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봉사를 시작하기까지의 어려움과 용기
내 강아지들은 다들 하나씩 아픔이 있다. 커플의 손에 키워지다 하루아침에 파양견이 된 사연도 기구하지만, 손을 타고 예쁨 받다가 추운겨울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린 한마디로 유기견의 신세.
두녀석은 운이 좋게도, 내 눈에 내 손에 들려 '안락사 주사' 라는 무시무시한 주사를 피해 나와 만으로 4년째 함께 해왔지만 막연한 맘으로는 언젠가 이 녀석들보다 더 열악하고 기구한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면 내 몸과 성의를 다해서 이 친구들을 돌봐야지 라는 아주 막연한 감정들이 있었다.
그것은 조금씩 비정기적이지만 안타깝고 불쌍한 강아지들을 보게 되면 용돈을 쪼개 하는 기부행위에서 시작 했는데, 어제는 직접 몸으로 부닥쳐 보게 되었다. 가만히 집에 앉아 키보드만 두들길줄 알았지, 말그대로 생날것의 난리 개판 오분전을 경험하며 다짐했다.
아. 이 녀석들 부유하진 않더라도 불행하지 않는 삶을 꼭 선물해주자고.
우리나라는 표면적으로는 개고기가 불법인 나라지만 아직도 알음알음으로 개고기를 먹는나라다. 더운 여름 짧은 줄에 메여 땡볕에 축 늘어져 있는 누렁이나 진도는 좋다고 주인손에 야산으로 네발로 끌려갔다가 돌아올땐 시뻘건 다라이에 토막난채 담겨 벌건 핏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온다. 그리고 푹푹 삶아져 소고기라며 뭣도 모르는 애 입에 넣어지고, 몸에 좋다며 보양에 좋다며 부추에 들깨가루 푹푹 뿌려 먹는것이 제맛이라며 그렇게 먹고 나면?
애초에 생명에 대한 존중없이 키워진 그 개를 잡아 먹고나면 얼마나 크게 건강에 도움이 되고 얼마나 보양이 되겠냐만 개고기에 대한 불호를 표하면 그럼 소는? 그럼 돼지는? 그럼 닭은? 계속 조건부 물음이 따라오는데, 정말 편협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 고양이 닭 소 돼지는 자기 필요 이상으로 육식하지 않고 필요이상으로 육식을 하며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저지르는 필요 이상의 육식과 필요이상의 살생.
인간이라, 그래서 잡식을 해야 하노라 어쩔수 없이 정신승리를 하지만 개고기에서 부터 출발해 불필요한 살생을 지속적으로 줄이다보면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폐해도 훨씬 줄어 들테고 고통받는 소 돼지 닭도 훨씬 줄어들지 않겠나.
얼마전에 한강작가의 '채식주의자'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노벨상을 탄 여흥도 있어서 아무런 준비없이 그 책을 접했다가 너무 센세이션한 결말에 소름이 돋았다. 폭력적으로 생산된 고기를 거부함으로서 폭력에 대한 반항이 결국 다른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나무가 되기를 소망하는 영혜의 모습을 보며 참 느낀점이 많다.
육식을 거부하는 영혜의 입에 억지로 고기를 쑤셔넣고 거부하자 뺨을 날려 버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푸아그라와 비교해보며, 아픈 영혜를 자기 트로피쯤으로 여기며 방치 하고 모른척하다 울컥 치밀은 취기에 아픈 영혜를 붙들고 자기 욕구를 해결하려는 영혜 남편의 모습을 번식장 강아지들의 모습과 비교해보며, 키우던 강아지가 어린 영혜의 다리를 물어버리자 달리다 죽은 개가 살이 부드럽고 좋다며 오토바이에 강아지를 매달고 동네를 여러바퀴 돌아 끝내 죽이고 그 죽은 살덩어리를 우걱우걱 씹어먹는 영혜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해보며 아. 우리 삶은 정말 폭력뿐인 삶이구나 하는 절망감과 좌절감에 한동안 마음이 괴로웠다.
어쩌면, 누렁이와 진도로 태어나 서리 피할수 없는 울타리에 갇혀 차가운 밤에 몸을 동그랗게 말아 긴 겨울밤을 보내고 나면 겨울밤 내 꽁꽁 언 물그릇을 핥고 경쟁하듯 밥을 먹고 어떻게든 살아 남아 생존하는 우리 누렁이와 진돌이, 진순이들을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나와 손잡아 달라, 나의 가족이 되어 달라'고 이야기 하는 친구들과 이 글을 읽는 독자님이 우연찮은 기회로 연이 닿게 된다면 그리고 그 기구한 삶에 독자님께서 그 친구의 또 다른 세계가 되고 우주가 되어 주신다면 그건 나에게 굉장히 큰 영광이자 마음에 빚으로 담고 살겠노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