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중요한 건 일상이야"

tvN <내 가슴을 뛰게 할 RUN>을 보고

by 백디요


별로 기대하지 않는 예능이 두 종류 있다. ‘걷기 예능’과 ‘서핑 예능’인데, 대체로 재미도 없고 몰입도 안 되더라.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두 종류의 예능은 대체로 성적도 좋지 못했다. 내가 봤던 ‘걷기 예능’ KBS <거기가 어딘데??>, JTBC <같이 걸을까>가 그랬고, ‘서핑 예능’ JTBC <서핑 하우스>와 MBN <바다가 들린다>는 시청률 1%를 못 넘어보고 끝이 났다. 최근에도 ‘걷기’를 내세웠던 KBS <정해인의 걸어보고서>가 미지근한 반응으로 문을 닫았다.


tvN <RUN> 스틸컷


웃긴 건 큰 기대가 없어서 새로 론칭한 프로그램을 꼭 챙겨본다는 건데, ‘이번엔 좀 다를까’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tvN <내 가슴을 뛰게 할 RUN>은 반가웠다. 배우 지성을 비롯한 신선한 출연진은 물론이고 ‘러닝’을 다루는 방식도 새로웠다. 아, 새로웠었다.


“첫인상은 좋았지”


<RUN>은 일상 속 러닝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기존 걷기 예능이 ‘걸어서 사막 횡단하기’라던가 ‘걸어서 순례길 완주하기’라는 거대한 목표에 도전했다는 것과 차별된다. 사실 러닝이 그렇지 않나. 두 다리로 달리기만 하면 되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다. <RUN>도 일상에서 어떻게 러닝을 더 잘 즐길 수 있을지에 포인트를 둔 것 같다. 이 부분이 좋았다.


지성이 매일 새벽 러닝을 나서는 모습은 ‘웰빙 라이프’를 떠올리게 했다. ‘나도 저렇게 부지런해지고 싶다’, ‘내일 아침 러닝을 시작할까?’ 생각하며 프로그램에 몰입했다. 단언컨대 이전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나도 걸어서 사막을 횡단해볼까’란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러닝을 시청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일상 속 가까이 가져온 것, <RUN>의 최애 포인트였다.



해외여행을 떠난 멤버들이 낯선 도시를 러닝 하는 모습도 좋았다. 덕분에 해외 도시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는데 기존 여행 예능에서는 보지 못했던 시도였다. 새벽에 한적한 관광지의 모습, 날이 저물어 갈 때 도시 속의 모습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한낮의 모습과 달리 새로웠다.


도시 속 러닝은 ‘순례길이나 산속’을 트레킹 하는 프로그램과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트레킹을 하다 만나는 고요한 주변이나 훌륭한 경치는 직접 트레킹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모니터를 거쳐 만나는 시청자는 그 기쁨이나 힐링이 반감된다. 하지만 도시 속 유명한 관광지나 광장의 모습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청자에게도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RUN>을 보며 ‘휴양’ 대신 ‘도시 속에서 러닝 하기 위해 떠나는 해외여행’을 상상했다.


“바보야, 마라톤은 아니야”


근데 <RUN>은 점점 표류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 자체가 출연진이 왜 달리는지, 목표를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RUN>이 보여주는 일상 속 러닝이 좋았던 나도 뜬금없이 뛰어다니는 그들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러닝의 목적을 잃어버리면서 점점 <RUN>의 러닝은 일상과 멀어졌다.


아마 그 지점은 본격적으로 피렌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출연진 4명은 계속 뛴다. 자유시간에 도시를 여행할 때도 뛰고, 식료품을 사러 갈 때도 뛰고, 시장 안에서도 뛴다. 프로그램은 초보 러너 출연자들이 마라톤을 대비해 러닝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지만, 글쎄… 납득은 안 된다. 아마 프로그램도, 출연진도 왜 뛰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계속 달릴 수밖에. 마라톤 연습을 할 거라면 스톱워치를 들고 체계적으로 준비했어야 했다. 도시를 관광하며 달리는 건 마라톤 연습이 아니다.


달리는 명분이 흐려지니 <RUN>이 보여주던 건강하고 부지런한 러닝 이미지도 힘을 잃었다. 계속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보고 있으면 시청자도 지친다. 게다가 출연진도 촬영이 버거웠던지 무릎 부상, 발목 부상을 입는다. 그 모습에 시청자는 더 지친다. <RUN>이 보여주려던 건 ‘일상 속 건강한 러닝’이 아니라 ‘무리하게 러닝 하면 다친다’였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초심을 잃고 표류한 결과였다.


<RUN>을 보면서 하나만 잘하기도 어렵다는 걸 느낀다. 마라톤 도전기를 담든가 아니면 낯선 도시의 일상에서 러닝 하기 위해 떠나는 해외여행 문화를 만들든가. 목표를 분명히 하고 더는 표류하지 말 길. 개인적으로 후자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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