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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Aug 06. 2024

마음을 보관하는 가게

1. 그리움(3)

출처 : bing AI 이미지 생성


창밖으론 눈부신 별빛과 달빛이 흐르고, 찌륵찌륵 풀벌레 소리와 그리고 깜빡이는 책상 위 요정의 요술봉. 얼마 있지 않아 노스는 훌쩍훌쩍 소리를 내더니 이윽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왜 내 인생은 이 모양이야... 어느 누구도 내 옆에 있지 않아. 할머니도, 마을 사람도 아무도. 아무도 내 옆엔 없어."


엉엉 울고 있던 노스가 부스스 일어나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 책상으로 바짝 다가갔어요. 답답한 듯 이리저리 왔다 갔다 유리병을 이리 두들기고 저리 두들기던 요정은 노스가 다가서자 더욱더 간절하게 답답한 유리병을 두들겼어요.


"너도 떠날 거니? 내 옆을 떠날 거야?"


사실 노스는 너무너무 외로웠답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뒤 텅 빈 집안도, 텅 빈 집안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자신의 모습도 싫었어요. 울고 있는 노스의 모습을 본 요정은 잔뜩 화가 났었지만 한편으론 그런 노스가 안타깝기도 했어요.


"내가 해답을 알려주지! 얼른 날 여기서 풀어주라고!"


자신에게 아무 해도 끼치지 않을 거란 걸 직감한 요정은 온몸에 힘을 주어 목청이 터져라 외쳤어요.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요정의 작은 목소리를 들은 노스는 울음을 그치고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삐걱삐걱 코르크 마개를 열어 주었어요. 요정은 파르르 날아올라 노스의 주변을 한 바퀴 뱅 돌았답니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도 돼! 어차피 난 혼자니까!"


노스는 눈물을 꾹 참으며 요정에게 말했어요. 한참 노스의 주변에서 빙빙 날고 있던 요정은 포르르 날아 노스의 어깨 위에 가서 앉았어요.


"일단 밖으로 나가자고! 이곳은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어!"


요정은 문으로 포르르하고 날아가 낡은 나무문을 요술봉으로 톡톡 두들겼어요. 삐걱하며 문이 열리고, 요정은 삐죽 열린 틈사이로 포르르 날아 문밖으로 나갔어요.


찌륵찌륵 풀벌레 소리와 청량한 풀냄새. 달빛과 별빛이 쏟아지는 언덕 위, 노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자 요정은 노스의 어깨 위에 포르르 날아 앉았어요.


"소중한 걸 잃어버렸군?"


"..."


"난 이곳을 수백 년을 지켜내며 살아왔단다. 너 같은 친구들을 한두 번 만나봤겠나? 넌 마음을 잃어버렸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마음대로 허비해 버리고 그런 다음엔 항상 후회를 해. 그리고 그렇게 흘려버린 시간들은 상처가 되어 스스로를 찌르지."


노스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어요. 노스는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이 터질 모양이에요.


"하지만 괜찮아. 우리는 잃어버린 마음보다 앞으로 지켜내고 살아내며 만들어서 간직할 수 있는 마음들이 더 많거든. 저 하늘에 별을 봐, 저것들은 누군가의 상처가 별이 되어 남은 것들이란다."


요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별똥별이 까만 밤하늘에서 굴러 떨어지며 노스의 눈으로와 박혔어요. 그 순간. 노스의 깊은 마음속에 단단하게 뭉쳐져 있던 슬픔이 반짝 빛이 되더니 별이 되어 하늘 위로 동실 떠올랐어요. 


속이 후련해지는 마음에 노스는 엉엉 소리를 내고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가며 울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울다 더 이상 울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언덕 위로 은하수 이불이 사르르 내려앉아 따듯하게 노스의 몸을 덮어주었어요. 노스는 다짐했어요. 앞으로는 지나간 것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살아내며 만들어서 간직해야 할 예쁜 마음들을 소중히 여기겠다고. 


그 날밤 꿈에서 노스는 그토록 그리웠던 할머니를 만났어요. 그리고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잔 약속을 하며 작별했답니다. 생전 처음으로 노스는 그 어느 날보다 편안하고 따듯한 밤을 보냈답니다. 


아침 햇살이 톡톡 노스의 눈꺼풀을 노크하자, 노스는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차가운 물에 어푸어푸 세수를 했어요. 그리고 몇 년을 열어 보지도 않았던 서랍에서 할머니의 냄새가 배어 있는 말끔하게 세탁되고 손질된 옷을 차려입고 누구보다도 가벼운 걸음과 진중한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마을에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했고 즐거워 보였어요. 그리고 노스도 마찬가지였답니다. 노스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마을을 구석구석 청소하고 쓰레기를 주워 모았어요. 그 모습은 노스의 마음에 있는 쓰레기를 주워 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항상 찡그린 얼굴과 슬픈 표정뿐이던 노스에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배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황금빛 들녘에 하얀 눈이불이 내려앉고, 하얀 눈이불이 녹아 다시 또 초록색 새싹 이불을 덮고. 그렇게 몇 해.


까맣게 탄 피부에 밀짚모자를 눌러쓴 쓴 건강하고 함박웃음이 넘치는 노스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요. 뜨거운 햇살이 알곡을 야물게도 익혀냈고, 그 어느 해 보다도 풍족한 가을을 맞이해 마을 이곳저곳 웃음과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와요.


어쩌면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그 요정은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오늘도 그 요정은 그 오솔길에서 지나간 것을 놓지 못하는, 삶을 포기하려고 하는, 잔뜩 상처투성이 외톨이인채로 인생을 흘려보내고 있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나의 이야기. 내 상처를 거울에 비추어보며. 그리고 내 상처, 내 그리움을 하늘에 별로 띄워 보내며

2024.08.06. pm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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