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에 눈뜨다
"요즘 변호사 되려면 로스쿨에 가야 하는 것 아니야?"
"로스쿨?"
"응."
"해볼까?"
"그러든지."
"나 공부하면 오빠 독박육아야"
"일단 시작이나 하고 얘기해"
삶은 종종 예상치 못한 전환점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나의 전환점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던 시기에 찾아왔다. 사랑스러운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했지만, 동시에 나는 스스로 무기력함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피로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느끼는 공허함은 단지 육체적 피로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휴직 전에는 회사에서 쉴 틈 없이 업무에 매진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프로젝트 마감일을 지키고, 팀원들을 이끌며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자랑스럽게 느끼며 일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던 나는, 정작 나 자신을 돌아본 적이 있었던가?"
육아로 인해 갑작스러운 고요 속에 놓이자 혼란스러웠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기를 돌보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일상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음을 실감했다. 아이가 잠든 시간에 문득 떠오르는 질문들에 답하지 못한 채 지쳐 잠드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나는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며 나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며 답을 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릴 적의 꿈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법조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어른들이 하는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나름의 해답을 찾으며,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법조인의 모습에 감명받았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 꿈은 점차 흐릿해졌고,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러나 육아휴직 중의 공허한 시간은 내게 다시 그 꿈을 떠올리게 했다.
회사에서의 나는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상사의 지시를 빠르게 이해하고 처리하며,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인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나는 상사의 지침과 회사의 이익에 따라 움직였다. 그것이 회사 생활의 기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다 보니 나의 스스로의 판단이나 기준 없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에게는 어떤 가치관이 있었던가? 나는 과연 무엇을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하던 시기, 이러한 질문은 더욱 깊어졌다. 사랑스러운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의 기준을 배우고, 그 기준이 그 아이의 삶의 나침반이 된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내 삶의 기준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법'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가 따라야 할 기준, 즉 옳고 그름의 기본 틀이 바로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약속이고 합의다. 나는 그동안 그 사실을 잊은 채 일상에 묻혀 살아왔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며, 그리고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깨달았다. 내가 우리 아이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법에 대한 이해와 실천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법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법이라는 틀 안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나의 삶과 아이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낮에는 육아를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삶을 선택했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상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