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른 집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선 종종 선물로 인해 감정이 상하는 일이 벌어진다.
주로 반복되는 패턴은 아빠가 나름의 고심 끝에 선물을 사면, 아니나 다를까 열에 아홉은 엄마 마음에 들지 않는 식이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부부의 성격과 취향은 반대라지만, 이것만으로 30년간 반복되는 선물의 불협화음을 설명하기는 부족할 듯싶다.
엄마는 지금껏 아빠에게서 괜찮은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아주 냉철하고 확신에 찬 판단이다. 어느덧 두 분이 같이 살아온 나날들이 혼자 살았던 세월을 훌쩍 넘어가는 아직까지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니. 그녀도 많이 지쳤겠다 싶다. 일 년에 몇 안 되는 선물을 매번 기대하고 매번 실망하는 건 정말이지 기운이 쭉 빠지는 일이다. 작년을 생각하면 기대를 말아야지 싶다가도 올해는 혹시? 조그마한 기대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오르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다면 역시 삼십 년이 넘도록 엄마의 취향 하나를 파악하지 못하는 아빠의 문제일까?
어쩌면 기념일은 이리도 빨리 돌아온다는 말인가, 또다시 엄마의 선물을 골라야 하는 날이 왔다. 기념일이 싫다면서도 그는 약 한 달 전부터 엄마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지나가는 말로 후방카메라가 없어 주차가 힘들다는 말, 홈패션을 배우고 싶다는 말들을 기억해뒀다가 인터넷 서치에 들어간다. 그리고 열심히 리뷰를 비교해보고 본인의 예산 안에 들어오는 합리적인 상품을 찾는다. 그리고 꽤 시간과 공을 들인 선물을 드디어 전하는 결전의 날! 어쩐지 썩 달가워하지 않는 그녀의 얼굴과 마주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둘의 '선물 합'은 빗나가고 역시 기념일은 싫어,라고 생각하며 아빠는 하루를 마무리한다.
딸이 보기에는 꽤 단순한 엄마의 취향을 그는 좀처럼 저격하지 못한다. 저격을 못하는 것을 떠나 사실은 아예 크게 빗나갈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구박받는 선물 센스 뒤에 가려진 아빠의 마음을 안다. 엄마의 취향을 아직까지 몰라서가 아니라, 사실 잘 알기 때문에 더욱 발버둥 치는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평소에 본인이 선뜻 사기 어려운 가격대가 있는 물건,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만한 물건, 가격 대비 쓸만한 것을 원한다. 그러니 그녀가 필요로 했던 명품 신발이나 시계를 선택하면 쉬울 일이다. 그러나 용돈을 받아 쓰는 아빠 입장에서는 알면서도 모른척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다. 대신 그는 자신의 예산에 맞는 중저가 상품으로 눈을 돌린다. 가격은 좀 저렴하지만 두루두루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사주기 위해 시간과 발품을 팔아 인터넷을 뒤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있을만한 경험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갖는 마음을 다 담기엔 나의 예산이 너무나도 턱없는 현실, 그래서 결국 핀트가 맞지 않지만 최선이라며 내놓은 작은 선물들.
나 역시도 엄마의 취향을 턱 없이 빗나가는 선물을 자주 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단 한 번도 쓰이지 못한 채 우리 집 장식 장안에서 15년을 버티고 있는 투박한 커피잔 세트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문방구 유리 선반 아래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오랫동안 아무도 사가지 않아 먼지가 조금 쌓여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예쁜 식기를 좋아하는 엄마에게 선물로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야심 찬 계획이었지만 당시에 2만 5천 원이라는 가격이 너무나도 큰 장벽이었다. 약 한 달간 돈을 모으며 혹시 팔릴까 봐 이틀에 한 번은 쭈뼛거리며 가게를 들어갔다 나오던 내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드디어 거금을 들여 커피잔 세트를 품에 안았을 때의 기분이란 어쩌면 가장 행복한 기억 중에 하나다. 진실로 '줄 수 있다는 기쁨'으로 오롯이 행복에 찬 표정을 엄마도 봤을까? 결론적으로 엄마는 선물을 받고 대견함과 난처함이 뒤섞인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내게 아무도 안 사가는 문구점의 커피잔 세트를 네가 드디어 샀냐며 놀리다가, 너무 비싸다며 가게에 도로 가서 환불해오라고 했다. 그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마음에 빗금이 죽죽 그어졌다. 한사코 그건 싫다며 버텼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이후 장식장에 들어간 비운의 커피잔이 언제쯤 쓰일까 매일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것 같다. 그래서 훌쩍 커버린 지금도 본가 장식 장안에 고이 들어있는 커피잔 세트를 보면 어쩐지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선물이 온다는 것은 몇 푼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도 없는 그 뒤에 가려진 이의 진심이 오는 것이다. 아빠는 내 생일날 일명 '뱀파이어 목걸이'라고 부를만한(실제와 나와 언니는 아직까지 그렇게 부른다) 선물을 주었다. 하트 장식 안에 뾰족한 물방울 같은 것이 매달려 있던 디자인으로 기억한다. 참으로 동네 문방구에서 팔 것처럼 특이한 디자인이었고, 엄마도 언니도 피식피식 웃었지만 나에게는 백 점짜리 선물이었다. 겉만 보면 고어물에 빠진 하이틴이 음산한 방에서 찰 만한 목걸이처럼 보일지라도, 아빠가 나를 생각하며 본인에게 생소한 목걸이를 한참 골랐을 생각에 마냥 좋았다. 가슴이 쿵쾅거릴 정도로 마음에 드는 선물이었다. 선물 센스가 좀 탁월하지 않으면 어떤가. 내가 받은 것은 단순히 취향과 사뭇 다른 목걸이가 아니라 딸에게 처음 주얼리를 선물하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줄이 엉터리로 꼬여 쓸 수 없어진 이후에도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선물로 남아있다.
물론 선물이 당사자의 마음에도 쏙 들고 상대방을 위한 나의 마음까지 잘 표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가끔은 가려진 마음보다, 눈 앞에 보이는 선물이 좀 더 비싸고 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이 아직까지 선물에 아웅다웅하시는 모습을 보면 딸로서 안타깝다. 그 이면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선물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나의 필요와 욕구만을 채우는 물건 거래는 마음이 오고 가지 않는 사회생활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린 가족이니까 말이다.
이제 그만 두 분이 선물에 대해 타협을 보셨으면 한다.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