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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은서른아홉부터 Jun 23. 2024

마녀사냥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동화

옛날 옛적에 작은 마을에 '장화돌'이라는 이름을 가진 목장주인이 살고 있었어요. 그는 항상 화가 나 있었고, 마을에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가 나서 다른 사람들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그의 하루 일과이자 장기이고 특기였어요. 그가 하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베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항상 멍청한 인간들이란 욕설퍼붓었고 그의 가시 돋친 말들은 매번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습니다. 그래서 장 씨가 지나가면 마을은 금세 어두운 구름이 낀 것처럼 침울해지곤 했어요.


어느 날 '나 도말'이라는 사람이 장 씨의 옆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답니다. 나 도말은 남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로 둘은 말하기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고 금세 연인이 되었답니다. 장 씨와 나 씨가 동네를 거닐며 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마침 나 씨의 눈에 숨만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작은 병든 검둥 강아지가 보였어요.


"에구... 딱한 것..."


마을 입구 조그만 초막집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는 박 씨 할머니도 그 강아지를 보았고 박 씨 할머니는, 낡은 앞치마를 벗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그 작고 병든 강아지를 감싸 안고 누가 볼세라 강아지를 데리고 할머니의 집으로 갔어요.


하루.. 이틀.. 그리고.. 몇 날.. 며칠...


마을에 흉흉한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답니다. 이유도 모르고 치료법도 모른 채 끙끙 앓다 일주일을 못 넘기고 숨이 멎어 버리는데, 두레마을 사람들은 손을 놓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숨 죽이며 창문과 대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이웃집과의 왕래도 끊고 그렇게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집안으로 집안으로 숨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또 몇 날 며칠. 마을 한복판에 눈만 빼꼼 내놓은 장 씨와 나 씨가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답니다.


"박 씨 할머니가 병든 개를 집에 데려가는 걸 내가 보았다! 그 개가 원흉이다!! 그 개가 오기 전까진 우리 마을엔 아무 일도 없었다! 개를 죽여라! 개를 죽여라! 개를 죽여라!"


하나둘 창문에 커튼이 걷히고 불신에 찬 눈들이 창문 너머 빼꼼히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에 더 기세등등해진 장 씨와 나 씨는 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대문을 두드리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제일 먼저 원인 모를 질병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장 씨와 나 씨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고, 생업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그 무리의 규모에 용기를 얻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박 씨 할머니 집으로 몰려갔어요.


"개를 죽여라! 개를 죽여라! 개를 죽여라!"


분노와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은 사람들은 주문을 외듯, 주술을 하듯 같은 말 만 되풀이하며 박 씨 할머니 집을 에워 쌓았지만, 어느새 살이 오동통 오른 검둥개가 반갑다고 멍멍 짖고 애교를 피우며 그들을 맞이했어요.


깨갱!


갑작스레 어디선가 날아든 돌과 함께 검둥개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더니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다 죽어버렸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걸음을 돌려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어요. 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밤늦게 돌아온 박 씨 할머니는 죽은 검둥이를 품에 안고 몇 날 며칠을 서럽게 울어대다 검둥이와 함께 죽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검둥이도 죽고, 박 씨 할머니도 돌아가셨지만 마을에 돌고 있는 전염병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자 그때의 그 달콤했던 광끼와 분노가 사람들을 다시 또 꼬여내기 시작했답니다.


언젠가는 최가의 몇째 아들이 몰래 문구점에서 도둑질을 해서. 또 언젠가는 김가의 아내가 길가에 몰래 쓰레기를 버려서, 또 언젠가는.. 또 언젠가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과거에 덮어주고 포용해 주던 이웃의 잘못과 허물을 들춰 꺼내가며 잘잘못과 시시비비를 따지기 시작했고, 지목당한 사람들은 동네에서 쫓기거나 고문과도 같은 체벌을 하는 등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고 처벌하기 시작했어요.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병에 걸려 쓰러지거나 마을에서 쫓겨나기 시작했고 이제 마을엔 장 씨와 나 씨 단 둘만이 남았답니다.


어느 날, 나 씨마저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됐어요.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 씨만은 진심으로 사랑했던 장 씨는 온 산과 마을을 돌아다니며 나 씨를 고칠 약초를 찾아 헤매다 우연히 자신의 목장에서 쫄쫄 흘러나와 시내로 흘러드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검은 물을 보게 되었어요.


지난 태풍에 목장의 폐수처리시설에 문제가 생겨 그렇게 흘러나온 폐수들이 시냇가로 모여 마을 가운데 있는 우물로 흘러들었고, 물을 식수로 마셨던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 죽어 버렸던 것이에요.


겨우 원인을 알았지만 병을 고칠 의사도, 목장을 고쳐줄 대장장이도, 약초를 구해다 줄 약초꾼모두 다 떠나버린 텅 빈 마을 한가운데서 장 씨는 엉엉 울며 우물물을 배꼽이 볼록하게 나올 때까지 꿀꺽꿀꺽 마셔가며 자기도 똑같은 병에 걸려 죽기만 지금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냥 하염없이.. 하염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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