릭하고, 뒤로 가기 누르고, 클릭하고 뒤로 가기 누르는 백팔번뇌의 과정을 거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어떤 사명감이었는지 그렇게 몇 시간 동안 티켓을 찾아보며 엄마를 꼭 하늘에 별따기라는 미스터트롯 콘서트 앞자리에 앉혀드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아마도 절대 제 돈 주고는 콘서트에 못 가시는 엄마에게 모두가 공연장에서 하나가 되어 뜨겁고 생생하게 무대를 즐기는 짜릿함을, 그리고 그 추억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 쉬운 일인가. 두 장에 백만 원에 판다는 사람도 있을 만큼 어떤 가격들은 정말 터무니없었고, 흥정 중에 갑자기 판매 완료로 전환하며 다른 곳에 쏙 팔아버리는 사람도 겪어보자 나도 모르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니와 통화를 하며 하소연을 하는데, 그녀 역시 되면 되는 거고 아니면 내년을 기약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이번에는 안되나 보다 하고 미스터트롯 콘서트에서 빠져나와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을 무렵,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사실 내일로 직거래 약속을 잡아놓고도 나는 계속 웃돈을 얹어주고라도 산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 정도로 미스터트롯 콘서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판매자분께서는 거래하기도 전에 많은 연락들을 차단하기 위해 거래 완료로 바꿔주시는 아량까지 베풀어주셔서 지금 이렇게 한시름 덜고 행복에 겨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등 뒤에 최고의 선물을 준비해두고 입이 근질근질한 채로 엄마에게 모른 체 전화를 걸었다.

"엄마 뭐해?"

"티비 보지"

"뭐 보는데?"

"생로 병사"

"그거 재밌어?"

"자기 전에는 이거 보고, 아침에는 미스터 트롯 틀어 놓지."

"미스터 트롯 아직도 해?"

"재방송. 안 본 것도 있어서"

"거짓말. 엄마 다 봤잖아."

"아니야~ 안 본 것도 있을걸? 내가 진짜 웃긴다. 아침에 이거 틀어놓고 막 막춤을 춰."

"헐. 진짜로?"

"그렇다니까. 그렇게라도 운동할라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동원이 노래 잘한다~ 혼자 흥얼거리며 노래에 맞춰 막춤을 추는 엄마가 상상되었다.

오늘 하루 종일 미스터트롯과 씨름한 보람이 있었다. 비단 엄마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내가 행복했다. 10월에 아르바이트 세 개를 하며 이 돈으로 맛있는 것도 먹고 자유롭게 여행도 가는 걸 상상했는데, 오늘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소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내게 싸구려 옷 입지 말라며 광주까지 와서 비싼 옷을 사주고 돌아갈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내 손에 옷이 잔뜩 든 종이가방을 들려 보내고 돌아가던 엄마의 얼굴은 그제야 편안해 보였는데, 티켓을 구한 지금 내 얼굴이 그렇다.


일주일 전에는 엄마 곁을 완전히 떠나 독립하고 싶다며 언니에게 투정을 부리고,

일주일 후인 지금은 엄마를 위해 누가 묻지도 않은 티켓을 구하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엄마랑 나의 관계는 어쩌면 오랫동안 이런 순환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다른 모녀들도 이럴까?

아무렴 어때. 오늘은 엄마에게 달콤한 추억을 선물할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자러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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