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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Feb 19. 2024

빛나는 대학생이 된 나에게

오늘부터 나는 대학생이다.

내 나이 내일모레 불혹의 나이, 오늘부터 나는 대학생이다. 가난한 집 육 남매에 둘째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한참 나 국민학생 때 IMF가 터졌다. 안 그래도 가난한 집에서 IMF까지 터져 이건 뭐 더 이상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 인생은 그때 마감 됐어도 전혀 무방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에서 IT붐이 일어나 열악한 환경의 가정에 매직스테이션 최신형 PC를 설치해 주고, 인터넷 요금도 지원해 줬다. 거기다 집 근처 컴퓨터 학원까지 학원비용을 지원해 주고, 그렇게 얼레 벌레 자격증 몇 개를 따고 나니 흥미도 생기고 또 내 적성에도 잘 맞았다.


여러 가지 진로가 많았지만 나는 그래픽에 흥미를 느껴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해 시 대회에 나가 상도 몇 개 타고, 성적도 괜찮고 상도 많으니 대학진학을 선생님들은 권고했지만, '딸내미 그거 공부시키가 뭐 합니까, 남에 집 식구될 건데, 일찍 나가 자기 밥벌이하면 됐습니다.' 하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저 19살 고3 1학기를 마치고 학교에서 주선해 준 회사로 출근해 치열하게 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 부모님께 보내고, 남은 돈으로 내 삶을 꾸려 나가는 것이 오직 내가 해야 할 일이자 의무인 삶이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기 시작했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3교대 회사였는데 야간 근무를 마치고 이제 막 잠들려던 찰나였다. 출근할 때부터 몸살감기기운이 있다 싶어 약간 아슬아슬 하긴 했는데 그게 사실은 독감이었나 보지. 퇴근할 때쯤 온몸이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피부 모공 하나하나 오소소 일어나 옷이 스치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만큼 아팠다.


하필 그날은 월급날. 평소엔 연락 한번 없다가 재수에 삼수를 한답시고 서울로 올라가 아무런 진도가 보이지 는 언니가 아주 뻔뻔하게 전화를 해 '돈 50만 보내봐' 하는 언니의 전화에 어느 순간 내가 욱했다. 50이면 당시 내 월급을 평균 내보자면 150만 원 정도였는데 거기에 1/3 정도인 적지는 않았던 돈이다.


나는 아파도 병원 한번 못 가고 회사 한번 못 쉬고 출근해서 밤새 일해 돈 벌어야 사람인가 싶은 욱하는 마음도 들고,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오래 고민하다가 '언니도 공부가 답이 아니면 돈을 버는 게 어떨까.'라고 했다.


5분이 지나지 않아 득달같이 전화를 하더니 날더러 '공순이 년이 알면 뭘 그리 많이 안다고 씨부려.'라고 했다. 이건 아직도 15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때의 공기, 냄새, 그리고 그때의 햇살과 그때의 추위가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서운한 마음이 분노로 바뀌었고 나는 그 길로 언니와 인연을 끊었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서 없을 사람이다. 당장 집에다 전화해서 뭐라고 또 울분을 풀었는지 당장 집에선 나에게 전화해 날 나무라는데, 도대체 내가 왜?라는 억울함이 생겼다.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독감에 걸려 빌빌 거려도 돈을 벌어 나는 갖다 바쳐주면 거기서 내 의무는 끝나는 사람이구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나는 그 뒤로도 집과 인연을 끊었다.


누구는 그냥 아무 선택지도 없이 공장으로 내몰렸건만, 재수에 삼수핑계를 들어 돈 받아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언니를 장남장녀가 잘되어야지 집안이 잘된다며 끝까지 믿어보려는 부모도 원망스러워 그 뒤로 집이랑도 연을 끊었다. 바보처럼 돈을 보내는 일도 끊었다. 


한 번씩 욱하는 마음이 치밀면 어떤 날은 터트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물처럼 흘리기도 하며 그렇게 나는 인생의 절반을 고졸로 살았다. 알게 모르게 열등감도 있었다. 내 나이에 대학은 좀...^^;;이라고 할 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 회사가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내가 계속 멈추어 있으면 알게 모르게 당하는 부당한 대우들을 꾹 참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날 우연히 방송대를 검색해 보게 되었고, 마침 딱 신입생 모집을 한다고 했다. 고민할 새도 없었다. 입학전형에 필요한 돈을 입금하고, 매일매일 합격 발표를 기다렸다. 내가 제대로 등록을 한 게 맞는지, 매일매일 들어가 확인을 해보기도 했다. 오늘부터 강의를 들을수 있다.


지금의 내 목표는 4년간 조용히 숨죽여 가며 슬금슬금 몸집을 키우고, 덩치를 키워 최소 여기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할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뭘 더 주워듣고 담으며 몸집을 키우다 보면 나도 분명히 불어진 내 몸집만큼 무언가도 변할거다. 두고봐라 4년뒤 모습은 지금과는 180도 달라져 있을거다. 오늘보다 나아질 나를 위해 응원! 그리고 화이팅!!!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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