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성모마리아

구원 혹은 살인

by 김잔잔
한강에서 노숙자 집단 죽음, 원인규명 중


13일 저녁 8시쯤, 순찰을 돌던 박 순경에 의해 노숙자 K씨 외 6명의 시신이 한강둔치에서 집단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주변 일대에 탐문조사를 실시했고 사망자들간에 특별한 연결고리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떤 이들은 안면일식도 없는 관계였다. 수사는 처음부터 동반 자살로 가닥이 잡히고 있었다. 그러나 휴대폰도 없고 제각각 다른 구역에서 노숙하던 그들이 도대체 어떻게 함께 죽게 된 것일까.


사건의 의문점을 풀기 위해 주변 조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결국 경찰은 노숙자 커뮤니티에서 나온 진술들 중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다. 따로 흩어져 있는 그들의 입에서 이상한 여자 B가 종종 언급된다는 것이었다.



주변인들의 말에 따르면 B는 내킬 때마다 그들 근처를 맴돌았다 가곤 했다고 한다. 자리를 옮겨도 휘청휘청 거리는 걸음으로 어김없이 찾아와 주위를 서성거렸다는 것이다.

딱히 밤을 지새울 곳을 찾는 노숙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모두의 궁금증이면서 동시에 외면의 대상.

그 세계에서 누구나 그렇듯 소문만 무성히 따라다녔을 뿐,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짙은 까만 단발머리에 드문드문 흩어진 주근깨, 그 사이로 보이는 가늘고 쌍커풀 없는 평범한 눈을 가진 여자. 그러나 사람들은 그 눈빛을 보면 어쩐지 사연을 물어보고 싶어질정도로 묘했다고 했다. 과거를 회상하듯 처량할정도로 멍한 얼굴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정신이 들면 눈빛이 까매지던 여자. 집으로 데려갈 인형을 고르는 어린 아이처럼, 지나치는 노숙자의 구석 구석을 진한 눈동자로 꼼꼼히 훑어 보곤 했던 그녀를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인상착의를 물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B가 누더기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고 답했다.

어떤이는 얼룩덜룩한 베이지색 원피스, 어떤이는 더럽게 헝겊을 덧댄 앞치마… 종류도 다양했다.


-옷이라고 봐야하나, 아무튼 흉측했지.
-언뜻 봐도 앞에만 대여섯개가 넘었지. 아마 뒤에도 있을걸?
-셀 수 없을정도로 많았어. 옷이라기보단 기괴한 자루지, 그건.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B는 스스로 주머니를 꿰매단 옷을 입고 다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체 왜 셀수 없이 많은 주머니를 달고 다녔을까. 혹시 오래 전 정신 병원을 탈출해 헤매고 다니는 걸까. 그녀를 목격한 사람은 있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 존재하는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노숙자들 사이를 그림자처럼 헤매던 여자,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그 정도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여자에 대해 알고 싶으면 굴다리 노인 A를 만나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렵게 알아낸 장소로 찾아갔을 때, 그는 신문지 더미에 묻혀 있었다. 말을 걸자 하얗게 센 머리가 듬성듬성하고 주름진 얼굴에 칙칙한 낯빛을 가진 노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치 악취가 나는 신문지 속에서 아이처럼 웅크린 채 죽어가는 모습 같았다.


그에게서 B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줄만한 어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말을 하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그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이며 소리를 냈다. 가까이 귀를 가져대야 간신히 들릴듯말듯한 힘없이 쉰 목소리였다.

-천사야.
노인 A는 그녀가 천사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왜죠?
-매일 죽은듯 누워있는 우리옆에서 자주 울다 갔거든.
천사라니, 새로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울다니, 누구를 위해?
그동안 그려온 그녀의 음산한 이미지가 한 순간 금이 가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B에 대한 의심은 모두 과도한 망상이었을까.
그녀는 단순히 사건 현장에서 자주 목격됐던 신원불명의 음산한 여자일 뿐일까.
그동안 B의 수상한 행적과 분위기에 모두가 홀린 게 아닌지 싶을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무언가 더 물어보려던 찰나, 노인 A가 말을 꺼냈다.
-불쌍해, 그 여자.
그리고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입을 닫아버렸다.


다음 날 그를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전날처럼 잔뜩 웅크린 채 죽은듯이 자고 있었다. 다만 전날과 달리, 그의 곁에 또다른 이가 함께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멀리서 지켜볼 때는 그들은 마치 신문지에 묻힌 두개의 덩어리처럼 보였다. 곁에 누워있는 이의 몸이 아주 약간이나마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움직임이었다. 조심스럽게 그들 곁을 다가갔다. 노인 A는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저기, 누구신지..

곁에 있는 사람이 움찔,하며 털을 곧추세우는 고양이처럼 예민하게 움직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떨고 있던 몸이 벌떡 일어섰다. 짙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아, 그녀다.
그 순간 생각할 틈도 없이 부드러운 뭔가가 얼굴에 닿았다.
어지러운 향이 코로 강렬히 들어왔다. 그리고 몸이 한쪽으로 기우는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쓰러지는 몸을 부드럽게 받아 바닥에 내려놨다.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잔뜩 웅크린 채 지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콩. 콩.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머릿속이 암흑으로 변했다.

두어시간 지났을까.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귀까지 멍멍해진 기분이었다.
노인은 곁에서 아직도 잠들어 있었다. 아니, 죽어가고 있었다. 거의 맥박이 뛰지않는 그를 붙잡고 119를 불렀을 때 그는 B를 생각했다.

작게 흔들리며 노인 곁에서 울고 있던 그 여자를.
왠지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부검 결과, 노숙자 7명은 음독 자살로 밝혀졌다.
그들 모두 이미 시한부에 가까운 중증을 앓고 있었다.
B는 어디로 간걸까.


콩. 콩.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아릿한 그녀의 향기가 머리에 아른거린다.
동시에 일어설 때 바람에 흩날렸던 검은 단발머리가 우수수 떨어진다.무언가 생각날 듯 말 듯 머리가 아파온다. 흩어지는 웃음이 나를 놀리듯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가늘고 긴 눈 사이로 까만 눈빛이 어둠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뭘까, 뭐를 놓친걸까.
뒤섞인 향기와 기억들 사이로 다시 파도처럼 작게 들려오는 소리.

콩. 콩.

아, 맞아. 이 소리.

나는 기억해내고 만다.

그녀의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알약들을.

콩. 콩.

2020.4.6 오늘의 상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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