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잔잔 May 25. 2020

민망한 인터뷰의 추억

선배, 잘 지내세요?

1.

때는 대학교 2학년,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던 시절. 조별과제의 일환으로 신생 스타트업 대표를 인터뷰할 일이 있었다. 대충 '지금 가자'라는 이름의 어플이었는데 당장 모텔이 급한 남녀를 타깃으로 근처의 숙박업소와 연결해주는 서비스였다. (애석하게도 현재까지 쓰는 사람을 한 명도 본 적 없다.) 여러 명의 조원 중 하필이면 겉멋이 잔뜩 든 선배와 짝이 되어 여의도 어느 카페에서 어색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2.

어플의 탄생 배경을 묻는 질문에 대표는 '다들 그런 적 있지 않나요'로 시작해 '급할 때는 찾아볼 시간도 없다'는 본인의 경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조금 TMI(Too Much Information)가 아니지 않나 싶었지만 재밌고 솔직한 답변이었다. 오히려 인터뷰를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옆에 있던 선배였다.


3.

같이 간 선배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줄곧 느끼한 웃음과 과장된 제스처를 덧붙여 '알죠 알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나를 쳐다보며 어려서 아직은 모를 거라는 눈빛은 덤이었다. 누가 보면 희대의 카사노바가 여의도 카페에 나타난 줄 알 정도였다. 안 그래도 겉멋만 부려 같이 오기 싫었는데 그의 거북스러운 눈빛과 표정에 나는 여의도를 뛰쳐나가고 싶었다.


4.

인터뷰를 하다가 대표는 '대학생 서포터즈'를 기획할까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급할 때가 유독 많지만 돈은 궁한 대학생들이 적립금으로 어플을 맘껏 사용해보고 후기를 팍팍 남기는 활동이었다. 대표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나는 별로 쓸 일이 없을 것 같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런 내게 선배는 또다시 느끼한 윙크와 함께 히죽거리며 말했다.

'에이, 친구들이랑 단체로 놀러 가고 그럴 때 말하는거쥐. 아니야?'


5.

나는 속으로 도대체 저 선배가 왜 저러나 싶어 똥 씹은 얼굴로 두 시간을 앉아 있었다. 아직도 으쓱거리며 대표와 재간둥이 눈빛을 주고받던 선배의 표정이 생생하다. 정말 모텔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데 선배의 진실은 어디까지였을까. 어쩌면 뜻밖의 밤의 황제, 어쩌면 허언증. 둘 중 무엇이 진실인지는 그만 알고 있을 것이다.


6.

어쨌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어색함이란. 그는 마지막까지 넌지시 내게 함께 밥이라도 먹고 가자며 말을 붙였고 나는 같은 4호선을 타기도 싫어 쌩뚱맞은 2호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7.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

선배, 잘 지내세요?

.

.

2020.5.25. 


*해당 에피소드는 매거진<당신을 더 알고싶어서>에서 인터뷰집을 연재하며 불현듯 떠오른 추억 중 하나입니다. 그는 어디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사곡 할머니, 황곡덕, 정덕자씨(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